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흰 서름에 잠길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로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최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한양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즉 기둘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전문>
전남 강진에는 김영랑의 생가가 보존되고 있으며, 읍내 곳곳에는 그의 시 구절을 딴 거리나 가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김영랑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에는 초여름에 피는 모란을 간절하게 기다리는 화자가 등장한다.
모란이 피기를 간절히 기원하지만, 피자 마자 이내 저버리고 마는 모란에 대한 시인의 아쉬움이 짙게 묻어나고 있다.
시집에 수록되었던 당시 그대로의 표기를 따랐으니, 21세기의 독자들에게는 원래의 표현들이 다소 고풍스럽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모란이 피기 전에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던 화자는 마침내 활짝 핀 꽃을 보고 잠시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내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이 찾아오고, 화자는 ‘비로소 봄을 여흰 설움에 잠’기는 것이다.
그렇게 떨어진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 천지에 모란은 자최도 없어지'면, 화자는 다시 봄이 되어 모란이 피기만을 기다릴 것이다.
작품의 내용으로 보아, 시인에게 ‘모란’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이 시에는 김영랑과 무용가 최승희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배경에 깔려있다는 해석이 있다.
당대 최고의 무용가였던 최승희와 열렬한 사랑을 했지만, 집안의 반대로 끝내 이루지 못한 사랑의 심정을 이 작품에 담아냈다는 설명이 그것이다.
그래서 모란이 다시 피기까지 기다리는 ‘삼백 예순 날’ 내내 섭섭해 울고 지내면서, 다시 꽃이 필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린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던 것이다.(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