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화 아주 특별한 향수
벤의 시야에 커다란 곰이 들어왔다.
곰은 나무를 핥더니 앞발로 팡팡 치고 나무껍질을 물어뜯어 내고 있었다. 로프를 물어뜯으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아찔한 순간이었다.
먹이를 발견한 곰을 물리친다는 것은 매우위험한 일이었다.
벤은 공포를 쏘아 곰을 물리치려고 급히 권총 벨트에 손이 갔다. 로프 때문에 총을 꺼내기가 불편하다고
느낀 순간 그만 총을 놓치고 급히 소리쳤다.
“제인 총을 찾아 빨리.”
벤과 제인은 떨어지는 총을 향해 눈을 맞추었다. 떨어지던 총은 절벽에 부딪쳐 크게 튕겨나더니 제인 앞
억새 숲으로 떨어졌다.
“벤~총을 찾았어~”
벤은 다행이다 하고 고개를 들어보니 곰은 여전히 앞발로 나무를 긁고 뜯고 내리치기를 반복했다.
그 부분에 꿀이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벤은 곰이 로프를 물어뜯을 것 같은 위기를 느끼고 공포를
쏘라고 소리쳤다.
“제인 공포를 쏴 곰이 로프를 끊겠어 어서~”
“어떡해. 어떡해......”
제인은 생각보다 묵직한 총을 들자 겁이나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손이 떨리고 들고 있기도 무서웠지만
대롱대롱 매달린 벤과 곰을 보자 용기가 났다. 두 손으로 총을 꼭 잡고 허공을 향해 들었다 생각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소리에 놀란 제인은 총이 손에서 벗어났는지 버렸는지도 모르게 땅에 떨어져 있었다. 그 엄청난 총소리와
함께 어느 날 보았던 악몽이 떠올랐다. 폴란드 숲정이 마을에 들이닥친 독일 군과 폴란드군의 총격전이었다.
제인은 총을 집기보다 두 손을 모았다.
“주님~벤을 도와주세요. 곰이 달아나게 해 주세요.”
총소리에 숨어있던 새들이 한꺼번에 날아오르고, 곰은 육중한 몸을 돌려 숲으로 돌아갔다.
벤은 그 틈을 노려 재빨리 밧줄을 잡고 올라왔다. 나무는 찌그러지고 움푹 파인 곳에서는 황금색 꿀이
살짝 보였다.
원하던 먹잇감을 보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곰보다 인간의 마음이 영악해서 잠시 전에 죽음을 걱정하던
벤은 목청을 보자 마음이 급변하여 형언할 수없는 기쁨에 가죽 부대를 꺼냈다.
곰이 다시 돌아 올까봐 재빠르게 부서진 곳을 떼어낸 뒤에 칼을 넣어 꿀을 잘라 부대에 담았다.
주둥이를 묶으며 곰이 사라진 숲을 확인하고 목청을 딴 환희를 목청껏 소리쳤다.
“제인~목청이야 목청~”
“벤~ 빨리 내려와 목청이 문제가 아니라 곰이 돌아오면 어쩌려고~”
벤은 사투를 벌인 개선장군처럼 제인이 원하는 식물과 꿀 자루 전리품을 들고 왔다. 사랑의 힘이 절벽을
오르게 했고, 제인을 위해 큰일을 했다는 행복과 자신감이 충천했다. 제인도 무사히 돌아온 벤이 맨 처음
독일에서 만났을 때 기쁨보다 더욱 기뻐 벤을 힘껏 안았다. 울컥 눈물이 났다.
“제인 울어?”
“응. 아니.”
둘은 마음의 안정을 찾자 맥이 풀려 그대로 억새풀밭에 누어 하늘을 보았다.
하늘의 구름은 해를 숨겨주는 숨바꼭질 놀이를 하고, 기다란 억새는 두 사람을 숨겨주었다.
시원한 바람은 억새 사이로 벤과 제인을 찾아다니며 하얀 흔적을 날렸다.
둘은 마음속에서 찾은 생각을 고개를 돌려 동시에 말했다.
“사랑해.”
잠시 머쓱해진 벤은 슬며시 꿀 자루를 열어보였다.
제인은 색깔부터 반할 정도라며 한 조각을 떼어 입에 넣고 손가락을 쪽 소리가 나도록 빨았다.
제인이 맛을 평가하기도 전이었다. 벤은 쪽 소리와 함께 난생 처음 양 볼에 움푹 들어가는 제인의
보조개를 보고 전율이 일어났다.
그 전율은 전에 꿀 한 덩어리를 입에 넣고 진하고 달콤해서 몸서리쳤던 전율보다 더욱 강력했다.
전엔 꽃향기로 사랑을 느꼈지만 이젠 꿀을 빠는 소리 하나로 ‘청각적 사랑’과 보조개 하나로 시각적 사랑을
찾았다.
