<시편이 초청한 시인_ 이규리 신작시>
새는, 작은 새는
이규리
발코니에서 죽은 새를 손에 들고
어떻게 할까?
망설였다
가여운, 가볍고 딱딱해진
옴츠린 발, 이토록 가녀린 원행이
이 땅에 살았던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잘 묻어줄게
어디에?
생각 끝에
가볍고 딱딱해진 죽음을
아이의 손에 넘겨주었다 나는 적합하지 않아
허무가 많아
미간이 깨끗한 너에게 부탁할게
너는 방을 생각할 것이다
새의 방향이 늘 허공이었으니
추락과 긴장이었으니
좌측과 우측의 기울기를 살펴 그 실존이
지상을 획득하게 할 것이다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작고 언 발을 뿌리처럼 뻗으며
새는, 작은 새는
* 버지니아 울프 A Room of One’s Own
<시편이 초대한 시인_ 이규리 대표시>
호퍼 씨의 밤
이규리
늦은 밤 주유소에서 셀프 주유를 할 때
이곳 참 드라이해요
선택하여 주십시오
주유구 속으로 딱딱한 팔을 구겨 넣을 때
오해도 아니고 이해도 아닌 스토리가 꿀렁꿀렁 흘러 들어가는 걸 봐요
당신 정말 멀리 있군요
주유하던 손이 손을 놓치고
외로운 시대야
종일 기계들만 마주하고 있어
어떤 한기가 아라비아의 수로를 따라
습격해 오기도 하는데
진심은 얼마나 채우겠습니까
또 비우겠습니까
누군가 잘못했다고 추궁해 온다면 잘못되고 말 것 같아
공손하게 셀프는 셀프가 아니야 옵서버야
밤의 주유소는 그림자가 길어지면서
행선지는 멀어만 가네
다시 사랑이 오면
망치지 않을 텐데 무조건 잘 해줄 텐데
꿈이라도 긍정적으로 꾸도록 할까요
돌아오지 않으면 그게 용서니까요
주유구 안으로 밤이
검은 밤이
드라이하게
이규리 시인
199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당신은 첫눈입니까』,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뒷모습』, 『앤디 워홀의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