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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하림에게 바다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승하
최하림 시인이 작고한 지 13년이 되었다. 1939년 전남 신안군에서 태어난 시인은 1964년, 25세 젊은 나이에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시단에 나왔다. 1963년에 김현ㆍ김승옥ㆍ김치수와 함께 동인지 『산문시대』를 펴냈는데 1965년에 제5호까지 냈다. 50년 가까이 시단 활동을 한 시인치고는 시집을 많이 내지 않았다. 총 7권의 시집과 2권의 시선집을 냈다. 1985년에 판화 시선집 『겨울꽃』(풀빛)과 1988년에 자선 시집 『침묵의 빛』(문학사상사)도 낸 바 있었고 에세이집도 여러 권 펴냈다. 1985년부터 몇 해 동안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서 강의했고, 1988년부터 1996년까지 전남일보 편집국에서 근무했다. 2010년, 72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2010년에 시전집이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왔다. 역시 문학과지성사에서 2021년에 후학들이 추모의 뜻을 모아 『최하림 다시 읽기』를 펴냈다. 이 책에는 14편의 최하림론이 실려 있고 11편의 인물 소묘(추억담)가 실려 있다. 특히 박시영 시인은 22쪽에 걸쳐 문학적 연대기인 「시인 최하림의 생애와 문학」을 실었는데 시인의 생애를 아주 치밀하게 조사하였다.
최하림 시인이 태어난 곳은 신안군 안좌면(현 팔금면) 원산리인데 안좌면은 기좌도ㆍ안창도ㆍ팔금도라는 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동쪽의 안창도와 서쪽의 기좌도는 1917년 이후 두 섬 사이 갯벌을 매립하여 안좌도가 되었다. 최하림이 이 섬 중에서 팔금도에서 태어났고 1945년 해방 직후에 안좌국민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는 1950년에 섬을 떠나 목포에서 살았고, 1965년에 상경하였다. 목포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포함해 15년 가까이 살았으므로 이 지역 또한 대단히 중요한 성장 배경이 된다.
시인이 섬에서 태어나 섬에서 자랐고 10대와 20대 중반까지 15년을 항구도시에서 살았기 때문인지 ‘바다’ 이미지와 ‘섬’ 이미지에 의존해서 시를 쓰곤 했다. 시인이 상경 이후 서울과 경기도, 그리고 직장 때문에 내려가 산 광주에서 시작 활동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바다는 종종 시의 공간적 배경이 되었다. 이 글은 큰 주제는 ‘시인의 바다 노래’가 된다. 지금까지 이런 측변에서 최하림의 시를 살펴본 이는 없었기에 시도하게 되었다.
제1시집 『우리들을 위하여』, 창작과비평사, 1976.
제2시집 『작은마을에서』, 문학과지성사, 1982.
제3시집 『겨울 깊은 물소리』, 열음사, 1987.
제4시집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 문학과지성사, 1991.
제5시집 『굴참나무숲에서 아이들이 온다』, 문학과지성사, 1998.
제6시집 『풍경 뒤의 풍경』, 문학과지성사, 2001.
제7시집 『때로는 네가 보이지 않는다』, 랜덤하우스중앙, 2005.
시선집 『사랑의 변주곡』, 문학세계사, 1990.
시선집 『햇볕 사이로 한 의자가』, 생각의나무, 2006.
바다는 시인의 경험의 터전이었고 상상력의 곳집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온 적지 않은 최하림론 가운데 그것에 대한 연구는 보이지 않는다. 등단작부터 바다에 대한 이미지를 그리고 있다.
