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화합을 찾는 기나긴 ‘진실’의 여정
- 마이크 리 감독의 <비밀과 거짓말>을 음미하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말이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때로는 말 한마디 잘못해서 오랫동안 '설화(舌禍)'에 시달리기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말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한 말에는 반드시 그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다. 아마도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비난을 당하는 등의 곤경에 처했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때로는 누구에겐가 말을 할 적절한 기회를 놓쳐, 오래도록 혼자서 끙끙대며 고민했던 기억도 떠오를 법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타인들에게 감추고 싶은 비밀을 하나쯤 지니고 있다. 때문에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뜻하지 않게 주위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해야할 때도 있다. 말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말이란 그저 무심코 흘려버리는 의미 없는 정보일 수도 있겠지만, 각 개인들에게 있어서 자신이 뱉은 말과 그에 따르는 책임은 때로 막중한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간혹 비밀이란 거짓말을 수반한다. 비밀은 그것을 알면 안 되는 사람에게 감추어져 있을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물론 '공공연한 비밀'처럼 많은 사람들이 그 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채 하기도 한다. 때문에 비밀이란 딱지를 붙여두면, 그 말은 더 빠른 속도로 은밀하게 전파되는 것이 보편적이다.
혼자서 간직하며 남에게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비밀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을 때 그것은 더 이상 비밀이 될 수 없다. 혹은 그것을 공유하는 몇몇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내용이지만, 특정인에게만 비밀인 경우도 있다. 그렇기에 선의든 악의든,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는 경우에 따라 거짓말을 해야 하기도 한다.
물론 그 결과는 단순한 오해로 끝나 해프닝이 되기도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주위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듯이 비밀을 지키기 위하여 하는 거짓말이 선의로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타인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기도 한다.
비밀로 야기된 문제의 대부분은 몇몇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서 다수의 사람을 속일 때 발생한다. 대체로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고, 하나의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겪는다.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라 여기면서도, 살아가면서 불가피하게 거짓말을 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에게 진실된 삶이란 너무도 당연한 것인데도, 진실이 많은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는 것은 그만큼 위선이 판을 치고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비밀과 거짓말은 어떤 상관 관계가 있으며, 그리고 진실은 사람들의 삶에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진실과 거짓, 그리고 비밀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 한 편을 살펴보기로 하자. 마이크 리(Mike Leigh) 감독의 <비밀과 거짓말(Secrets & Lies)>. 지난 1996년 제1회 부산 국제영화제의 개막 작품으로 선정되어, 한국에 소개되기도 했었다. 당시에도 이 작품을 감상한 관객들에게 뛰어난 작품성으로 호평을 받은 바 있는 작품이다.
나는 이 영화를 아주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 접했었다. 다소 시간적 여유가 있어 영화를 보는 재미에 푹 빠져있던 몇 년 전, 한동안 자주 찾던 비디오 가게에서 제목에 이끌려 빼어든 후 비디오테잎으로 이 영화를 빌려 보았다. 그렇게 <비밀과 거짓말>을 보고서 영화가 좋아 주위 사람들에게도 보기를 권하기도 하였다. 또 종종 대학의 교양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같이 이 영화를 보고 토론을 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들이 등장하는 영화는 아니다. 할리우드식의 과장된 연기나 특수효과가 사용되지도 않는다. 또한 스토리의 전개 역시 다소 밋밋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줄거리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두 시간이 넘는 상연 시간 내내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이 이 영화에는 숨어 있다.
어린 시절 입양된 한 흑인 여성이 자신의 생모를 찾는다는 단순한 내용을 가진 이 영화의 숨겨진 매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을 풀어내는 듯한 배우들의 편안한 연기와 감독의 탄탄한 연출력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일견 지루할 듯이 보이는 소재를 맛깔스럽게 요리하는 감독의 연출력이 담겨진 화면을 보면서, 나는 언뜻 영화적 기교를 강조하지 않으며 마치 일상을 담담하게 카메라에 담아내는 홍상수 감독을 떠올렸다(물론 두 감독의 영화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
가난한 노동자의 처지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중년의 신시아(Brenda Blethyn 분)는 미혼모인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딸 록산느(Claire Rushbrook 분)와 함께 살고 있다. 물이 새는 집조차 고칠 수 없는 딱한 살림에, 청소원으로 꿈도 없이 사는 삶은 무미건조하기까지 하다. 신시아는 록산느가 자신과는 달리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딸의 생활에 관심을 갖고 대화를 시도한다.
