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식별
“당신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히브 119,105)라고 시편은 노래합니다. 실제로 하느님 말씀과의 규칙적인 대면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느님 말씀만이 우리 삶의 진실을 알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말씀이 지닌 식별의 힘은 히브리서 구절에 잘 나와있습니다.
“사실 하느님이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어떤한 피조물도 감추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 그분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이러한 하느님께 우리는 셈을 해드려야 하는 것입니다.”(4,12-13)
성경은 우리 자신의 선과 악을 진실하게 비춰주는 거울과 같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죄스러운 행위, 모호함, 비복음적인 태도를 고발하지만, 또한 우리 안에 있는 좋은 것들을 끄집어내어 해방하고 성장시킵니다. 성경은 혼과 영을 가릅니다. 달리 말하면 심리적인 구조물(상처받은 우리 인간성에 속하는)과 영적인 구조물(사랑의 역동성에 속하는) 사이를 구별합니다. 사도 야고보는 거울의 이미지를 사용하면서 우리가 ‘자유의 완전한 법’이라 불리는 말씀에 집중하도록 초대합니다.
“그러나 완전한 법 곧 자유의 법을 들여다보고 거기에 머물면, 듣고서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실천에 옮겨 실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한 사람은 자기의 그 실행으로 행복해질 것입니다.”(1,25)
규칙적으로 하느님의 말씀과 대면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오직 말씀만이 우리 존재 안에서 식별하고 진실을 밝히는 근본적인 작업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려면 날마다 이러저러한 구체적 성경 구절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도록 허락해야 합니다. 이것은 분명 위험을 감수하는 일입니다. 말씀은 때때로 우리가 별로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씀은 결국 생명과 자유와 평화의 작업을 수행합니다. 우리를 고치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하면서 우리에게 생명을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요한바오로 2세 교황님이 교서 <새 천년기>에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봅시다.
특히 하느님 말씀 듣기는, 오래되었지만 언제나 유효한 전통인 영적 독서lectio divina를 통하여 생명을 주는 만남이 되어야 합니다. 영적 독서는 우리의 삶에 의문을 제기하고 우리 삶을 인도하고 형성하는 생명의 말씀을 성경 본문에서 이끌어 냅니다.
모든 성경 구절을 곧바로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구절은 애매하고 간혹 충격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지하게 탐구하다 보면 분명히 빛을 발견할 것입니다. 이런저런 성경 구절의 뜻이 밝혀지면서 우리 마음을 사정없이 두드릴 것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해 당신 제자들에게 하신 것처럼,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주실 것입니다.”(루카 24,25)와 같은 깨달음은 천천히 일어나지만, 분명히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말씀의 보화를 맛볼 수 있게 하는 내적 깨달음을 가져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회개하고자 하는 참된 욕구입니다. 기도 시간에 하느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고 확신하면서 성경을 읽는다면, 그리고 성경 말씀이 마음을 움직여 우리 죄를 들여다보게 하고 참된 회개로 이끌어 주기를 진지하게 바라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고 말씀을 실천하려고 결심한다면 말씀의 뜻이 밝히 드러날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 해석의 주된 원칙입니다.
저는 다른 것들이 불필요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가능하다면 성경을 공부하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는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알았더라면 매우 좋아했을 것입니다. 성경 해석을 위한 교육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성경의 보물은 학자나 지식인에게 열려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을 더욱 사랑하고 복음으로 회개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열려있다는 점입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