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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는 독일계 작가로서 시인이자 소설가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로, 나 역시 고등학생 시절 그의 대표작인 <데미안>을 탐독하기도 했었다. 이제는 그 내용이 흐릿해졌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내용을 다시 떠올려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 헤세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 읽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대학에 진학하고 국문학을 전공하면서 상대적으로 외국문학 작품을 읽을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고교 시절에 읽었던 <데미안>에 대한 기억만큼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데미안>이 처음에는 작품이 주인공인 ‘에밀 싱클레어’라는 필명으로 발표되었고, 독자들이 헤세의 작품일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하자 나중에 자신의 작품임을 인정했다고 한다. <데미안>은 1차세계대전 이후 서구 사회의 정신적 혼란을 담아내고 있지만, 지금도 한국의 젊은이들이 느끼는 정신적 방황을 헤쳐나가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이 책은 정신분석학을 토대로 헤세의 정신세계를 분석하고, 이를 그의 작품과 연계시켜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헤세에 대한 개략적인 생애와 작품 세계를 이해하고, 또 내가 읽었던 작품의 내용 정도를 파악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책은 저자가 방대한 자료를 섭렵하고 보다 깊이 있는 분석을 통해서, 헤세의 삶과 작품 세계를 풍부하게 조명하고 있었다. 그래서 단지 몇몇 작품으로만 접했던 헤세의 문학 세계를 그의 삶과 연결시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가 헤세의 삶을 조명하고, 특히 그의 일생이 우울증으로 점철되었던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즉 헤르만 헤세의 삶을 정신병리학의 관점에서 조명한 일종의 평전 형식이라 하겠다.
저자는 헤세의 삶에서 부모들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파악하고 있는데, 그래서 헤세가 39세이던 1916년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는 내용은 그의 우울증의 연원을 설명하고자 마련한 장치라 생각된다. 목사인 아버지와 기독교 신앙에 뿌리를 둔 어머니의 독실한 종교관, 그리고 당시 독일의 경건주의라는 분위기와의 갈등이 어린 시절의 헤세의 삶과 갈등을 유발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의 부제도 ‘우울증, 경건주의, 그리고 정신분석’이라 붙였다. 650면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정리한 내용으로, 헤세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실제 그의 어린 시절을 돌아봤을 때, 그러한 분위기에 순응했다면 과연 헤세의 작품들이 탄생하지는 못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또한 헤세의 내면적 정신을 분석하기보다는 강압적인 부모의 교육관과 그것을 용인했던 당시의 문화와 아이들에게 억압적이었던 사회 분위기를 해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당시 독일의 교육적 환경 탓이겠지만, 부모의 뜻에 거스르고 조금만 반항적이면 곧바로 정신병원에 가두었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왜 헤세가 17살이라는 나이에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고, 그로 인해 자유로움을 느꼈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는 방대한 자료와 깊이 있는 분석을 통하여 헤세의 삶과 그의 문학 작품을 연계시켜 논하고 있으나, 한 사람의 삶을 개인의 정신분석으로만 논하기보다 그를 둘러싼 환경의 문제와 함께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물론 헤세의 삶을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서술하면서, 그의 작품 역시 헤세의 자전적인 면모가 반영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파악하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그래서 저자의 연구가 매우 깊고 전문적이어서, 적어도 헤세 연구자에게는 아주 중요한 참고문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나 역시 그동안 자세히 파악하지 못했던 헤세의 삶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도 이 책을 읽고 나서 얻은 하나의 수확이라 생각한다. <데미안> 비롯한 헤세의 작품들을 연대기적으로 조명하면서,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설명한 부분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문학 작품을 꼭 작가의 삶과 연결시켜 논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만은 아니며, 오히려 그러한 관점이 문학을 단조롭게 해석하도록 만든다는 측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책을 통해 헤세의 삶을 짚어보면서, 외부 환경의 문제가 생활양식을 얼마나 강하게 규정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한때의 기억으로 스쳐갈 수 있는 사건도 누군가에게는 그의 정신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헤세는 13살부터 시인이 되기를 꿈꿨으나, 신학교에 보내져 끝내는 그곳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벗어나야 했다. 학교에서 탈출한 헤세는 부모에 의해서 몇 차례에 걸쳐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아마도 그에 대한 정신적 반항이라고 여겨지는데, 그 이후 헤세는 평생 부모를 원망하고 한편으로는 그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면서 살았다고 하였다. 저자는 그것을 헤세 특유의 양가적 인식이라 규정하고 있지만, 실상 누구나 이러한 양가적 감정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단지 그것이 얼마나 강하게 표출되는가가 다를 뿐이라 생각된다.
헤세는 세 번의 결혼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지속적인 안정을 느끼지 못하였고, 자식들 또한 헤세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살아야만 했다고 한다. 어쩌면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야만 했던 ‘자유로운 영혼’이었기에, 예민하고 섬세한 감정을 표출한 시와 소설들을 발표하고 뒤늦게 노벨문학상을 탈 수 있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이제는 문학가로서 헤세의 명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지만, 적어도 그의 가족들만큼은 행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이 아프게 다가오기도 했다. 다양한 자료를 섭렵하여 꼼꼼하게 정리하고 분석한 저자의 노력으로 이 책이 탄생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논하는 저자의 작품 해석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헤세의 삶과 연결시켜 논하는 저자의 인식에 충분히 공감할 수는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하여 그동안 제대로 알지 못했던 헤세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성과였다고 하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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