아아 무슨 根據로 물결을 출렁이며 아주 끝나거나 싸늘한
바다로 나아가고자 했을까 나아가고자 했을까
機械가 의식의 잠 속을 우는 허다한 허다한 港口여
수없이 작별하고 수없이 만나는 船舶들이여
이 雲霧 속, 찢겨진 屍身들이 걸린 침묵 아래서
나뭇잎처럼 토해놓은 우리들은
오랜 붕괴의 부두를 내려가고
저 시간들, 배신들, 나무와 같이 심은 별
우리들의 소유인 이와 같은 것들이
육체의 격렬한 通路를 지나서
不明의 아래아래로 퍼져버리고
―「貧弱한 올페의 回想」 앞부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의 일부다. 그 당시 신춘문예 경향이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자어가 많이 나오고, 그래서인지 시가 상당히 관념적이다. 시의 모티프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올페와 유리디체 이야기다. 독사에 물려 아내 유리디체가 죽자 올페가 비탄에 잠겨 노래를 부른다. 이를 본 사랑의 신 에로스는 노래의 마력으로 지하세계의 지배자 플루토를 감동시켜 유리디체를 다시 살려 데려올 수 있다고 일러준다. 단, 어떤 일이 있더라도 지상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그녀의 얼굴을 돌아보면 안 된다는 조건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올페는 플루토에게 아내를 데리고 나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지상으로 올라간다. 뒤따라오는 유리디체가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올페의 변심을 의심하여 여러 가지 질문을 하자 올페는 이를 참지 못하고 뒤돌아본다. 이에 에우리디체는 다시 죽게 된다. 비통한 올페는 자살을 시도하지만 그를 가엾게 여기는 에로스가 그를 위로하며 유리디체를 다시 살린다. 이에 부부는 환희에 넘쳐 에로스를 찬미하는 노래를 부른다. 이처럼 신화의 주제는 부부간의 사랑인데 최하림은 지하세계를 바다로 설정했다. 바다는 종종 배를 전복시키고, 그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떼죽음을 하는 곳이다. 바다는 많은 생명체의 탄생지이면서 많은 생명체의 무덤이다.
들어가라 들어가라 下體를 나부끼며
아이들이 무심히 선 바닷속으로
막막한 강안을 흘러와 死兒의 場所 몇 겹의 죽음
장마철마다 떠내려온, 노래를 잃어버린 神들의 港口를 지나서
유리를 통과한 투명한 漂流物 앞에서 交尾期의 魚類들이 듣는 파도 소리
익사한 아이들의 꿈
기계가 창으로 모든 노래를 유괴해간 지금은 무엇이 남아 눈을 뜰까
……下體를 나부끼며 해안의 아이들이 무심히 선 바닷속에서.
―「貧弱한 올페의 回想」 끝부분
이 시에서 바다는 “死兒의 場所”, “노래를 잃어버린 神들의 港口”, “익사한 아이들의 꿈”처럼 계속해서 죽음 이미지를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태풍, 풍랑, 난파, 침몰 같은 시어가 나오진 않았지만 지하세계와 거의 동급의 세계가 바다이다. 아마도 최하림이 어렸을 때 고기 잡으러 나간 배가 돌아오지 않아서 누구네 집 아버지가 죽었다는 얘기를 들어 바다를 이렇게 그린 것이 아닐까. 산문시대 동인 시집에 실려 있는 시들도 그 이미지가 대동소이하다.
그 아무도 의지할 이 없는 빈 海岸通의 붉은 노을 속에서
휘어져드는 위험 속에서
不充實한 시간들이 이끄는
모든 테마의 로프줄을 새파란 칼날로 끊고 있다.
―「海港」 부분
아 열망의 露臺여
너의 分身이 승화한, 하늘의 우레가 된 그때의 이야기여
찬란한 햇빛 속에 구름은 은총의 날개를 휘두르며
강변을 지나 저편 언덕에서 한창 소나기로 쏟아지고
한 바다가 저희 벅차고 사랑스럽던
濫費의 하늘로 급류를 이룬다 온날을 바람과 함께
심연의 저편에서 흐느끼다가 亂叫聲한다
―「바다의 아이들」 제3연
일모가 올 때
자욱한 빛깔을 시간과 진행의 종말처럼
도시의 언덕에서 가리며 우리는 분별할 수도 없이
나무가 타는 것을 보았다
검은 광택을 퍼부으며
바다에서 주워 올려지는
불붙은 삿대의 방향 같은
해변의 동요! 동요!