그러나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지 못한 록산느는 어머니의 관심조차 간섭으로 여기고, 매몰차게 반응하며 가족들과 겉도는 생활을 한다. 실제 록산느의 고민은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청소원 생활을 벗어날 수 없다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그 원인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생각 때문에 이들 모녀의 관계는 늘 겉돌 수밖에 없다. 이러한 모녀의 관계를 이 영화에서는 딸만 보면 쉬지 않고 말을 쏟아내는 신시아와 그의 말을 애써 외면하는 록산느를 대비시켜 보여준다.
신시아에게는 사진관을 경영하는 동생 모리스(Timothy Spall 분)가 있다. 사진관을 운영하면서 어느 정도 경제적인 안정을 찾은 모리스는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아내 모니카(Phyllis Logan 분)와 누이 신시아 사이에서 어찌할 줄 모른다. 서로를 신뢰하지 않는 아내와 누이를 지켜보면서, 사진관에서 행복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사진을 찍으러 오는 다른 가족들의 모습은 그저 부러움의 대상일 뿐이다.
누이는 동생에게 자식이 없는 이유가 모니카 탓이라며 모리스를 볼 때마다 그의 아내를 책망하는 말을 쏟아낸다. 하지만 모리스 부부는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아픔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 말을 차마 누이에게 하지 못한다. 모리스는 언제라도 찾아가서 누이와 따뜻한 정을 나누고 싶지만, 매번 만날 때마다 자신의 아내에게 험담을 늘어놓는 누이와의 관계는 점점 소원해지게 된다.
하지만 누이는 동생이 자신을 자주 찾지 않는 이유조차도 모니카의 탓으로 치부해 버린다. 모니카 역시 그러한 시누이가 반가울 수 없다. 그리하여 누이와 아내는 모두 사랑하는 대상이지만, 어긋나는 두 사람 사이에서 모리스는 괴롭기만 하다.
이처럼 이들 가족 사이에는 서로에게 말하지 못할 ‘비밀’이 하나씩 존재하는 셈이다. 때문에 이들이 서로 만나 대화를 하면서 서로의 ‘비밀’에 접근할 때, 매번 대화는 급격하게 단절되고 그들 사이의 어색한 관계가 연출된다. 가장 편안하고 안정적이어야 할 가족은 각자의 처지와 고민 사이에서 서로에게 겉도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존재인 가족에게조차 말하기 힘든 ‘비밀’을 하나씩 간직하고 사는 이들의 모습은, 새삼스레 ‘화해’를 시도하기에는 너무도 멀리 돌아온 셈이다. 모리스는 가족들과의 소원한 관계를 회복시키고자, 조카인 록산느의 생일파티를 자신의 집에서 열기로 한다.
그러던 어느날 신시아는 까마득한 과거의 기억 사이로 사라진 또 하나의 ‘비밀’과 대면하게 된다. 잊혀져 가는 과거의 아픔을 상기시키는 한 통화의 전화. 16살의 어린 나이에 출산하여 얼굴도 보지 못하고 입양시켰던 딸 호텐스(Marianne Jean-Baptiste 분)가 친엄마인 신시아를 찾는 전화였다.
영화 서두에 호텐스 양어머니의 영결식은 바로 이 장면을 위해서 예비된 것이다. 호텐스의 전화로 신시아는 이미 까마득하게 잊혀졌던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린다. 지금 살고 있는 딸 록산느를 낳기 전, 어린 나이에 출산을 했었던 기억. 이 사실은 딸인 록산느를 제외하고, 다른 가족들은 다 알고 있지만 이제는 잊혀져버린 ‘비밀’이었던 것이다.
호텐스는 양부모가 모두 죽자, 자신의 핏줄을 찾아 나선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입양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을 길러준 양부모의 사후에 비로소 친모를 찾아 나선 것이다. 자신을 입양시켰던 복지기관을 통해서 친모를 확인한 그녀는 마침내 친모인 신시아에게 전화를 건다.
