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신앙과 지성이 조화된 따뜻한 가정에서 자라난 싱클레어라는 소년은, 점차 어둡고 거친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그 때마다 데미안은 소년을 구해내고 그를 자기 발견의 길로 인도하는데,
즉 데미안의 인도를 받아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인도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없다라는 사실을 깨닫고 깊은 자아성찰에 이르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느낀점>
나는 무엇일까? 나는 왜 살아가는 것일까? 라는 질문은 어느 시대이고 중요하고 애매한 과제로 취급되어져 왔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인간 정체성의 위기가 찾아왔다.
산업혁명이 시작 되면서 기계가 인간의 일을 대신하게 되었다. 노동자는 기계와 똑같이 대우 받아야 했으며 오직 그의 생산력으로 밖에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는 도중에 상류층 사람들은 엄청난 부를 누리고 살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의 세계는 선하고 경건한 세계였다.
그들 모두는 하느님께서 자기와 함께 계시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성경의 말을 잘 따랐다.
이 글의 주인공 싱클레어도 부자들의 세계에 속한 아이였다.
그는 어렸기 때문에 자신의 세계와 다른 하층민들의 세계에 대해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고 마침내는 그 세계에 속하게 되었다. 그걸 악용한 클레머는 싱클레어에게서 계속 돈을 뜯어내고 그는 자신이 악한 세계에 속하게 되었다고 자책하며 병져 눕게 된다.
그런데 그의 학교에 인생에 걸친 조언자가 될 데미안을 만나게 되고 그의 도움으로 클레머의 손에서 빠져 나올 수 있게 된다. 그는 싱클레어에게 성경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다.
데미안은 카인에 대해 성경에 나오는 설명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카인은 범인들보다 좀 더 많은 정신력과 대담성, 힘을 지닌 사람이기에, 범인들은 스스로의 편안함과 정당성을 위해 자신들에게 불안을 주는 카인을 흉측한 사람으로 몰아세운 것이라고. 그래서 카인의 후예, 즉 카인의 표지를 지닌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물론 내가 독실한 크리스찬은 아니지만 그의 성경 해석은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사실 카인은 질투심에 동생을 죽인 비겁한 살인자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감히 그 생각에 반론을 펼칠 수 없었다. 그것은 현실세계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보다 더 많은 정신력과 힘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개혁하려 할 때 그들을 조소하고 비난한다. 그렇다면 이들 모두가 아벨의 후예들인가?
그렇지 않다. 단지 그들이 모르고 있을 뿐이다. 오직 선한 것만을 추구해야하는 사회에서 아이들은 자라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카인의 표시를 점차 잃고 있는 것이다.
그 사실은 우리가 숭배하는 신에서 볼 수 있다. 하느님이라는 존재는 악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와 절대선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세상에는 선과 악 두개의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어느 한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다른 세계는 힘을 잃고 무너져 버린다.
나도 혹시 선함만 추구하는 사람이 아닐까? 자신을 잃어버리고 오로지 타성만을 쫒는 사람이어 왔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나에게 용기를 주는 구절이 하나 있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여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이 글은 데미안이 싱클레어의 꿈에 대해 해석한 것이다. 그는 여기서 싱클레어는 자기가 속한 집단성을 지닌 사회를 벗어나 자기 자신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 때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회를 탈피한다는 것은 결코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무인도에서 혼자 사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정신적으로 나를 구속하는 모든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기 완성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 바로 이것이 세계를 파괴하는 것이다. 한 세계를 파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를 보호해 주고 감싸주던 나의 도피처를 과감히 벗어나야 하며 나를 조정하는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 때에는 남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결코 이것이 이기주의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그렇게 되면 나는 범인들이 두려워하는 자, 곧 카인의 표지를 영원히 지니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극소수의 용감한 사람이 되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