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 반쯤 <사명당의집>을 나서는데 벌써 날이 어둑해집니다.
풍물시장 앞 노점상들은 대부분 철시를 했고, 남은 몇 가게가 부지런히
짐을 싸고 있습니다. 날이 일찍 어두운 것은 가을이 오는 조짐입니다.
굴다리 안은 평소보다 줄이 길었습니다. 대략 세어보니, 평소보다
20여명이 많은 110명쯤 되어보입니다. 아직 늦더위가 남아, 굴다리안은
무더웠습니다. 낮 선 얼굴들이 여러 명 보였지만, 무심한 가운데 줄이 지나갔습니다.
한 거사님은 정중하게 합장을 하며 과일과 떡을 받아갔습니다.
오늘 준비한 사과는 특별히 맛이 좋았습니다. 다같이 합장하며 따비를 시작할 때,
제영법사는 거사님들에게 사과는 깨끗하게 씻은 것이니 그냥 드셔도 된다고 공지했습니다.
이어 백발거사님이 250편의 백설기를 드렸고, 사과 220개는 퇴현 전재성 박사가,
저와 해룡거사는 100여잔의 커피를 타드렸고, 둥굴레차 100잔은 제영법사가 맡았습니다.
굴다리 안은 어둡고 적막한 곳이지만,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대하고 인사를 나누는
순간은 어둠이 뒤로 물러납니다. 따비를 끝내고 돌아서면, 굴다리 안은 다시 어둠이
빈 공간을 채웁니다. 어둠은 마치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을 보이지 않게 합니다.
자취가 사라진 어둠을 보면서, 조금 전 우리의 광경이 환영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눈과 눈, 마음과 마음이 오가는 순간은
환영이라기 보다,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려움없이 사람을 만나는 것이 곧 기적이 아닐까요?
두려움이 사라지는 길을 보여준 부처님의 가르침이 새삼 절실하게 다가왔습니다.
(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