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과 어울리려 사람을 사칭하였고
나는 꽃과 어울리려 꽃을 사칭하였고
나는 바람처럼 살려고 바람을 사칭하였고
나는 늘 사철나무 같은 청춘이라며 사철나무를 사칭하였고
차라리 죽음을 사칭하여야 마땅할
그러나 내일이 오면 나는 그 무엇을 또 사칭해야 한다
슬프지만 버릴 수 없는 삶의 이 빤한 방법 앞에 머리 조아리며
김왕노, 사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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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깃들인 사원에 발 벗고 함께 머리 조아리나니 나는 사람을 만나도 짐승을 못 버렸고, 꽃을 만나도 벌거지를 못 면했으며, 바람을 만나도 꿈꿀 줄 모르는 사람이었으니 당신의 기도가 오히려 나를 울립니다. 사칭이라니요. 사람을 만나 사람이 되고, 꽃을 만나 꽃이 되려 했다면, 진실로 바람을 만나 바람이 되고 죽음을 만나 죽음이 되려 했다면. 누구나 자신이 오를 저 높은 정신의 설산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은 이 있으리요만 그래도 위안을 갖는 것은 머리 조아리는 이는 이미 가면을 벗었기 때문 아닌가요. 사원을 나서면, 구원의 약속보다 반성의 힘으로 가뿐해지는 것. 일어나세요. 살다 보면 또다시 사칭할 날도 오겠지요. 많이는 말고 병아리 눈꼽만큼 사칭하고, 주먹같이 반성하며 살자구요. 세상의 제왕을 참칭(僭稱)하지는 말고 슬프게 조금씩만 사칭(詐稱)하며 살자구요. 그럼 각자 죄짓고 사원에서 다시 만나요.
반칠환(1964~), 내게 가장 가까운 신, 당신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