날이 피안에 미쳐 변색하고 있음을,
이렇게 인간의 의사가 전달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일모가 올 때」 제1연
바닷가에서의 시간은 대단히 위험하다. 로프줄은 안전을 지키주는 생명줄인데 그것을 새파란 칼날로 끊고 있으니 더욱더 위험해질 것이다. 「바다의 아이들」에서도 처음에는 찬란한 햇빛이 비치던 바다였는데 소나기가 쏟아지고, ‘濫費의 하늘로 급류를 이룬다.’ 바다의 아이들은 심연의 저편에서 흐느끼다가 절규(亂叫聲)한다. 소나기 정도가 아니라 태풍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일모가 올 때」에서는 그냥 잔잔히 노을이 번지는 풍경이 아니라 “바다에서 주워 올려지는/ 불붙은 삿대의 방향 같은/ 해변의 동요! 동요!”라는 구절로 보아 엄청난 강풍이 오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하늘이 색깔이 ‘변색하고’ 있다는 것은 평상시 일모 때의 색깔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시는 제3연에 가서 불안ㆍ악운ㆍ패배ㆍ침묵ㆍ종말 같은 시어를 동원, 시의 분위기를 더욱더 어둡게 하고 있다.
동인지에 시를 싣던 습작기 때나 신춘문예 투고 작품을 쓸 때 최하림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바다는 잔잔하지 않았다. 바람이 심한 폭풍 전야나 태풍이 방파제와 등대를 때리는, 재앙을 가져오는 바다를 주로 그렸다. 바닷가의 아이들은 모래성이나 쌓으며 유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높은 곳으로 대피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이제 1976년에 낸 첫 시집에서 바다는 어떤 이미지로 그려져 있는지 살펴보자.
흔들리고 증오스런 달빛이 확신의 지방으로 흐르는
밤에 우리들은 무슨 까닭으로 깨어 있었던가
우리들은 그를 사랑했던가
아니다 이제는 버릴 수 없는 쓸쓸한 밤이여
외로움이 그를 가게 한 뒤로 밀려드는 눈물의 안개
그리고 堤坊을 타고 오르는 파도 소리
소리는 더욱 크고 높게 울부짖는다
(……)
가만히 흔들리는 바다로 바다로 가
일대를 조용하게 할 질문을 들어야겠다
먼 현실로 돌아가 내가 나일 수 있다면……
나일 수……
있다면…
―「비가」 앞부분, 끝부분
이 시도 공간적 배경을 바다로 삼은 시이지만 전작들처럼 엄청난 재앙이나 비극의 공간으로 상정하지는 않았다. 밤중에 제방을 타고 오르는 파도 소리는 더욱 크고 높게 울부짖을 뿐 인간 세상에 큰 피해를 주는 바다는 아니다. 그래서 “가만히 흔들리는 바다로 바다로 가/ 일대를 조용하게 할 질문을 들어야겠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시를 쓴 것이 유신 시대였던 만큼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의문을 시로 다룬 적이 있는데 인명 ‘엘리자베스’가 등장하는 시가 그렇다. 영국 여왕의 이름이 엘리자베스이므로 영국을 생각하기 쉬운데 미국을 가리킨다. 이 이국 여성의 이름이 나오는 시에서 바다는 미국과의 ‘거리’를 상징한다.
안개를 가르며 우리들은 지붕과 가로수가 젖어 있는
거리를 지나 지친 걸음으로 걸어갔다 자욱한 무적 속으로
걸어갔다 거리의 너희들은 모퉁이에서 우리를 부르고
너희들의 풍요한 웃음으로 맞아주었다
우리들은 우리나라의 선원다운 힘으로 껴안았다
금발의 엘리자베스여 그때 너는 나에게
입 맞춰주었던가 너희 금발로 감싸주었던가
금발이 흘러내리고 낡은 베드가 삐걱거리고
그리고 숨소리 뜨거운 숨소리
우리들은 흔들리었고 흔들리면서
아메리카의 동해안에 도착하였다
―「웃음소리」 전반부
한국인 선원과 미국인 창녀의 만남을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 이 시의 마지막 행에 그 해답이 들어 있다. “너를 사랑하는 비열한 내 나라와 내 어머니 그리고 내 이름”으로 시가 끝나는데, 미국의 저급한 대중문화에 심취하는 이 땅의 젊은이들도 못마땅하였고, 미국의 눈치를 보는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도 못마땅해서 이런 시를 쓴 것이 아닐까. 한국과 미국 사이엔 태평양이 있는데 그 엄청난 바다를 항해해 가서 선원이 한 일은 고작 금발의 엘리자베스를 껴안고 베드에서 뒹구는 것었다고 비판한다. 최하림 시인이 한국의 대미 관계를 날카롭게 비판한 이런 시를 썼다는 것이 이색적이다.
1982년에 낸 두 번째 시집에는 섬을 다룬 시가 보인다.