향기가 액체로 변한 송이 꿀 같은 보조개.
보조개는 꿀을 떠먹은 자리처럼 즉시 사라졌지만 벤의 뇌리에는 꿀을 떠먹은 자리로 깊이 패여 있었다.
둘은 사랑으로 하나 된 손을 잡고 발걸음도 가볍게 집으로 향했다. 벤은 자꾸만 등 뒤에서 맛있는 빵 냄새가
나는 듯 했다. 꿀 향이 진한데 무슨 빵 냄새지 하고 돌아보자 제인이 말했다.
“긴장을 많이 하고 배도 고파서 식욕이 당기나봐 어서가자.”
“그런가?”
벤은 오자마자 실수로 떨어뜨린 총을 제인이 주어 곰을 몰아낸 사투를 적나라하게 털어 놓았다. 가족들은
말수가 적어 칭찬까지 인색하던 벤이 제인을 칭찬하자 가족들은 놀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리나는 빙그레 아이스크림 머금은 미소를 지으며 결정적인 때 큰 실수를 했던 벤이 마음에 걸려 또 실수를
하면 어쩌나하고 아들을 돕는 말을 했다.
“제인이 난생처음 총도 쏘아보고 곰을 쫒아내 벤을 살렸구나. 벤의 실수를 감당하고 둘이 합력한 힘이
정말 아름다운 부부답다. 앞으로도 서로의 실수를 보더라도 부족한 부분을 감싸주도록 해라.”
“예. 어머니 알겠습니다. 하지만 실수는 잘못이 아니에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부부가 한마음이면 주님은
그 실수를 선하게 인도하실 것이라고 믿어요.”
“아멘~”
벤은 우크라이나 경비군인을 피해 도망치다가 일이 커져 빌이 부상을 당했던 실수와 오늘의 실수를 인정하는
아멘의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무척 컸다.
제인은 뿌리 채 캐온 꽃을 심어두고 이주 때 가져가기로 했다. 꽃의 이름을 몰라 무어라고 지을까 가족에게
물었다. 가족들은 목숨을 담보로 얻은 소중한 꽃이라며 이구동성 한 이름을 지어냈다.
“벤 제인 꽃?”
제인은 향수로 만들려고 향을 맡아보고 씹어보고 만족한 기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행복한 저녁식탁. 벤이 따온 꿀은 리나가 만든 빵과 아주 잘 어울리는 일품이었다.
요하나는 처음으로 입덧이 없는 만족한 식사를 즐겼다. 하지만 그것도 보름으로 그치고 아직 꿀이 남았는데
입덧이 다시시작 되었다.
제인은 요하나의 입덧을 매일 관찰하고 제인과 벤은 향수 개발에 힘을 쏟았다. 그중에 새로 따온 꽃에
심혈을 기울였다.
벤은 평소에 요하나처럼 먹성이 그리 좋지 않았다. 쌍둥이라서 일까? 비위도 약해 처음대하는 음식은
피하는 편이고 익숙한 음식에만 집중하는 편식이 가장 심한 편이었다.
모두가 모인 식사 도중에 요하나가 헛구역질을 하고 급기야 구토까지 했다.
긴 식탁 끝에 마주 앉아있던 벤이 갑자기 요하나를 따라서 헛구역질을 했다. 밖으로 나온 벤과 요하나를
따라 나온 빌과 제인이 말을 주고받았다.
“아무리 남매라지만 벤이 임신을 한 것도 아닌데 입덧까지 똑같이 하네요?”
“어?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두 사람은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남매에요 하하하.”
그날이후 벤과 요하나는 반복되는 헛구역질에 자리를 피해 따로 식사를 했다.
제인은 향수 개발에 밤과 낮이 없었다. 늦은 밤. 제인은 숙성된 향수를 뿌리고 잠이든 벤에게 다가갔다.
향기에 민감한 벤은 늘 하던 버릇처럼 맡은 향기를 깊은 호흡으로 반기며 제인을 안았다.
“흠~새로운 향인데 아주 좋아.”
“그럼 향수 이름을 ‘사랑을 위하여’라고 하면 좋겠어?”
“굿~ 로맨스 향수.”
그렇게 제인은 향기가 필요한 부부나 연인을 위한 맞춤 향수를 만들었다. 오랜만에 가족 모두가 참석한
식사자리였다. 제인은 새로 따온 꽃으로 만든 비장의 워터 천연향수를 벤의 등에 몰래 살짝 뿌려 주었다.
벤은 오늘따라 어디선가 맡았던 향기와 음식에 식욕이 돋았다. 반면에 건너편에 앉은 요하나는 입맛이
없는데다 또 헛구역질을 했다. 벤은 헛구역질을 하는 요하나를 보았지만 오늘은 헛구역질과 구토도 없고
식욕이 왕성했다. 가족들은 벤과 요하나의 대비되는 모습에 ‘이상하다’생각했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식사를 마쳤다.
