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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떠나 자취를 하거나 혹은 불가피한 사정으로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힘들고 서러운 순간을 꼽으라면 대부분 아플 때라고 대답을 한다. 몸이 아파 움직이기조차 쉽지 않을 때 혼자서 견디어 내야만 하는 시간은 그야말로 고통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도 상대에 대한 사랑과 정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힘들기는 마찬가지라고 하겠다. ‘질병, 돌봄, 노년에 대한 다른 이야기’라는 부제의 이 책은 ‘돌봄노동’에 대해서 시종 진지한 물음을 던지는 내용이다. 더욱이 가족들 중에 아픈 사람이 있을 때 환자에 대한 돌봄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역할이 대부분 여성들에게 전가된다는 현실을 저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즉 ‘모든 돌봄을 여성에게 미뤄두고 나 몰라라 하는 이 사회에 어떤 식으로든 실질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저자들의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지금 아픈 이들,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이들, 나이 들어가며 혹은 아니 들어가는 가까운 이를 보며 불안하고 겁나는 이들, 자신이 지나온 악몽 같은 시간을 삶의 일부로 끌어안으려 애쓰는 이들에게 이 책이 약상자였으면 한다’는 바람은 그래서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다. 아픈 몸을 견딜 수 없어 잠을 이루지 못하고 깨어 있는 한밤중, 혹은 그러한 환자를 돌보느라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통을 함께 하는 시간을 ‘새벽 세 시’라는 표현으로 제시한 것이라고 하겠다. 질병에 걸린 당사자는 물론 그를 돌봐야 하는 보호자 또한 고통을 견뎌내야만 하는 ‘새벽 세 시’의 상황이 힘겨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두 4명의 저자가 참여한 이 기획은 아마도 짧지 않은 기간 동안의 강좌와 행사를 토대로 마련된 것으로 파악되는데, 이제는 그만큼 ‘돌봄노동’의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시민으로서 돌보고 돌봄 받기’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돌봄노동’이 너무도 힘들고 가혹하기에 ‘가족에게는 맞지 않은 일’이라고 단언하면서, 그것이 우리 사회의 복지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보호자라는 자리’가 여전히 가족에게만 허용될 때, 정작 보호자가 없는 혹은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지 않은 환자들이 겪는 고통의 문제를 환기하기도 한다. 나이가 든 환자의 경우 돌봄의 문제가 공론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젊고 아픈 사람의 시간’에 대해서는 사회적인 논의가 깊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기도 한다.
물론 ‘젊고 아픈 사람’의 경우 비교적 환자로서 치료하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수 있지만, 오랜 기간 혹은 평생을 병을 지니고 살아야만 하는 경우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이 역시 돌봄노동의 몫을 가족에게 전가하는 것이 과연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이밖에도 ‘병자 클럽의 독서’라는 글에서는 돌봄노동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책을 함께 읽고 견뎌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여기에 ‘치매,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통해서, 치매 환자의 입장에서 삶의 문제를 진지하게 짚어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짧지 않은 기간 질병을 안고 살아야만 하는 이들에게, 마지막에 수록된 ‘시간과 노니는 몸들의 인생 이야기’는 스스로의 처지를 되돌아볼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있다고 하겠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아플 때를 경험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회복한 이후에 그것을 그다지 심각한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랜 기간 누군가의 돌봄을 받으며 지내야만 하는 경우, ‘돌봄노동’은 진지한 탐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가족에게 맡겨진 이 문제를 이제는 우리 사회의 현실로 인식하고, 앞으로 제도적인 정책으로 정착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더욱이 이 책의 저자들은 돌봄노동의 대상이거나 혹은 보호자로서의 경험을 지니고 있기에, 더욱 진지하게 그 대안을 마련하는데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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