바다 갈매기들은 산 그림자 새를 빙빙 돌며 눈부신 비상을 햇볕 가득한 바람에 적고 있었다.
한 해 두 해 그들은 그들의 비상을 적었다.
날기 어료운 바람이나 海霧 속에서도
그들은 힘껏 날개를 펼치고
이 하늘 저 하늘 가로지르며
끼룩끼룩 말하고 숨 쉬고 노래하더니
어느 날 은은한 빛으로 비쳐오르는
한 기쁨 섬이 되어 西南海 위에 솟아올랐다.
어두운 바다가 밝아져 오는 섬이 되어 솟아올랐다.
―「새섬」 전문
새섬은 모도茅島라고도 하는데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귀동에 위치한 섬이다. 억새풀인 새[茅]가 많아 붙은 이름이지만, 새[鳥]로 오해하여 조도鳥島로 오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시인은 그 섬을 말한 것이 아닌 것 같다. “한 기쁨 섬이 되어 西南海 위에 솟아올랐다”고 한 것으로 보아 새롭게 태어난 섬을 말한 것이 아닐까. 사실 이 시의 주인공은 바다 갈매기들이다. 그들은 날기 어려운 바람이나 해무 속에서도 힘껏 날개를 펼치고 이 하늘 저 하늘 가로지르며 끼룩끼룩 말하고 숨 쉬고 노래한다. 바다의 주인이다. 자유롭게 비상하는 바다 갈매기들이 있어서 어두운 바다가 ‘밝아오는 섬’이 되어 솟아올랐다고 하니 섬과 바다와 바다 갈매기들이 일체를 이루고 있다. 시가 무척 밝고 희망적이다. 시인의 인생관이 조금 바뀐 것일까.
가수 남진의 <가슴 아프게>라는 노래가 있었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으로 시작되는 이 노래를 연상케 하는 시가 있다. 바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기에 박제상의 부인이 서럽게 울다가 치술령의 신모神母가 되었다고 한다. 신라 눌지왕 때 박제상이 볼모로 잡혀가 있는 왕의 아우 미사흔을 구출하러 왜국에 갔다가 무사히 구하여 귀국시켰으나 자신은 왜왕에게 잡혀 죽고 말았다. 이에 박제상의 부인이 세 딸을 데리고 치술령(울산과 경주 경계에 있는 재)에 올라가 슬픔과 그리움에 겨워 통곡하다가 죽어 치술령 신모가 되자, 뒷날 백성들이 「치술령곡」을 지어 불렀다고 하였다고 한다. 이런 가요와 설화를 생각나게 하는 시가 있다.
이른 새벽을 걸어서 그대는 들로 나가고
검은 터널 같은 밤을 걸었지 어둠이
바다 같았지 만날 수 없는 바다 깊은 바다
식구들이 돌아와 누운 조그만 목에서 흐르는
물과 해초들이 해후의 기쁨으로 흔든다 해도
어떤 슬픔으로 기쁨이 빛을 낼 건가
어떤 죽음으로 그리움이 길을 열어줄 건가
가파르게 건너가는 빛살 속에서 저 달빛은?
나무들은? 소리들은? 벌거벗은 몸의 슬픔은?
잃어버린 그대를 그리는 이 애탄 사랑은?
―「思慕曲」 전문
연애시를 많이 쓰지 않은 최하림이 이렇게 “잃어버린 그대를 그리는 이 애탄 사랑은?” 하고 외치고 있다. 바다는 나와 그대를 떨어뜨려 놓은 격리의 공간이다. 죽어야지만 그리움이 길을 열어준다면 이미 그대는 저승에 가 있을 수도 있다. 이와 같이 밤에 거리를, 혹은 바닷가를 걷다가 돌아와 보면 식구들이 다 잠들어 있다. 화자의 그리움의 대상은 그러니까 식구 중 한 사람이 아니란 것이다. 시인이 이런 시를 썼다고 해서 실제 인물이 있었는지 알아보려는 시도는 시에 대한 가장 속된 접근법일 것이다. 「해일」이라는 시에서는 해일을 우리 인생에 닥치는 시련으로 간주해 극복하자고, 헤쳐나가자고 말한다.
햇빛 속으로 지나갔다, 검은 물체가.
온 숲이 흔들리고 웅덩이의 검은 물도
흔들렸다. 보이지는 않았으나
검은 물체는 한 마리 날쌘 표범 같았다.
