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여호수아의 비전과 리더십
여호수아 1:1-11
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4.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5.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7.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9.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10. 이에 여호수아가 백성의 유사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11. "진중에 두루 다니며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양식을 예비하라. 삼일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얻게 하시는 땅을 얻기 위하여 들어갈 것임이니라" 하라."
교회의 영적 리더십은 자기가 자원해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워주십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리더십을 갖춘 사람들이 스스로 나서서 리더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찾아가셔서 그를 부르시고(calling) 그에게 비전을 주셔서 그 비전을 통한 사명감을 갖고 리더가 되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훌륭한 지도자 훈련을 받더라도 하나님께서 세우지 않으시면, 영적 리더의 자리에 오를 수 없습니다.
특히 요즘은 지도자라고 할지라도 사람들이 그 사람을 존경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중에 대통령을 지극히 존경하시는 분 계십니까? 만약 대통령이 여러분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다면 그를 좋아하며 그의 말에 따르겠지면, 그와 반대일 경우에는 이름을 불러가며 갖은 비판을 하지 않습니까? 지금의 시대는, 높은 지위에 있다고 해서 반드시 사람들이 존경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중에 "오바마 대통령 각하께서~"라며 말씀하시는 분 계십니까? 아마 없으실 겁니다. 그저 "오바마가~"라는 식으로 이야기 합니다. "이명박대통령"이라기 보다는 "이명박이~" "박근혜가~"라고 하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지금은 참된 리더십을 찾아보기 힘든 리더십의 고갈상태에 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사람의 직책을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기 보다는 그 사람의 지도력과 인격 등을 경험해 본 뒤에 그 직책을 인정하기를 원합니다. 따라서 참된 리더십을 갖추기 위해서는 무슨 지위를 갖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느냐를 먼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여호수아를 통해 영적인 지도자의 비전과 리더십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남자라면 가정에서 가장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가정에서 리더의 자리에 있는데, 여러분이 리더로서의 생활과 여호수아의 삶을 비교해보면서 여러분의 비전과 리더십을 점검해보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여성도 리더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자녀들에게 아버지만이 아니라 엄마도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이며, 특히 세상에서 크리스천은 누구나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 오늘 말씀을 통해 하늘의 지혜를 깨닫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여호수아는 리더가 되기 위해 위대한 영적인 지도자인 모세의 밑에서 훈련된 사람이었습니다.
에브라임지파 사람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가 되기 전에 항상 모세를 따라다니며 모세의 모든 명령에 순종하며 그의 옆에서 수종을 들었습니다. 심지어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위해 시내산에 올라갈 때에도 여호수아는 함께 동행하였습니다. 그는 항상 회막 곁에 있었고 회막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출 33:11). 회막은 하나님께서 계신 곳으로 오늘날의 교회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모세가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에 보냈을 때에 10명은 부정적인 말을 하여 죽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만은 여호와께서 승리를 주실 것이므로 쳐들어가자고 하여 그 당시 20세 이상된 사람 중에 두 사람만 죽음을 면했습니다(민 13:1-14:32). 그는 항상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행동으로 보였으며, 어떠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사람인 모세와 하나님께서 계신 회막을 떠나지 않고, 자기의 자리를 성실히 지켰던 순종과 충성의 사람이었습니다. 그후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모세의 후계자로 안수를 받습니다(민 27:18-23).
그가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위대한 영적인 지도자의 밑에서 훈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지도자는 많은데, 참된 하나님의 종은 찾아보기 힘든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르치지 않고/ 잘못된 말씀을 가르치므로 제대로 지도자 훈련을 받기가 힘든 시대가 된 것입니다.
잠깐 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초등학교에 다닐 적부터 제 아버지 고김리관목사님을 무척 존경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항상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초등학생 시절에 저희 집에 영어 타자기가 있었는데, 그것을 연습하는 것을 보시며 저희 아버지께서 저에게 이다음에 아버지 비서가 되라고 하셨을 때에 영타를 조금 연습하는 것을 보며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시나...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자주 저에게 "수경아, 너에게는 한국땅이 너무 좁다. 너는 스케일이 커서 미국에 가서 살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부모님께서 제가 어떤 이름을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좋을까를 의논하시는 것을 자주 보고 들었습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두분은 저의 다른 이름을 "에스더Esther"라고 결정하셨고, 항상 가정 예배때마다 “에스더처럼 나라와 민족을 구하는 주님의 귀한 딸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는 것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미국에 와서 아버지께서 목회를 하실 때에 저는 중앙일보 편집부에 있었기 때문에 컴퓨터를 배우게 되었고, 교회의 주보나 요람은 모두 제가 만들었고, 또한 심방가실 때마다 운전수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수경아, 네가 우리교회 전도사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때가 20대였습니다. 결국 저는 아버지 옆에서 목회를 배우게 되었고, 아버지의 비서 역할을 하였고, 드디어 2년전에 저희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이제는 이름을 Esther라고 하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다 이루어졌던 겁니다.
