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제 공동체를 이끌어가던 로제 형제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날 8월 16일이 있던 주간에는 멀리서 이곳을 찾아 준 반가운 손님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느라 겨를이 없던 차에, 우리 교회 회원 이현우 전도사님이 그의 부고를 카페에 올려 주셨습니다. 기도 모임 중에 정신에 병을 앓고 있던 한 여성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인류의 평화와 일치를 위해 평생을 바쳤던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이 이처럼 처참하리라고는 감히 상상조차도 하지 못했으니까요.
프랑스 떼제 공동체로 향하는 전 세계 신앙인들의 메일이 줄을 이었고,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비의 언어로 평생 하나님을 찬미했던 그의 삶은 그를 죽인 여성에게 돌을 던지지 않습니다. 그의 죽음 직후에 드려졌던 기도 모임에서 떼제의 프란치스코 원로 수사가 설교한 것처럼, 그는 진정 ‘하나님의 친구’로 이 세상을 살다 간 것일 테니까요. 하나님은 그의 죽음을 소중하게 여기실 테니까요.
로제 형제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찬미하는 마음을 지닐 때, 우리는 자신을 벗어나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괴롭히던 것들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내면 깊숙이 자리한 반감과 저항이 변모되어 갑니다. 공동기도를 통해 하늘의 기쁨이 이 땅에 전해지는 곳에서 찬미하는 마음은 피어납니다.”
로제 형제가 1940년에 떼제 공동체를 처음 시작했을 때 가졌던 의문부호는 이러한 결론으로 해답을 얻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랑이신 그리스도를 따른다 하면서도 분열과 전쟁을 일삼고 있는 시대적 물음에 그는 하나님을 ‘찬미하는 마음’으로 마침표를 찍으려 했던 것입니다. 목마름에 이끌려 생명의 샘물을 찾아 떠나는 생명체들의 여정은 이와 같은 찬미하는 마음으로 귀결될 것이며, 이러한 상태에서 비롯되는 공동의 고백과 기도는 끝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엮어줄 수 있다는 확신을 전 생애를 통해서 보여준 것입니다.
고사리 교회에서는 떼제의 노래로 함께 예배하는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이 모임을 준비하고 진행되는 동안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벌써 3년 째 이 예배를 지키고 있습니다. 때때로 모임이 이루어지지 않아 가족만 모여서 예배할 때도 있었지만, 그동안 많은 교회들이 이곳을 찾아 떼제의 노래를 통해 초대교회를 경험하고, 떼제의 노래를 통해 희망과 화해를 경험할 수 있었던 순간들은 아마도 짧은 목회 기간 중에 가장 큰 기쁨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로제의 말처럼 찬미하는 마음으로 충만하지 않았더라면, 많은 어려웠던 순간들을 헤쳐 나갈 지혜가 어디로부터 왔을지 알 길이 없습니다. 찬미하는 마음은 모든 신앙인들이 어험한 산길을 지날 때에라도 빛을 볼 수 있는 눈과 귀를 활짝 열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인가 봅니다.
이제 하나님 곁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그를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떼제의 노래를 따라 불러 봅니다. 꽃은 져버렸지만 꽃 진 날들의 푸르름이 오래 지속될 것을 기약하면서, 그리고 우리도 그 푸르름에 동참하는 작고 이름없는 꽃으로 살기를 약속하면서 도종환님의 시를 그의 가는 길에 바칩니다.
2005년 8월24일 로제 형제의 죽음을 애도하며 임태일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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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꽃나무 도종환
꽃 피던 짧은 날들은 가고 나무는 다시 평범한 빛깔로 돌아와 있다 꽃을 피우지 못한 나무들과 나란히 서서 나무는 다시 똑같은 초록이다 조금만 떨어져서 보아도 꽃나무인지 아닌지 구별이 안 된다 그렇게 함께 서서 비로소 여럿이 쉴 수 있는 그늘을 만들고 마을 뒷산으로 이어져 숲을 이룬다 꽃 피던 날은 짧았지만 꽃 진 뒤의 날들은 오래도록 푸르고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