수분이 지난 뒤 표범의 뒤를 따라 시위가 공기를 뚫고
어둠 속으로 어둠 속으로 날아가
산맥을 울리고 한밤중마다
여린 귀의 바다를 울려댔으나
깊은 바다의 부르짖음을 울리지 못했다
부르짖음이 홀로 진동하여
어느 날 무섭게 땅을 가르고
사나운 파도로 달려가
어떠한 법도 없이 달려가
다름없는 골목과 하늘에 이르러,
솟아오르리, 우리들은, 파도여, 너무나 가파로운 파도여.
그날이 한 세상과 다른 세상의 지옥이라 해도
비록 새 날과 같은 빛줄기라 해도.
―「해일」 전문
해일이란 것은 자연현상 중의 하나로 인간에게는 큰 재앙이 될 수 있다. 해일이 해안을 덮치는 광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나간 이 시는 제15행에서 시적 화자를 ‘우리들’이란 복수를 씀으로써, 또한 “솟아오르리”라는 동사를 씀으로써 어두운 분위기를 일거에 바꾼다. 이 세상의 온갖 재난과 재앙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솟아올라 이것을 극복하겠다는 암시가 바로 “솟아오르리”라는 다짐에 숨어 있다.
제3시집에는 시어로 ‘바다’와 ‘섬’을 사용한 시가 딱 한 편 나온다.
안개 낀 날에는
비렁뱅이 되어
산도 바다도
흘러가고 우리도
흘러가다가
어느 날 어느 곳에
발을 내린다
물새들이
멀리 떠돌다
이름 없는 작은
섬에 날개를 접고
쉬듯…… 그리고
깊이 꿈을 꾸듯……
―「안개 낀 날에는」 전문
이 시에서는 섬의 의미가 물새들이 쉬어 가는 곳이다. 우리 인간이 떠돌다가도 언젠가는 어딘가에 정착하듯이 물새들도 이름 없는 작은 섬에서 날개를 접고 쉰다고 하여, 섬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 인간도 안개 낀 날에는 타인이 쉬어 갈 수 있는 섬이 되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
제4시집에는 바다를 다룬 짧은 시가 2편 있다.
사랑하였던 바다가 사라지고 검은 바다에
철침 같은, 비가 비, 비, 비, 꽂힌다
―「바다」 전문
바다 멀리 유채꽃들이 무시로 져 내리고 햇빛이 쏟아져도 까닭을 알 수 없는 내 귀는 바다에로 향한다
제 슬픔의 깊이를 제가 모르는 가을아 겨울아 봄아 나는 너희 속에 몸 섞으며 미끄럽게 놀고 안개 피웠나니.
날 가고 또 가서 한 별이 떨어지는 언덕 더 이상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애틋함이 밤새처럼 흘러간다.
가엾은 오필리아처럼
물속의 오필리아처럼……
―「바다 멀리 유채꽃들이」 전문
앞의 시는 바다에 장대비가 내리는 정경을 한 컷의 사진처럼 찍어 보여준 것이다. 화자에게 바다는 “사랑하였던 바다”였다. 시에서 풍랑의 바다, 이별의 바다로 다뤘을지라도 사랑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뒤에서는 오필리아를 등장시킨 것이 이채롭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에 나오는 오필리아는 햄릿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사실을 알고선 그 충격으로 미치고 만다. 그녀는 실성한 상태에서 강가의 꽃을 꺾다가 강에 빠지게 되는데, 강물에 떠내려가면서도 계속 노래를 부르다 서서히 물속으로 가라앉아 죽어간다. 이 시의 화자는 유채꽃들이 무시로 져 내리는 바다 멀리로 귀가 향한다고 하고선 “제 슬픔의 깊이를 모르는 가을아 겨울아 봄아” 하고 외치기도 하고 “더 이상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애틋함이 밤새처럼 흘러간다”고 하고선 오필리아를 마음속으로 불러본다. 오필리아는 강에 빠져 죽었지만 시인은 제주도에 가서 왜 오필리아를 생각한 것일까? 이 시에서 시인은 제주도 4ㆍ3시간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지만 왠지 분위기는 그 옛날의 비극적 사건을 연상케 한다.