저희 아버지는 매주 주말이면 교인들 한 명 한명에게 전화를 하셔서 안부를 묻고 내일 교회에서 보자고 아주 간단히 전화를 하셨고, 교인들의 생일에는 간단하지만 생일을 축하한다는 생일 카드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눈이 오면, 제일 먼저 교회에 가셔서 눈을 치우시고, 교회에 사찰이 있는데도 그 큰 교회를 돌아다니시며 쓰레기를 줍고, 잡초를 제거하여 옷에 떼가 뭍어서 돌아와서는 어머니께 한 소리를 듣기가 일쑤였습니다.
새벽기도회는 부교역자를 시키지 않으시고 한 번도 빠짐없이 인도하셨고, 항상 부지런하시며 몸소 본을 보이시느라 잔소리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담임목사님이 먼저 섬겨주고 궂은 일을 도맡아 하므로, 젊은 부교역자들이 가만히 있을 수 없었고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교역자 사례비는 항상 월초에 주셔서 그들이 기분좋게 일하게 하셨고, 무엇보다 그들을 믿어주셨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20대 초반에 한국에서 잠시 아버지를 운전하며 모시고 다닌 적이 있었는데, 어디를 가자고 하셔서 가보면, 연로하신 분들을 찾아가서 절을 하고는 용돈을 주시고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불구자나 가난한 이들을 찾아가셔서 역시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용돈을 주고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2년만 더 목회를 하시면 20년이 되어서 그 교회에서 연금을 받으실 수 있는데도, 교회에 짐을 주기 싫으시다며 미국으로 이민을 오셨습니다.
미국에 오셔서는 운전을 못하시므로 다른 목사님들의 신세를 질 때마다 반드시 식사를 대접하시거나 개스비를 주셨고, 톨비를 내야할 때에는 아버지께서 내셨고 항상 긍정적이시며 젊은이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기 때문에 목사님들은 서로 앞다투어 아버지를 모시고 가려고 했습니다.
부부관계에 있어서도 엄마가 뭐라고 하시면, "다~ 내가 잘못했수다. 용서하시우~"라고 이북말로 하시는데, 어느 여자가 남편이 잘못했다고 하는데 기분 나빠할 사람이 있습니까? 그래서 싸움이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외국에 나가실 때에도 교인들이 공항에 다 나와있는데도 불구하고 저희 아버지는 엄마를 안아주시며 "사랑합니다"라며 볼에 뽀뽀를 하셔서 교인들을 웃게 만드셨습니다. 옛날 분이 이런 분은 별로 없지 않습니까? 총회장이 되셨을 때에도 혼자서 영광을 받지 않으시고, 그 동안 많이 고생하셨다면서 엄마를 앞으로 나오시도록 하셔서는 금반지를 선물하시므로 모든 사람이 엄마를 바라보며 부러워할 정도로 무척 엄마를 위해 이벤트를 많이 하셨습니다.
