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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儒學)의 시대적 변천과 목표 |
이 광 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 |
필자는 ‘학문으로서의 유교(儒敎)와 유학(儒學)’을 통하여 유교와 유학은 가르침을 베푸는 자와 배우는 자의 입장에 따라 이름을 달리 하지만 그 내용은 동일하다고 설명하였다. 유학은 동아시아 2천여 년 역사와 운명을 함께 하며 그 명칭도 다양하다. 한대(漢代)의 훈고학(訓詁學), 당대(唐代)의 사장학(辭章學), 송대(宋代)의 성리학(性理學), 명대(明代)의 양명학(陽明學), 청대(淸代)의 고증학(考證學) 등이다. 선진시대의 유학은 학문을 통하여 도를 알고 실천한다는 이상주의적 성격이 강하지만 역사 안에서의 유학은 각 시대마다 차이는 있지만 어용적 체제유지적 성격이 강하다. 진시황제가 천하를 통일한 뒤 전횡(專橫)을 위하여 분서갱유(焚書坑儒)를 하자 백가쟁명(百家爭鳴)으로 한때 활짝 꽃이 피었던 자유롭고 이상주의적 지향을 가진 학문정신은 사라지고 영웅이 지배하는 힘의 시대가 시작된다. 수년의 전쟁으로 천하를 통일한 한(漢)의 고조(高祖)는 국가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유학을 필요로 하게 되고, 영토를 동과 서로 확장한 한(漢)의 무제(武帝)는 “파출백가(罷黜百家), 독존유술(獨尊儒術)”을 표방하며 유교를 한왕조(漢王朝)의 국교로 선포한다. |
이상주의적 성격과 체제유지적 성격 |
한대(漢代)의 유학은 분서갱유로 일실(逸失)된 경전의 발굴과 올바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을 일차적 목표로 삼았다. 문자 그대로 훈고학이다. 당대(唐代)의 유학은 경전학습을 통하여 훌륭한 문장을 지어 과거에 합격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송대의 유학자들은 시대사상의 주류를 이루면서도 비현실적인 불교와 노장 사상을 압도하는 학문으로서의 유학을 회복하기 위하여 성리학을 체계화하였다. 불교와 노장 사상의 도전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형이상적으로 되는 경향을 피하기 어려웠다. 성리학은 원(元), 명(明), 청(淸) 삼대를 통하여 과거의 텍스트가 되고 국교로 숭상되며 역시 봉건주의 체제 유지를 위한 사상으로 봉사하게 된다. 조선왕조는 성리학을 국교로 선포하며 성리학적 이상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시험국가와도 같은 양상을 보인다. 서구의 세력과 학문이 동아시아 지역을 지배하기 시작하고, 동아시아 지역이 서구의 학문과 사상을 자발적으로 학습하기 시작하며, 유교는 중국과 기타 동아시아지역에서 거의 흔적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궁(窮)하면 통(通)하는 것인가? 과학이 극도로 발달하며 과학과는 너무나도 다른 학문적 체계로서의 유학에 대한 재인식은 지구 생명권 전체의 생존보호 차원에서도 절실하게 요청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유학이란 어떤 학문인가? 과학의 진리관과의 비교와 구별은 유학에 대한 이해의 첩경이 될 수 있다. 근대 이후 과학에서의 진리는 객관적 진리를 의미한다. 인간이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대상화하여 그것이 가진 원리와 법칙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통하여 그 원리와 법칙의 정당성이 증명되면 그 원리와 법칙은 가설의 단계를 넘어 진리로 인정된다. 그러한 원리와 법칙은 누구에게나 인정되므로 객관적 진리라고 할 수 있다. |
유학은 주체적·실천적·가치적 진리 추구 |
오늘날 모든 학문에서는 객관적 진리를 추구하게 되며, 객관성의 중시는 주관성에 대한 폄하와 불신을 야기하며 이는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과학적 객관적 인식에서는 분석과 관찰을 인식의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 여긴다. 관찰 수단의 발전에 따라 과학은 거시적 인식과 미시적 인식의 지평을 무한으로 넓고 깊게 하고 있다. 현대과학의 어마어마한 힘은 과학 이외의 다른 인식방법이 없을 듯한 과학에 대한 미신적 숭배에 빠져들게 한다. 과학이 객관적 진리를 문제로 삼는다면 유학은 주체적 실천적 진리를 문제로 삼는다. 유학이 현실을 결코 무시하지 않지만 유학은 객관적인 사실에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다. 현대인은 모든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 주체성을 중시하는 도교, 불교 등의 동아시아의 철학을 대하면 과학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시하려고 한다. 유학에 대해서는 더욱 심하다. 유학에서는 진리를 도(道)라고 불렀다. 도는 올바른 방법이나 올바른 삶, 선한 삶 등을 의미하는 가치적 진리이다. 유학을 학문으로 정립한 공자의 어록인 『논어』에는 ‘도(道)’자가 89회 나온다. 그 가운데 5회의 인도(引導)한다는 의미와 3회의 도로(道路)라는 의미, 2회의 말한다는 의미를 제외한 79회의 경우는 모두 올바른 방법과 올바른 삶을 의미하는 가치적 진리와 관련된 용어들이다. 유학은 가치적 진리의 인식과 실천을 목표로 하며 이를 성취함에 따라 사람은 학자(學者), 현인(賢人), 성인(聖人)으로 인격이 고양(高揚)됨을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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