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이 초청한 시인_ 강미영 신작시>
화계사 흰 머리카락이 늘어갈수록
강미영
오래된 삼양탕 근처를 돈다
동네를 따라 걷는다 풍경이 하나씩
공간 사이에 머문다 그 끝에는 화계사*가 있다
흰 머리카락 하나씩 늘어갈수록
모서리 둥글어지도록 감정을 사포질 한다
누군가는 모과향이 풍기는 사람으로 굳어가며
둥글어지지 말라고 말을 건넨다
둥글어지는 것이 열정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검은 머리카락이 뽑혀지고 있는 것이라고
둥글어지는 것은 서글퍼지는 것
밑줄을 긋고
화계사를 돈다 끝이 시작이라고
둥글어지는 것이 좋아 언어를 굴리기도
자전거를 타고 뚝 방 길을 돌고 돌기도 했는데
페이지가 바스락 거린다 문장은 간결해야 한다고
키가 같아진다고 그래야 서 있을 수 있다고 내리치고 내리쳤는데
입술이 얼얼해지도록 토하고 나면
감정은 메말라지고 다시 흰 머리카락 하나씩 생겨나고
다짐은 꼭 위에서 아프게 한다
보편적인 것이 가장 힘들고
평범한 것이 가장 어렵고
웃는 것이 가장 이질적이고
흰 머리카락이 하나씩 늘어 갈수록
자유롭지 못하고 대화는 점점 시들어지고
밖과 안으로 이어지는 끝에 화계사가 있다
* 수유동에 있는 사찰이며 조계사 총본산의 말사임
<시편이 초청한 시인_ 강미영 대표시>
스킨다빈스
강미영
처음 만난 A가 만들어준 차를 마셨다
양재동 꽃시장에 가지 않았으면 몰랐을 일인데
결혼식에 갔다 비가 오지 않았다
B와 시금치를 가방처럼 들었다
꽃이 없다 구별과 작별이야기를 하고 끝장난 이야기를 했다
스킨다빈스을 받았는데 시금치라 명명하자 비가 쏟아졌다
누구는 거짓을 말하고 누군가는 지하철을 탄다
비는 더욱 새파랗게 울었다
우리는 낄낄거렸다.
파르르 떨리는 문장들을 팔에 걸고 다녔다
소문이 아닌 진실은 루머처럼 이 잎으로 저 입으로 번졌다
잎이 口으로 뻗어나갔다
우리들은 화분을 들고 서로 다른 질문을 한다
비는 갑자기 폭우로 변하고 오후가 지나갔다
아직도 시금치를 이름으로 가진 스킨다빈스
거짓말 속에 진실로 오롯이 숨어 있는
아이스크림 이름처럼 멋지다
아이스크림의 이름을 닮은 우리들의 시금치
진실이 종종 진흙탕이 될 때도 있다
무거운 화분을 벗어던지고 손가락 없는 손바닥
스킨다빈스에 붙여 본다
셀 수 없는 배신들이 넘쳐난다
매일 일방적으로 시금치로 명명하고 스킨다빈스로 읽는다
본색이 나타날 때가지
부끄러움을 모르는
강미영 시인
2004년 《시와세계》 등단.
시집 『Y는 느티나무』 『브로콜리 마음과 당신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