또 자녀교육에 있어서 한 번도 공부를 못했다고 야단을 치신 적이 없으셨고, 혹시 야단칠 일이 있으시면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하지 않으시고 조용히 서재에 부르셔서 설교하듯이 타이르셨습니다. 제가 한양대학교에서 여학생회장에 출마할 때에도 아버지께서는 “떨어지더라도, 한 번 해봐라”라고 하셨습니다. “당선되는 것보다 떨어지는 것이 더 배우는 것이 많다”라고 하시면서요. 그러면서 제가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연설문을 그 다음날로 작성해 오셔서 읽어보라고 하셨고, 돈이 얼마가 들던 걱정하지 말고 청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항상 피아노와 첼로로 봉사를 해왔던 저와 플륫을 하는 서울대 다니던 언니의 친구를 위해 몇 년동안 봉사했으니 장학금조로 주기로 당회에서 결정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가대총무가 연말에 성가대원을 다 모아놓고 저와 그 언니를 불러서 금일봉을 전달했고 성가대원들은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저와 그 언니는 그 액수가 매우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끝나자마자 그 언니가 봉투를 열어보더니 저에게 “수경아, 거기 얼마 들어있니?”라고 해서 열어보았더니 만원짜리 한 장이 들어있었습니다. 그 총무가 해먹은 거였습니다. 그것을 아신 아버지께서 아무말도 하지 않으시고, 아버지께서 저에게 돈을 주셨습니다. 그리곤 교회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제가 악기를 하는 친구들을 데려오면 교회에서 지불하는 것을 믿을 수 없으셨는지, 반드시 아버지께서 오셔서 제 친구들에게 한 명, 한 명 고맙다며 용돈을 주셨습니다. 그것을 본 총무 집사님은 “목사님이 주셨으니까 안 줘도 돼지?”하며…
그렇게 순수하고 긍정적이시며 하나님밖에 모르시던 아버지 밑에서 교육을 받던 저로서는 아버지께서 은퇴하신 뒤에는 어느 교회에 가야하는 지가 고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를 모시고 다니다보니 뉴욕의 목회자들을 대부분 알게 되었고, 너무나 속속들이 알다보니 정말 갈 곳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제가 어릴 때에 아버지 밑에서 훈련시켜주셨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정한 목회자인 아버지 밑에서 잘 훈련받은 뒤에 여러 교회를 돌아다니며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진정한 목회자가 없음을 통탄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참된 영적인 지도자를 양성하는 지도자"가 되라는 비전을 주셨고, 결국 외롭고 고독한 좁은 길을 걸어오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군가의 밑에서 누군가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오셨을 겁니다. 특히 부모님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좋건 싫건 부모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의 부모에 대한 기록이 성경에는 전혀 나와있지 않습니다. 그의 부모가 어떠한 사람이었건 그가 영향을 받은 분은 하나님과 모세였습니다. 그것은 그의 선택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부모님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거나 믿음이 별로 없는 분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든지 부모의 영향을 거절하고 여호수아처럼 여러분의 멘토를 찾아서 그 사람과 가까이 지내야 합니다. 영적인 멘토는 우리의 삶 속에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도 이점은 항상 저희에게 강조하시며 3명의 멘토를 두라고 하셨습니다. 멘토를 가정에서 찾을 수 있으면 더할나위없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가정에서 찾을 수 없다면, 다른 곳에서 반드시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분과 의논하며 그분의 생활을 배우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저희와 함께 이 자리에 참석하신 장학호 선교사님은 저희 부부에게 아버지처럼 멘토 역할을 해주시는 분중의 한 분이십니다. 부족한 저를 격려해주시기 위해 이렇게 함께 참석해 주시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지 모릅니다. 제가 참 복이 많은 것 같습니다.)
(2) (여호수아는 위대한 영적인 지도자 밑에서 훈련을 받은 사람이었으며),
둘째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 하나님께서 친히 지도자로 임명한 사람이었습니다(민 27:18-23)
모세는 위대한 리더십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리더십 중에 여호수아와 다른 점이 있다면, 여호수아는 그가 죽을 때에 후계자를 세우지 않았지만, 모세는 죽기 전에 자기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을 이끌어갈 지도자를 세웠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나안땅을 바라본 뒤에 죽을 것을 말씀하시자 모세는 자기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을 이끌고 갈 지도자를 세워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는 신에 감동된 자니 그에게 안수하고 모든 이스라엘 회중이 그에게 복종하도록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렇게 여호수아는 자기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서서 지도자가 된 것이 아니라 그의 모든 생활을 통해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 하나님께서 지목하여 세운 지도자였습니다. 이렇게 영적인 지도자는 아무나 손을 들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하나님께서 세워야 진정한 영적 지도자인 것입니다.
오늘날 아무나 목사나 전도사가 되겠다고 신학교가 만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M.Div. 즉 목회학과는 3년을 해야하는데, 어떤 사람은 1년이나 2년에 마치기도 하고, 목회학박사는 돈을 주고 사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비행기를 타고 어디를 갖다오자마자 목사나 박사가 되어 돌아오기도 합니다. 그렇게해서 얻어진 목사나 박사를 하나님께서 인정을 하시겠습니까?
