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
기도생활과 관계되는 가장 결정적인 하느님 현존의 양상 가운데 하나는 마음 안의 현존입니다. 이 점에 관해서는 앞 장에서 ‘우물’에 비유하여 간략하게 살펴본 바 있지만, 이제 좀 더 깊이 있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느님께서 감춰지셨으나 실제로 우리 안에 현존하신다는 것은 신앙의 진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라고 선언하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 사시며”(에페 3,17)라고 말하기도 하고, 우리의 몸은 “성령의 성전”(1코린 6,19)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중세의 어떤 그리스 수도자는 “그대가 성전이니, 다른 곳을 찾지 마시오!”라고 말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생명과 움직임과 존재’를 주시는 창조주로서 우리 안에 현존하십니다. 또한 은총과 사랑으로서 현존하시는데, 우리 마음속에서 사랑이 커감에 따라 이 현존은 더욱 강렬해집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3)
세례를 통해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살고자 오십니다. 그분의 현존은 신앙과 사랑이 성장함에 따라 더욱 뚜렷하고 확고해집니다. 이 같은 진리에서 매우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귀결이 나옵니다. 기도의 본질적 차원 중 하나는 잠심과 내면화의 움직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움직임을 통하여 자신 안으로 들어가 그곳에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과 만나게 됩니다. 이 현존은 경험이나 감각의 대상이 아니고 신앙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앙을 지니고 기도하면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분과 만나기 위해 우리 안으로 잠심하는 노력을 자주 기울인다면 이 같은 신앙은 차참차츰 현존을 경험하게 할 것이고, 우리 안의 가장 깊은 곳에 하느님께서 평화, 거룩함, 순수함, 행복의 마르지 않는 샘으로서 충만한 생명과 은총으로 함께 머물고 계심을 확인시켜 줄 것입니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는 기도하는 데 수많은 어려움을 오랜 세월 동안 겪고 나서야 위대한 신비가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신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바견함으로써 기도생활이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성녀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러면 성 아우구스티노가 하신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여러 곳에서 하느님을 찾다가 결국 자기 자신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이 진리를 깨닫는 것이 어수선한 영혼에 있어서 대단찮은 일이라고 여기십니까? 영원하신 아버지와 이야기하고 같이 즐기기 위해, 구태여 하늘로 올라갈 것도, 큰 소리로 말할 것도 없다는 이 진리를 아는 것이 대단찮은 일이라고 여기십니까? 여러분이 아무리 낮은 소리로 말하더라도 주님은 우리 곁에 계시니 우리 말소리를 들으실 것이고, 주님을 찾아가는 데에는 날개가 필요없을 것입니다. 오직 고요 속에 ‘나’를 두고 ‘나 안에서’ 당신을 보면 그만인 것입니다. 그토록 좋으신 손님을 앞에 두고 서먹해할 것 없이 다만 겸손되이 아버지께 하듯이 말씀드리고, 청하고, 고생을 이야기하고, 돌보아 주시기를 빌고, 그러면서도 여러분은 그분의 부당한 자식이라고 느끼면 되는 것입니다.(완덕의 길, 제28장, 205-296쪽)
여러분은 이 말을 듣고 뻔한 일 아니냐고 하면서 웃을 것입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하지만 내게는 한동안 깜깜할 때가 있었습니다. 물론 영혼이 있는 줄이야 알고 있었지만 그 영혼이 얼마나 값지며, 그 안에 어떤 분이 계시는가에 대해서는 몰랐습니다. 나는 세상의 헛된 영황에 눈이 어두워서 이것을 못 보았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내가 지금의 나처럼 내 영혼의 작은 궁전 안에 하늘나라의 임금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았던들, 그토록 당신을 혼자 버려두지 않고 다만 몇 번이라도 당신과 같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토록 내 궁전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조심하였을 것입니다. 아무튼 억천 세계를 당신의 크심으로 채우실 수 있는 그분께서 이 조그마한 것 안에 당신을 용납하시다니, 이렇듯 신묘한 일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정말로 주님이시기에 당신 자유대로 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 치수에 당신을 맞추시는 것입니다. 영혼이 이 길에 처음 들어섰을 때는, 그토록 작은 것이 그토록 크신 분을 자기 안에 지니는 것을 보고 그가 놀라서 자지러질까 봐 당신을 알려주시지 않으십니다. 차츰차츰 그 영혼을 키워가면서 당신이 그 안에 자리를 잡으실 만큼 키워놓으신 다음에야 그에게 알려주십니다. 당신 자유대로 하신다고 했는데, 이는 당신 마음대로 이 구전을 크게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이 궁전을 당신 것으로 아낌없이 드리고 말끔히 비워드려서 당신이 쓰시든 쓰시지 않든 당신 처분대로 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주께서 권리를 가지셨으니 당신은 이것을 거절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완덕의 길, 210-211쪽)