다음 날도 다음날도 벤은 미량의 향수에 식욕이 왕성하고 요하나는 겨우 참으며 식사를 마쳤다.
일주일이 흐르고 제인은 향수 시험 대상자를 요하나로 바꾸었다. 제인은 중간에 앉아 벤과 요하나를
주시했다. 요하나가 말했다.
“엄마. 음식에 향신료를 넣은 것 같지는 않은데 빵 맛이 입에 당겨요.”
“오~ 그래 우리 요하나 입맛이 달라졌구나. 많이 먹고 튼튼한 아기를 낳아라. 하하하.”
제인은 일주일동안 요하나 몰래 미량의 향수를 요하나 등에 살짝 발라 주었다.
함께 모인 식탁. 왕성한 식욕에 입덧이 사라진 요하나를 보자 모두 기뻐했다. 식사는 즐겁고 입덧이 없는
일주일이 흐르고 제인은 향수병을 들고 왔다. 이자벨라가 말했다.
“제인이 부부를 위한‘사랑을 위하여’향수를 만들더니 이번에는 무슨 향수를 만들었을까?”
“예. 이번 향수도 이미 검증을 마친 천연향수로 벤 제인 꽃으로 만들었고요 이미 우리 가족이 체험한
최고의 걸작 품입니다.”
“체험을 했다고? 언제 누구에게?”
“예. 이 향수로 말씀드리자면 ‘입덧 방지와 식욕이 돋는 향수’입니다. 향기를 맡아 보세요 이 향기를 아는
두 사람이 있을 거예요.”
“누구누구?”
가족들은 돌아가며 향기를 맡아 보았지만 아는 사람은 벤과 요하나 뿐이었다. 제인이 말했다.
“벤과 꿀을 따오던 날 벤이 배가 고픈지 자꾸만 빵 냄새가 난다고해서 힌트를 얻었어요. 벤 제인 꽃으로
만든 향수를 두 사람에게 등에 조금씩 발라가며 몰래 관찰실험을 했는데 둘 다 헛구역질을 멈추었어요.”
“어쩐지 벤과 요하나의 입덧이 그치더니 바로 그 빵 냄새나는 향수였구나?”
모두가 제인에게 박수를 보내고 루카스는 숲정이 최고의 조향사 탄생에 축복 기도를 해 주었다.
입덧이 사라진 요하나가 말했다.
“제인. 요즘 마음이 편해지고 식사량도 늘고 숙면에도 도움이 되어 좋았는데 제인이 만든 향수 덕분이었
다니 역시 최고의 조향사야.”
“언니 고마워요. 그런데 이 꽃으로 향신료를 만들면 이주도 하기 전에 곡물 창고가 바닥나겠어요.”
“향수와 향신료를 만든다고? 역시 제인은 최고의 조향사야. 이주해서 제품을 대량으로 만들면 우리
숲정이마을 공동 재산에는 걱정이 없겠는데?”
“고마워 언니, 그럼 언니는 실험 대상자였으니까 공동 개발자가 되는 거야 하하하.”
“흠~ 이향은 정~말 좋다. 영혼까지 맑아지는 기분이야 하하하.”
두 가지 향수로 잠시나마 이주 걱정이 지워지고 더위가 조금씩 가라앉았다. 이주날짜를 한 달 앞두고
다시 정부 관계자가 찾아왔다. 하지만 그들은 빌과 눈도 맞추지 못하고 독촉만 하고 돌아갔다.
그사이에 갑자기 주상절리 관광객들이 하나 둘 찾아오고 어떤 사람은 가족 관계를 묻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헤이든의 책을 보았다며 채식주의자의 음식에 대해서도 물었다. 하지만 이젠 이곳을 떠날
가족은 이주 문제가 걱정이라 그들의 눈요기를 채워주기 싫어서 바깥출입을 삼갔다.
점점 숲속은 구원자도 없는‘고립무원’이 되고 이주 대책은 기도 외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바람이 불던 날. 갑자기 요하나가 입덧의 헛구역질을 해댔다. 향수도 향신료도 무용지물이었다.
걱정스런 빌의 말에 요하나는 헛구역질을 하며 말했다.
“차량 가솔린, 오일. 우욱! 그리고...... 타는 냄새가 며칠 전부터 우웍!”
“어? 무슨 산속에서 그런 냄새가나? 피난 때도 유난히 오일 냄새를 맡고 매스꺼워했는데 어느 쪽에서
나는 거야?”
“오른쪽 왼쪽 바람이 불때마다 달라요. 개들도 유난히 코를 벌렁거리며 짖어대더라고요.”
빌은 요하나와 개 코를 믿고 벤과 제인에게 가솔린과 오일 타는 냄새로 입덧을 하는데 진원지를
찾아보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