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그 의미가 무엇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책을 받아들고 읽으면서 점차 당혹스러운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저자의 확신에 찬 주장 이면에 내세우는 근거가 너무도 빈약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다. 그야말로 단편적인 기록들을 단서로 거창한 주장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오로지 저자의 확신에 찬 ‘신념’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정적인 것은 저자의 주장이 담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러한 주장을 통해서 드러내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책을 다 읽은 지금까지도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점이라고 하겠다. 자료의 냉철한 분석보다는 자신에게 유리한 단편적인 자료만을 근거로 무리한 주장을 펼치는 것에 공감할 수 없었음을 굳이 밝히고자 한다.
‘조선의 잃어버린 역사에 대한 새로운 정의’라는 부제를 덧붙였지만, 그 ‘잃어버린 역사’의 실체가 무엇이고 그것이 왜 중요한 지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없다. 일견 19세기까지 조선의 영토는 중국 대륙에 자리를 잡기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 이후 일본의 ‘역사 조작’으로 많은 이들이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는 주장이다. 아마도 저자가 말하는 바의 내용이 이러한 내용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조선과 중국을 찾았던 외국인들의 기록에 나타난 지명에 대해서 장황하게 논하고 있으며, 그러한 단편적인 내용들을 모아 ‘거대한 상상’을 이끌어 내고 있다. 그리하여 현재 활동하고 있는 수많은 역사학자들이 자료를 읽는 ‘독해력이 떨어져’ 일제에 의해 ‘조작된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냉정한 시각으로 살펴본다면 저자의 주장이야말로 아주 작은 단서를 확대해석하여 논하는 ‘침소봉대(針小棒大)’의 전형이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다. 만약 조선시대 조정이 ‘강남(江南)’이라고 불리던 중국 대륙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면, 15세기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중국의 강남지역을 전전하면서 말이 통하지 않아 고생하다 돌아왔다는 최부의 <표해록>의 기록조차도 조작된 것일까? 그리고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조선왕조실록>의 방대한 기록에는 왜 저자의 주장과 같은 내용을 확인할 수 없는 것일까? 저자가 주장하는 ‘강단 역사학자’들이 도대체 어떤 이유로 ‘역사 조작’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학문적 자존심’을 내팽개치고 있는 것일까? 결국 어떤 기록일지라도 ‘해석’의 문제가 중요하지만, 다만 그것이 얼마나 설득력을 지니는가 하는 점이 요체라고 하겠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은 자료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이 두드러진다는 점일 것이다. 그 가운데 저자가 조선이 중국 대륙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근거로 삼는 ‘1952년에 발간된 명문당 신옥편’의 ‘한(韓)’에 대한 풀이를 들어보자. 저자는 이것을 “하남성 중부, 산서성 택로지방 / 경기, 충청, 경상, 전라 등지 / 조선 개칭 대한국”이라는 설명에 근거해서, ‘대한제국의 강역이 조선의 강역에 비해서 확연히 줄어든 사실과 한(韓)이 중국 대륙에서 한반도로 이주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자료’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옥편의 사용법을 모르는 독해일 뿐이다. 옥편의 설명은 차례로 그 사례를 들어서 ‘한(韓)’이 국명이라는 것을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어떤 사전이라도 표제어에는 풀이가 하나만 있는 경우보다는 여러 개가 있고, 중요도 혹은 활용 빈도에 따라서 순서대로 제시되어 있다.
일반적인 사전(옥편)의 풀이 용례대로 설명하자면, 이것은 ‘한(韓)’은 국명으로서 모두 3개의 풀이가 있다는 의미이다. 그것 중 하나가 ‘1. 하남성 중부, 산서성 택로지방’이라고 할 수 있으니, 이것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있었던 ‘한(韓)’이라는 제후국의 위치에 대한 설명이다. 그리고 ‘2. 경기, 충청, 경상, 전라 등지’의 풀이가 한반도에 있던 나라이름 ‘한(韓)’에 대한 설명이다. 그리고 ‘3. 조선 개칭(改稱) 대-한국’이 세 번째 풀이인 것이다. 따라서 사전인 옥편의 사용법을 제대로 익힌 사람이라면, 1과 2를 연결하여 그것을 같은 나라의 영토로 설명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밖에도 저자가 주장하는 근거는 단편적일 뿐만 아니라 설득력을 지니기 어려운 내용들이 적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함께 한문에서 ‘백(百)’이나 ‘천(千)’ 혹은 ‘만(萬)’이라는 단위는 특정한 수치를 지시하기보다도 관용적으로 ‘많다’ 혹은 ‘멀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수식어로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저자는 여러 기록에 나타난 ‘만리지국(萬里之國)’이나 ‘만리의 길’ 등에 나타난 기록을 토대로, 그것을 오늘날의 기록으로 환산하여 약 4,500Km이기에 우리의 영토가 중국대륙에 있었음이 ‘확실하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여기에 중국대륙에서 ‘한반도로 오지 못한 조선인’이 있었다는 등의 주장을 과감하게 펼치기도 한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의 근거가 설득력을 지니기는 힘들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의 내용을 정리하거나 요약할 필요가 없지만, 자신의 ‘신념’에 걸맞은 기록에 대해서는 과도한 신뢰를 보내면서 그렇지 않은 기록은 그저 왜곡’ 혹은 ‘조작’이라고 단정하는 태도가 바람직한 것인지를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일제 강점기 이후 불기피하게 고향을 떠나 타국으로 이주해야만 했던 이들의 애끓는 심정이 담긴 기록들이 현재 ‘이산(diaspora) 문학’의 관점에서 수집되어 연구되고 있다. 만약 저자의 주장대로 중국 대륙에 조선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면, 이 책에 제시된 단편적인 근거 말고 분명한 내용의 기록이 존재해야만 할 것이다. 아무리 ‘조작’과 ‘왜곡’이 시도되었다고 할지라도, 그런 기록들이 단편적인 해석만을 기다리는 형태로 남아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저자의 주장에 대해서는 따로 논평을 하지 않겠지만, 자신의 ‘신념’과 다르다고 ‘강단 역사학자’들의 성과를 무시하는 것 또한 올바른 태도는 아니라고 하겠다. 역사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자존심을 팽개쳐가며 ‘조작된 역사’에 따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역사의 해석은 단지 사료만이 아니라 당시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여 설득력이 있는 논의를 펼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장들이 다수의 학자들에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반드시 그 내용에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가 갖추어져 있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지극히 사소한 단서를 토대로 거대한 역사를 구축하는 것은 이미 설득력을 갖추기 어려울 수밖에 없음은 주지의 사실이라고 하겠다. 만약 이러한 내용인 줄 미리 알았다면, 책을 애써 읽는 수고를 하지 않았을 것임을 굳이 밝혀둔다.(차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