1998년에 낸 제5시집에서는 「소록도 詩篇」 연작시 6편이 실려 있다. 시인은 자신이 태어난 안좌도(혹은 팔금도)라는 지명을 시에 쓴 적이 없었다. 신안군이나 목포시라는 지명도 시에는 나온 적이 없다. 그런데 자신의 태생지 근처도 아니고 남쪽 고흥군 내에 있는 소록도 연작시를 쓴 이유는 이 섬이 오랫동안 한센병 환자(시인은 ‘문둥이’로 지칭)들의 보금자리였기 때문이다. 한센병 환자였던 한하운 시인에 의해 그들의 고통과 소외감이 이미 1950~60년대에 일반인들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특히 소록도는 소설가 이청준이 『당신들의 천국』(1976)이라는 장편소설에서 소록도 내의 병원에서 벌어지는 병원장과 환자 간의 갈등을 다룸으로써 그 장소의 중요성을 특별히 부각시킨 바 있었다. 그런데 최하림은 두 사람의 작품이 있었지만 90년대에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로 소록도를 다뤄보기로 한다. 자신이 섬 태생인 것이 가장 큰 이유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살갗을 간질이는 아지랑이 속에서
오른쪽 발가락이 또 하나 떨어지고
내일이면 왼쪽 발가락도 떨어질 것이다
소록도에서는 다들 발가락이 떨어진다
저기 지팡이를 짚고 가는 문둥이가 누군지,
고향이 어딘지, 뉘 집 자식인지 몰라도
여기서는 모두 발가락이 떨어진 문둥이다
날마다 아픔을 발가락에 싸서 보내는
문둥이들은 오늘도 소록도 남쪽 끝,
공적비들이 국한영문으로 새겨진 중앙공원을
지나 어두워지려는 숲길로 의지하며 간다
―「소록도 詩篇 1」 전문
소록도에 병원이 세워진 것은 1909년 대한제국 시대였다. 그해 8월, 대한제국 칙령 제75호에 의거해 ‘자혜의원’이라는 이름의 요양병원을 전국 각지에 세우는 작업을 했는데 특별히 한센병 치료를 위한 전문 요양소로 소록도의 자혜의원을 운영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때도 이승만 정권 때도 인권의 사각지대로서 많은 환자가 억울하게 죽기도 했었다. 이 시는 소록도에 대해 특별한 얘기를 하지는 않고, 시인의 환자들에 대한 측은지심이 강하게 느껴진다. 최하림은 한하운을 생각하곤 “시인이여, 문둥이 되어, 발가락이 떨어지고, 손가락이 떨어지면 발가락 시 쓰겠느냐, 손가락 시 쓰겠느냐.” 하면서 혀를 찬다. 다른 연작시도 시인의 연민의 정의 산물로서 바다 이미지, 섬 이미지는 안 보인다. 「소록도 詩篇 6」에서 “함경도 끝에서 한 달 열흘 걸어온 사람”이 있었다고 하면서 한하운을 암시하기도 하고 “오스트리아에서 왔다는 벽안의 간호사” 이야기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헬리콥터를 타고 소록도에 내리셨다”고 하면서 소록도에 얽힌 정보를 알려주기도 한다.
제6시집 『풍경 뒤의 풍경』에는 바다나 섬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은 시가 안 보인다. 그러나 생의 마지막 시집인 제7시집에서는 바다를 여러 차례 다룬다. 특히 3편의 시에 문둥이가 나온다. 시인은 생의 말년에 한센병 환자들의 아픔에 대해 골똘히 생각한 증거자료가 바로 아래의 시편이다.
구부러진 해안선으로 바람이 날리고 저녁이 빠르게
달려간다 문둥이들은 손을 먼치고 일어섯 하늘을
보다 말고 바삐 집으로 간다 아직도
서쪽 하늘에는 해가 걸려 있고 한밤중에는
달리 떠올라 바다를 물들인다
바다가 물들면 문둥이들은 어디로 가는가?
어디로? 어디로?