또 어떤 목회자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를 하면서, 교인들이 자기보다 성경을 더 많이 알고있기 때문에 신학교에 와서 더 공부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의 문제는 성경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신학교도 졸업하고 목회를 몇년간 하면서 겨우 성경을 2번 읽었다고 합니다. 정말 기가 막히는 일이지요? 성경은 읽지 않으면서 신학교에 와서 무엇을 배운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신학"이란 말이 무엇입니까? Theology라는 말은 Theo 즉 '하나님'과 logy '학문'이라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즉 '하나님을 공부하는 학문'이 바로 신학입니다. 따라서 신학의 기본은 '성경'입니다. '성경'은 제쳐놓고 아무리 다른 것을 열심히 공부할지라도 그것은 헛수고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사람을 영적인 지도자로 세우시지,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고 다른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을결코 위대한 지도자로 세우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여호수아는 어떤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을까요?
(3)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않고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출 33:11).
출애굽기 33:11을 보면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그 수종자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회막에서 만나는 동안 청년 여호수아도 회막에 있었고, 모세가 회막에서 나와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도 여호수아는 계속해서 회막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는 회막에서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 무척 부러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는 모세처럼 자기도 하나님과 직접 대화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나고싶은 갈급함이 그로하여금 회막을 떠나지 못하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경험을 해보셨을 겁니다. 어떤 신실한 하나님의 종을 보면서 도전을 받아 "나도 저사람처럼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면서, 그 사람처럼 되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며, 열심히 성경을 읽으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던 적이 있으실 겁니다. 그러나 아직 그런 사람을 못 만났다면, 여러분 스스로가 그런 사람이 되어서 주위에 도전을 받도록 노력해보시면 어떻겠습니까?
이렇게 여호수아처럼 하나님에 대한 갈급한 마음이 있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에 대해 별로 알고싶지도 않고, 현재 상태에 만족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그냥 놔두십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입니다. 사슴이 목이 말라 물을 찾는 것처럼 간절히 하나님을 찾는 사람을 하나님은 만나주시며 그에게 소명과 사명을 주시며 그를 위대한 지도자로 만드셔서 그를 통해 비전을 이루게 하십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더욱 알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성경을 읽고 그 말씀대로 행함으로 믿음의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4) 여호수아는 성령에 감동된 자였습니다(민 27:18).
성령에 감동되지 않은 사람이 하나님 곁을 떠나지 않고 항상 기도할 수 없습니다. 항상 하나님께 무엇이든지 여쭈어보고 행동하는 사람은 실수가 적습니다. 여호수아의 삶을 보면, 그는 전쟁을 하기 전에 항상 하나님께 여쭈어보고 행동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두가지 실수를 저질렀는데, 하나는 '아이성'전투이고, 다른 하나는 '기브온 사람들'이 찾아왔을 때였습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께 여쭈어보지 않고 행함으로 크게 낭패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그는 더욱 교훈을 얻고 그 다음부터는 결코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고, 항상 하나님께 여쭈어 본 다음에 하나님의 지시대로만 살았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내려놓고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때만 가능한 일인데, 이것은 성령에 감동된 상태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살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성령에 감동된 자"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있으시다면 다행이지만, 아직 그런 말을 들어보지 못하셨다면 분발하시기 바랍니다.
(5)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순종하므로 가족과 백성들의 순종을 얻어낸 사람입니다.
많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지 않으면서, 교인들이 자기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불평을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목회자에 대해 불평하는 것은 목회자가 목회자답지 않기 때문이지, 열심히 기도하며 열심히 성경을 연구하며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쓰며, 열심히 교인들을 돌보는 것에 대해 불평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가정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은, 부모가 자기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가 지도자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다 지켜 행하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그 율법책을 그의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며,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면 그의 길이 평탄하고 형통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그 약속을 믿고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나안을 점령한 뒤에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서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라고 담대히 선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말은 그의 말년에 한 말로, "나와 내 집은 그 동안 여호와를 섬겨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그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신앙생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한 마디 토를 달지 않고 무조건 순종하던 모습을 보면서/ 그의 가족들도 역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저희 가족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항상 천진난만하게 하나님밖에 모르시는 것을 보면서 저희 가족은 아버지가 원하시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해드리려고 했습니다. 교회의 무슨 행사가 있을 때마다 부모님과 언니, 남동생과 함께 저희 다섯 식구는 항상 함께 다녔습니다. 그래서 보는 목사님들마다 저희 아버지를 너무 부러워했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다 성장한 자녀들이 항상 함께 다니는 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서 말입니다.)
