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화식열전과 평준서 말미에는 태사공 사마천이 쓴 글에 따르면 魏나라는 이극을 등용하여 지력을 다하는 농법으로 강력한 군주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서 식화지에는 이회((悝-근심할 리, 농할 회, 사람이름 회)라고 하며, 위문후와 만나 부국강병을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식화지에는 매우 자세하게 그 방법이 설명되어 있고, 그래서 위나라가 매우 부강해졌다고 결론 맺고 있습니다.
이 두 기록을 놓고 볼 때 이극과 이회는 동일인물로 보입니다. 당나라 사마정이 쓴 사기 색은, 한나라 유향의 별록 등에는 이회 즉 이극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백과사전을 보면 이회는 곧 이극이며,
이회는 위문후의 신하로 곡물가격을 통제하여 기근에 대비하기 위해서 상평창의 선국가 되는 제도를 고안하는 자이기도 했습니다. 또 여러 가지 법을 정리하여 법경(法經) 6편을 편찬했다고 합니다. 이 책은 秦나라 상앙, 漢의 소하로 이어지는 중국 법전의 효시라고 할 수 있으며, 한서 예문지에는 그의 저서로 李子 32편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서 예문지에 이자 32편의 저자 이회는 법가로 소개되어 있고, 이극은 별도로 이극7편이라 하여 공자의 제자인 자하의 제자로 유가(儒家)에 속한 사람으로 위문후의 재상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기 위세가에는 이극이 위문후와 대화한 내용이 비교적 길게 나오는데, 사람을 천거하는 내용으로 유가적 인물로 보입니다. 위문후 또한 자하에게 경서를 배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기 고증(일본 용천귀태랑)을 보면 이극의 유가이며, 농법을 가르친 사람인 법가(法家)인 이회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고증을 했던 것입니다.
첫댓글 답변 감사드립니다 -
답변 감사드립니다. <회주고증>에 있는 내용이군요. 전국사에 막 빠져들려구 하는데, 첫부분인 이회부터 막혀가지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