오오 가을밤은 여름보다 길고 밭고랑에서는 배추들이
퍼렇게 자라고 어떤 포기들은 겉 이파리가
누렇게 바랜 채 그대로 있다
문둥이들처럼 있다
―「구부러진 해안선으로」 전문
아무 잘못한 것도 없이 일종의 전염병인 한센병에 걸리면 일단 얼굴이 흉측하게 짓물러진다. 손가락과 발가락에 감각이 소실된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외상을 입고 이로 인해 이차 감염이 발생하면 손가락과 발가락의 말단 부위가 떨어져 나가기도 한다. 몸이 아픈 고통은 둘째치고 주변 사람들의 외면을 받게 되니 완전히 천형인 것이다. 시인은 「바다와 산을 넘어」 같은 산문시를 “크고 사나운 맘모스처럼 문둥이들은 바다를 건너고 산을 넘어 푸른 호수에 이르렀다 문둥이들은 그들을 보고 있는 호숫가에 몇 날이고 몇 밤이나 서 있다가 무슨 예감에 싸인 듯 호수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로 시작한다. 집단 자살을 시도했다기보다는 그들의 좌절감과 절망감을 표현한 것이라 여겨진다. 연작시의 일곱 번째 시를 제7시집에 넣는다.
크고 작은 보퉁이를 이고 철선(鐵船)을 내린 아낙들이 울퉁불퉁한 길을 돌아가노라면 오래된 교회가 나오고 길게 휘어진 해안길이 시작된다 아낙들은 종종걸음으로 간다 때마침 계절풍이 불어와 청솔가지들은 흔들리고 받다가 차오르고 새들이 후드득후드득 날아간다 벽안의 천사들이 병원 문을 닫고 들어간다 계절풍은 그 뒤로도 세차게 계속 불어와 소나무는 소나무들끼리 판잣집은 판잣집끼리 문둥이는 문둥이들끼리 서로 부여안고 밤을 보낸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소록도는 비극적인 징조를 점점 선명하게 보이면서 벼랑으로 굴러떨어진다 검은 바다가 소록도를 집어삼킨다
―「소록도 7」 전문
한하운 시인을 제외하고 한센병 환자들을 이렇게 집중적으로, 많이 다룬 시인은 최하림 외에는 없다. 병이 준 절망감 외에도 환자들이 겪는 소외감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봤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제 바다는 자신의 태생지보다 소록도를 둘러싸고 있어 의미있는 공간이 되었다. 하지만 마지막 시집에 실려 있는 이 시야말로 자신의 시적 행보에 있어 마지막으로 찍은 피리어드가 아닐까.
해풍에 걸려 소나무와 갈매기들이 날아간다
언덕에는 방갈로 몇 개 서 있고
여인들이 비키니 차림으로 돌아다니고
해조음을 실은 바닷물은 주기적으로 모래를 밀어 올리고
쓸어내리기를 반복하면서 시간을 벼랑 끝으로 밀어붙인다
나는 등불을 들고 있는 처녀와도 같이 모래밭에 모로 누워 있다
나는 누구인가를 기다리며 죄짓고 있다
오래오래 누워 죄짓고 싶다
―「오래오래 누워」 전문
일곱 권의 시집에 실리지 않은 말년의 시 21편이 시전집에 나와 있지만 바다나 섬을 다룬 시는 이 가운데 없다. 그래서 이 시를 섬에서 태어난 시인 최하림의 최후의 작품으로 꼽고 싶다. 제5연까지는 우리가 해변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풍경 묘사다. 그러나 제6연에 가서 화자 자신이 등장, 모래밭에 모로 누워 있다고 한 데서 시의 분위기가 일순간 바뀐다. 그렇게 누워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를 기다리며 죄짓고 있다”고 한다. 사신의 70년 인생을 회고해 보니 죄를 지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불가에서는 글을 쓰는 사람과 종교인들이 기어綺語의 죄를 많이 지어 무간지옥無間地獄에 간다고 하는데, 시인 자신이 죄짓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반성해 본다. 그러나 마지막 연에서 반전이 일어난다. “오래오래 누워 죄짓고 싶다”고. 한참 더 살든 다시 태어나든지 간에 계속 시를 쓰면서 죄짓고 싶다고 한 이 시의 마지막 연은 시인의 유언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는 바다의 모래밭에 모로 누워 있다. 수구초심首丘初心, 죽을 때가 되어서도 여전히 바다의 품에 안기고 싶어 한다. 최하림, 그는 섬에서 태어난 시인이다. 시인은 죽어서도 물새 소리와 파도 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 『사랑의 탐구』 외 산문집 외 『최익현 평전』 다수
지훈 문학상 , 시와시작상, 카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 천상병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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