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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화요일 저녁,
요양원의 한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호흡이 멈추는 바람에
급히 안성 성모 병원 응급실로 모셨다.
얼마전에도 비슷한 상황으로 어려운 고비를 넘겼는데
이번에는 아예 죽은 것처럼 숨을 쉬지 않아
정말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다행히 몇시간후 깨어 나셔서 급히 달려온 가족들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쉴 수 있었다
각종 검사 시간이 오래 걸려 저녁 9시 반쯤
요양원 총무에게 인계하고 나는 막 늦은 저녁을 먹을겸
집으로 향하려고 하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안성 의료원 응급실인데
'안용호'씨 보호자냐고 찾았다.
'아니다 왜 그러느냐 옛날 내가 우리 요양원에 데리고 있었던
환자인데...지금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지금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을 119가 데리고 왔는데
보호자가 없어 입원이 안된다고 했더니 내 전화 번호를
말하면서 내가 보호자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안용호!
2001년도 우리 요양원 원내에서 알콜 중독자인
무면허 운전자가 사무실에서 몰래 키를 가져고 가서
운전을 하다가 원생 한분을 쳐서 죽인 교통사고 사망 사건으로
내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안, 요양원을 이탈하여
이미 퇴원한 환자 둘을 데리고 서울 마포 경찰청에
거짓과 날조로 우리 요양원을 고발하여
당시 신고시설로 되어 있지 않던 우리 요양원은
정신보건법 위반 등으로 수십명의 경찰들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수사하기 시작하고 당시 74명의 입원 환자 중
집에 돌아가기 원하는 알콜중독자와 정신병 환자들 34명을 모두 돌려 보내고
그 퇴원하는 알콜중독자들의 말만 듣고 요양원 모든 직원들을
서울 경찰청까지 압송하여 밤을 지새우면서 수사케 하여
우리 요양원이 완전히 붕괴 직전까지 이르게 한 장본인이었다.
엎친데 덮친다는 식으로 범인은닉죄로
잠시 영어의 몸 신세가 되어 버린 나에게
서울경찰청 수사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곤혹스러운 일이었고
수개월동안 요양원의 모든 업무가 완전히 중단된 엄청난 사건이었다
우리 교회와 요양원 역사상 가장 큰 어려운 고비였다.
게다가 뛰쳐나가 또 다시 술을 먹고 완전히 이성을 잃은 알콜중독자들은
자신들을 일정기간동안 가두어 두었던 요양원에 앙심을 품고
보복하기 위해 경찰들에게 온갖 악의적인 말들로 무고한 우리 요양원
직원들과 나를 고소하였다.
서울경찰청이 뜨자 안성시청, 보건소, 면사무소, 경찰서, 파출소 등의
온 공무원들이 밤을 지새우면서 우리 요양원에 머물고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몇달 후에 결국 아무것도 아닌 일들로 우리의 무고한 혐의는
벗어지고 정신보건법만 적용되어 검찰에서 벌금 3백만원으로
약식기소하여 끝나버렸지만.....
그 모든 일의 주동자가 바로 '안용호'씨였다.
안용호를 만난 것은 1999년 5월경 안성 의료원에서였다
나와 친분이 있었던 원무과장님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다.
알콜중독자로서 간경화에 시달리는 그는 이미 아내와 이혼하고
딸과도 헤어진채로 그가 과거 살던 안성의 한 주공 아파트 주변을
배회하면서 낮에는 늘 술에 취해있고 밤에는 아파트 공중 화장실에서
피를 토하면서 잠을 자는 부랑자였다...
피를 너무 많이 토하거나 간성혼수로 의식을 잃으면
동네 사람들의 신고로 119에 의해 응급실로 실려 가기를 몇번...
병원에서도 소주 병을 사다 놓고 마음대로 마시면서
제지하는 간호사와 의사들을 폭행하는 구제불능의 인간이었다
병원에서도 받지 않는 그,
그래서 아파트 관리소장과 부녀 회장이 보증을 서 15일간만
간신히 입원시켜 놓은 상황이었다
1종 생활보호대상자여서 병원비는 별로 들진 않지만,
병원에서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를 원무과장이 그 관리소장에게
나를 소개하여 관리소장과 부녀회장이 찾아왔다.