그의 가족 뿐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도 여호수아의 명령이라면 무조건 따랐습니다. 그래서 모세 시대의 사람들과 여호수아 시대의 사람들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모세의 추종자들은 불평과 원망이 습관화 되어있던 사람들이었고, 여호수아의 추종자들은 순종이 몸에 배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모세는 지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앞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또 백성들이 죄를 지었을 때에 차라리 자기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우고 백성들을 살려달라고까지 했던 위대한 사랑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에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라며 하나님을 화가 나게 했던 사람입니다. 또한 백성들이 물을 달라고 할 때에 하나님 앞에서 분노를 드러내므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더럽혔습니다. 또 사람들이 자기를 향해 공격할 때에는 하나님께 왜 자기를 그들에게 보내서 이렇게 고생을 시키냐고 항의하기도 했고, 하나님께서 친히 만들어주신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하고있는 사람들을 향해 집어 던지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여호수아는 온유한 사람이라는 말이 없고, 전쟁을 잘하는 군인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신이 백성들의 장로들에게 임하였을 때에, 하나님앞에 나오지 않고 자기 장막에 있던 사람들이 예언을 하는 것을 보며, 모세에게 그들이 예언하는 것을 그치게 하라고 했던 솔직하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왜"라거나 부르심에 "No"를 한 적이 없습니다. 모세의 명령을 받아 가나안에 정탐하러 갔을 때에도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긍정적인 보고를 했던 사람입니다.
따라서 그의 삶을 보면서 살아왔던 사람들은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했던 모습대로, 그들도 여호수아에게 순종하며 충성했던 것입니다. 모세는 홍해를 갈라지게 한 뒤에 백성들을 건너게 했지만, 여호수아는 요단강물이 출렁이고 있는 상황 속에서 제사장들이 그곳에 발을 담그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그런데 모두 그 말에 순종했습니다. 또 요단강을 건너서 그곳에서 할례를 행하라고 할 때에도 모두 순종했습니다. 만약 할례를 하면, 적군이 쳐들어 왔을 때, 전멸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모두 순종했습니다. 또 여리고성을 매일 돌라고 했을 때에도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여리고성을 도는 일에 있어서는 백성들보다 여호수아가 더욱 순종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는 군대를 이끄는 지휘관이었습니다. 전쟁에서의 전략과 전술에 뛰어난 그가, 아무 무장도 없이 여리고성을 돌기만 하다가 마지막 날에는 7바퀴를 돈 뒤에 큰 소리를 외치라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아말렉과의 싸움에서도 승리를 이끌었던 여호수아가 하나님께서 주신 “정말 터무니없어 보니는 전략”을 순종하는 모습을 보면서 백성들이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을 겁니다.
이처럼 영적인 지도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신뢰하며 순종하며 충성해야 하며, 그렇게 할 때에 자기에게도 그러한 추종자가 생긴다는 것을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그들의 상황이나 그들의 입맛을 맞추는 데 여념이 없는 사람은, 아직 한참 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영적인 지도자는 하나님의 눈치를 보며,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께 모든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진정으로 카리스마가 넘치는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못하는 지도자는 결코 사람을 이끌 수 없으며,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먼저 순종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순종하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자신이 순종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순종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지, 자신은 순종하지 않으면서 가족이나 추종자들에게 순종하라고 명령할 수 없는 겁니다. 백날 순종하라고 하더라도 결코 순종하지 않습니다. 보고 따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애를 쓰는 충성된 지도자가 말하면, 사람들은 귀를 기울입니다. 왜냐하면 리더십의 기초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들은 자기들보다 강한 리더를 좋아합니다. 자기들은 말씀대로 살지 못하더라도 지도자만큼은 말씀대로 살면서 또한 그렇게 살라고 강하게 이끌어주기를 원합니다. 따라서 담대한 믿음을 가진, 소위, 욕을 먹더라도 자신있게 밀어부치는 지도자가 사람들을 양성할 수 있는 겁니다.
이외에도 여호수아를 통해 배울 점은 다음 주일에 이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라는 말씀을 믿고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다 지켜 행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항상 기억하며 그 말씀을 그대로 믿고 살았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믿는 것보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사람들을 더 두려워하지는 않습니까? 사람을 두려워하면, 그 사람이 여러분의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두려워할 분은 오직 우리의 영혼을 천국과 지옥에 보낼 수 있는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내가 너희에게 준 모든 율법을 다 지켜 행하라.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져라.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나를 믿기만 해라.
전적으로 나를 신뢰하고 내 말에 순종할 때에 내가 너를 지켜줄 것이며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여호수아처럼 믿음의 일꾼, 충성된 군사, 순종의 종으로 살아가므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영적인 리더십을 소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크게 쓰임받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he 2nd Life Foundation
뉴 욕 퀸 즈 교 회
Esther Soo-Gyung Kim, Pastor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