이 같은 사실에 대해 약간 다르게 표현하는 십자가의 성 요한의 아름다운 문장이 있습니다. 조금 조금 긴 인용이 되지 않을까 싶지만 여기에 그대로 인용하고자 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말씀은 본질적으로나 현존으로서나 성부와 성령과 일치를 이루어 감춰진 모습은 영혼의 본질 안에 머물고 계심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분을 찾고자 갈망하는 영혼은 감정과 의지에 따라 모든 피조물로부터 나와야 하고, 자기 자신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또한 깊이 잠심하여 모든 피조물이 그 영혼에게는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숨어 계시기에 참된 관상가는 “당신은 어디에 숨으셨습니까?”라고 말하면서 마음에서 그분을 찾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피조물 중에 가장 아름다운 영혼이며, 그대는 그대의 사랑을 찾아 일치를 이루기 위해 어디서 그 사랑을 찾을 수 있는지 알기를 열렬히 바랍니다. 그대는 자신이 그분이 사시는 현존이고 그분이 숨으시는 은둔처인지를 모릅니까? 이것은 그대에게 얼마나 큰 즐거움이고 위로입니까? 그대의 보물이자 그대 희망의 대상은 너무나 가까이 있어 그대 안에 계십니다. 더 분명하게 표현하자면, 그대는 그분 없이는 존재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신랑이 그대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십시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 또 그분의 종인 사도 바오로가 우리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성전입니다.”(2코린 6,16)
하느님께서는 결코 영혼을 떠나지 않으심을 아는 것은 엄청난 위안입니다. 그분은 죽을 죄를 지은 사람도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은총으로 가득한 영혼 안에 그분이 머무르신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벗이여,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바깥에서 무엇을 찾고자 합니까? 바깥에서 무엇을 찾고자 합니까? 그대는 이미 그대 안에 그대이 재산, 기쁨, 즐거움, 만족, 왕국, 다시 말해 그대가 갈망하며 찾아 헤매는 사랑하는 분을 소유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대에게 그토록 가까이 계시는 분과 동행하면서 그대 내면의 잠심 가운데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그대 안에서 그분을 경배하고, 바깥에서 그분을 찾지 않도록 하십시오.
이처럼 우리 마음 안에 머무르시는 하느님과 신앙을 통해 일치하는 것에 대해 경탄하며 그와 같은 일치로 초대하는 그리스도교 영성 서적은 무수히 많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상호관계를 위해 외적인 행동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내면에서 하느님을 찾기 위해 침묵과 잠심, 우리 안에 머무르시는 현존에 집중하면서 모든 것에서 떨어져 나와야 할 순간도 있습니다.
따로 기도 시간을 갖고, 또 하루 중에도 자주 짤막한 기도를 바치는 식으로 기도에 습관을 들이면, 우리는 외적 행위로 흥분된 순간에도 점차 하느님과 일치를 이룰 수 있고, 이처럼 친밀한 현존 안에서 힘과 지혜, 평화를 길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피상적이고 소란하며 무질서하고 충동적인 삶이 아니라 하느님이 거하시는 참된 중심인 마음에 근거한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기 위해 때로 사물과 사람을 떠날 줄 앎으로써 우리는 가장 효과적으로 사물과 사람과 일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한 영혼은 행복합니다. 세상 전체를 얻은 것보다 더 행복합니다. 에디트 슈타인의 말로써 결론을 대신하려고 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하느님은 거룩한 삼위일체이신 분입니다. 이 세상 어디에 있든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잘 닫힌 작은 방을 만들고, 가능한 한 자주 그곳에 들어가기를 배우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우리가 내면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발견하면 끝없이 화려함만을 좇는 우리 시대의 지배적 특징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을 것입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