나는 아무런 조건없이 그냥 그를 받아 들였고
그 후 걷다가도 수없이 쓰러지고 병원에 실려가는 일이 빈번할 정도로
그의 간경화는 말기를 맞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요양원에 와서 규칙적인 생활과 엄선된 식생활 등으로
그는 기적적으로 재활에 성공하는듯이 보였다.
또한 대개 알콜 환자들이 그렇듯이 그는 신앙에 무척이나 열심이었고
그런 그의 노력과 그를 돕는 나와 우리의 기도로 그는 1년만에 거의
모든 검사에서 정상 판정을 받는 축복을 받게 되었다
나는 그에게 용기를 줄겸해서 그를 정식 직원은 아니지만,
환자들을 관리하는 관리부장직을 주었고 일정한 용돈도 매달 주었다.
운전도 하고 싶다고 하여 내가 직접 데리고 평택까지 다니면서
1종 대형 면허도 따게 해 주었다.
그런데, 개과천선한 것처럼 보이는 알콜중독자들이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서 가장 어려운 고비들을 맞게 되는데
그토록 안먹겠다고 다짐하고 결심하지만,
마약처럼 그 술 생각을 이기지 못하고 또 다시 술을 먹고 옛날로
돌아가는 일들이 아주 비일비재하다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내가 관리직을 주어 밖을 마음대로 돌아 다니고
차까지 운전하고 다니도록 해 주니까 이 사람이 다시 술 생각을 이기지 못하고
실수하기를 몇번.... 나는 그 때마다 용기를 주고 그가 다시 이겨 나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다시 적응하고 또 극기하면서 그렇게 살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오랫동안 헤어져서
어디 있는지도 모른는 외동딸을 전국에 수배하여 찾아내고
그에게 양복을 입히고 꽃다발을 사들고 딸이 있는 청주까지 함께 두번이나
동행하여 그리워하던 딸을 만나게도 해 주었다...
그런 그가 내가 급작스러운 일로 어려움에 처한 환경을 틈타
도저히 은혜 입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저질러
정말 엄청난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 사건 이후
요양원을 나가 마음대로 술먹고 옛날처럼 살다가 다시 간경화가 재발되고
거의 죽게 될 무렾 다시 나를 찾아와 석고대죄하고 제발 한번만 더
받아 달라고 울며 간청하여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정말 용서할 수 없는 그 사람,
우리 요양원 모든 직원이 절대로 받으면 안된다고 반대하던 그를
나는 받아 주고 한 번 더 그에게 개과천선(改過遷善)의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그는 몇 달 후 다시 건강이 어느정도 회복되자
우리 요양원 환자 한 사람을 차에 태워 병원에서 데리고 오는 길에
그를 차와 함께 길에다 버리고 다시 도망을 가 버렸다.
그로부터 몇년이 흘러 나는 그에게 관심을 끊어 버렸다.
그리고 벌써 죽은 줄만 알았던 그가 다시 나에게 나타난 것이다
다시 죽게되니... 그래도 내가 인정 있는 것은
그 비몽사몽 가운데도 잊지 않았는지...
나를 찾은 것이다....
나는 이번에는 절대로 속지 않는다고 마음을 굳게 먹고
의료원 응급실 직원에게 나는 그 사람과 지금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단호히 말하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집으로 향하기 위해 차를 몰았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차의 방향은 집 방향이 아닌
의료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 놈의 특유의 인정머리가 발동된 것이다.
다시는 정말 보고 싶지 않았던 인간,
아니 짐승만도 못한 놈인데...
왜 내가 다시 그를 만나러 가야 하는지를 내 자신에게 자문하면서
병원에 도착을 했다.
그는 응급실 침대에서 비몽사몽으로 누워있었다.
나는 병원측에 내가 보증인이 될 터이니 입원시켜 달라고 했다
입원 보증서에 나의 신상 명세를 다 기록했는데
직원이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나서
'안용호'는 입원을 해 줄 수 없다고 하였다
전에 내지 않은 병원비 등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 돈도 내가 모두 낼 터이니 걱정말라고 하였더니
직원은 아무 말도 못하고 뜸을 들이더니
어쨌든 안용호는 받을 수 없다고 하였다
하도 질려 버려서 안성에 있는 그 어떤 병원도 그의 입원을 허락하지 않았다...