호텐스의 전화로 충격 속에 휩싸였던 신시아가 만나기를 완강히 거부하던 처음과는 달리, 차츰 자신의 핏줄에 대한 그리움으로 낯선 딸과의 만남을 결심한다. 뜻밖에도 백인인 신시아와는 달리 딸인 호텐스는 흑인이었고, 새로운 딸과의 만나는 횟수가 거듭되자 어머니는 모녀 사이를 현실로 받아들인다.
새로운 딸의 존재는 신시아 자신을 제외한 다른 가족들에게는 ‘비밀’인 것이다. 늘 겉돌던 가족들과는 달리 신시아는 새로운 딸인 호텐스와 마음을 터놓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남들이 모르는 비밀로 인해 다른 가족들에게 이전보다 넉넉한 태도를 보이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때문에 새로운 비밀을 간직하게 된 신시아는 과거와 달리 록산느와 진지한 대화를 시도하려고 노력한다. 어쩌면 신시아는 자신의 비밀을 다른 가족들이 알게될까 두려운 마음에, 록산느에게 이전과는 다른 마음을 쓰게된 것인지도 모른다. 록산느 역시 부쩍 잦아진 어머니의 외출로 인해 무엇인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다.
안정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한 피부색이 다른 딸을 감싸안는 신시아는 록산느의 생일파티에 호텐스를 초대한다. 직장 동료라고 가족들에게 소개하면서. 이들 가족 외에 록산느의 남자 친구, 그리고 가족과 다름없는 모리스의 조수까지 포함된 한 가족의 파티가 시작된다.
생일 잔치는 처음에 화기애애하게 시작한다. 이윽고 등장한 호텐스가 자리에 합석하고,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 간다. 오랜만에 흥겨운 시간을 즐기던 가족들은 서로가 간직한 비밀과 그 비밀이 만들어낸 거짓말로 상황이 조금씩 어긋나기만 한다.
마침내 신시아는 호텐스가 자신의 딸임을 밝히고, 록산느는 어머니에게 또 다른 자식이 있다는 사실에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 그 와중에서 모리스는 아내인 모니카가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밝히고, 동생의 자식을 바랐던 신시아와의 관계가 소원했던 비밀도 밝혀진다.
엄청난 충격과 눈물 속에서 서로의 진실과 허위가 드러나고, 비밀과 거짓말은 마침내 진실에 그 자리를 내어 준다. 결국 가족들은 그동안의 오해에서 비롯된 미움과 원망을 지워버리고, 새롭게 충만한 애정을 확인하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서로에게 격한 감정을 쏟아놓는 후반부의 생일파티 장면은 그리하여 마치 한 판의 굿을 보는 것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이 영화는 한 가족의 화합을 찾아가는 단순한 이야기이지만,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비밀과 거짓말에 대한 생각들을 진지하게 되짚어보게 한다. 사소한 비밀로 야기된 거짓말이 상대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 것인가를, 그리고 비밀을 지키려고 거듭된 거짓말이 끝내는 가족들의 행복마저 위협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영국의 중산층과 하층계급이 뒤섞인 가족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가 우리에게도 커다란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비밀과 거짓말, 그리고 진실과의 관계를 곰곰이 따져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등장 인물들의 탄탄하고 진지한 연기는 작품의 주제와 어울려 영화를 보는 재미를 한층 더해 준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대체로 할리우드 영화가 상층의 백인과 하층의 흑인을 도식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과는 달리, 중산층인 흑인(호텐스)과 하층의 백인(신시아)을 상정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물론 이 영화는 이러한 인식을 뛰어 넘는 삶의 의미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정작 알아야 할 사람만 모르는 ‘비밀’로 인해, 가장 가까운 가족들조차도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 서로의 비밀과 거짓말로 실타래처럼 얽혔던 등장인물들의 관계는 오직 진실을 내세움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 영화의 결론은 진실이란 끝내 감춰질 수 없는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즉 진실은 비밀과 거짓말로 야기된 위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 2000년대 초반 동네 비디오가게가 문을 닫기 시작하면서 비디오테이프를 헐값에 팔기 시작했을 때, 이 영화의 테이프를 구해서 지금도 가지고 있다.)
2018년 7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