늦은 밤...
벌써 11시가 넘어서는 시간,
비가 내리는 추운 날씨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를 데리고 그가 얻어 놓았다는
방을 찾아 나섰다...
술에 취해 잘 걷지도 못하는 데다가 나를 알아봤다 못 알아봤다하는
그를 데리고 한 밤중에 후미진 골목에서 그의 집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또한 그의 몸은 오줌과 똥과 술로 뒤범벅되어
악취가 코를 찔렀다.....
간신히 그의 월세 단칸방을 찾았다
나는 안성에서 14년을 살면서 시내 중심지에 그런 허름한
집들이 있음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의 단칸방은 전기도 안들어왔다
후에 안 일이지만, 화재의 위험성 때문에 옆 집사람들이
그의 방으로 연결된 전기를 끊어 놔 버렸던 것이다
더듬더듬 방문을 여는 순간,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나를 어지렵혔다
소변찌린내와 술등이 짬봉이 되어 정말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옆 집의 문을 두들겨 주무시는 아주머니에게 어렵게 부탁하여
후레쉬 하나를 빌어 그 방안을 보는 순간 도저히
사람이 사는 방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소주병과 막걸리 병을 비롯 온갖 쓰레기들이 가득차 있었고
먹다 가 말아버린 음식등이 어집럽게 놓여있었다
얼마동안이나 난방을 하지 않았는지 한 겨울의 냉기가 무섭게 느껴졌다
전기도 없고 난방도 되지 않는 화장실보다 더 더러운 이곳에서
그냥 삶의 목적도 잃은채 짐승처럼 죽을 날만을 기다리면서
그는 살고 있었다....
대충 그가 잘 수 있도록 해 놓고
주머니에 약간의 돈을 넣어 준다음에 12시가 다 되어 돌아왔다...
그 다음날 일찌기 나는 우리 교인 두명을 데리고 갔다
내가 지난 밤에 준 돈으로 또 술을 먹고
입은 옷 웃도리에까지 오줌을 싸 가지고 훔뻑 젖은 모습으로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정도로 이불을 뒤집어 쓴채로
깊고고 깊은 마치 죽은 것처럼 자고 있었다.....
추위에 떠는 그를 일단 근처의 여관으로 옮겼다
목욕을 하고 옷도 갈아 입히고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자도록 해 주었다
그리고 이틀동안 나는 그 방의 모든 쓰레기들을 트럭을 대놓고
실어 옮겼고 방안을 도배하고 장판을 새로이 깔고
전기 시설을 모두 새로이 가설해주고
침대를 가져다 놓아주고 전기 장판을 새로이 사다 깔아주고
새이불과 담요 등도 챙겨다 주고
마트에 가서 전기밥통과 가스렌지, 쌀, 밑반찬, 각종 그릇들과
생활 용품 등을 골고루 사다가 놓아 주었다.
그리고 그가 입을 수 있는 옷가지들을 마련하여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이틀동안 여관에 잔 그를 데려다가
새롭게 단장된 집에서 자게 하고 밥통에 쌀까지 얹혀주었다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새로 사온 밥상에사 수저와 젖가락까지 놓아주고
끼마다 밥을 잘 먹으라고 신신 당부한 후 돌아왔다
그 다음날 궁금하여 가 보았더니
그는 문을 잠궈 놓고 열어 주질 않았다
20일날 나온 생계보조금 30여만원 돈을 찾아다가
이제 또 작정하고 방 잠궈놓고 술을 먹고 있었다.....
정말....
이 사람이 사람일까???
정말....
짐승만도 못한 자기를 용서하고 이렇게까지 내가 해 주는데..
양심이 있지 하루도 안되어 또 술을 먹고 있다니.....
........
사람이.. .어쩌면 ... 이럴 수 있을까?
그래도 그런 사람을 또 사랑해야 하는 것이
우리여야하니.........
그 다음날 찾아간 안용호의 방
그래도 양심은 있었는지...
내가 온다는 말을 알아 듣고 술 병은 모두 마당으로 치워놓은 상태였다..
첫댓글 어이쿠 말이 안 나온다
-.-.........마치 저를 보는듯(?) 예수님의 은혜를 항상 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