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탑을 쌓은 손주
S어린이집은 손녀 JY와 손자 JA가 다니고 있는 곳이다. 바로 옆의 대학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을 위한 어린이집이다. 2014년 3월 초순에 손주들이 세살 때 입학한 어린이집이다. 첫 날에는 울며 불며 할아버지 품에 매달려 떨어지지를 않는다. 고만 고만한 애기들이 대여섯명 그리고 보육교사 두분이 돌보고 있다. 억지로 선생님에게 맡기고 문 밖으로 나올 수 밖에는 방법이 없는 게다. 창틈으로 들여다 보아도 계속 울어대며 할아버지를 찾고 있는 지유지안이 애기들이다. 이렇게 발을 들여놓은지도 만 5년째이다. 지금은 일곱살 짜리들의 기린반이다. 그저께 금요일 밤에 손주들이 아빠랑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청담공원 아파트로 왔다. 며느리는 대학병원의 교수로 학회 참가차 유럽행으로 함께 못한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더 없이 반갑고 귀엽고 대견하고 보물보다 더 귀한 손자손녀가 아닌가. 올 때 마다 녀석들은 TV에 매달린다. 지유는 7세 이상의 포켓몬스터 지안이는 12세 이상이 보는 신비아파트라는 어린이 애니메이션를 무척이나 보고 좋아하는 프로그람이다. 올 때 마다 각각의 TV화면을 각자 독차지 하곤 한다. 토요일 아침에도 TV에 매달리는 녀석들을 달래고 달랜다. 맛있는 것도 사주고 갖고 싶은 장난감도 사주겠다며 전철에 오른다. 강변역에 있는 테크노마트로 가기 위함이다. 할머니의 아파트에서 청담역까지 걸어오는 동안은 모든 것이 녀석들의 놀이개이며 놀이터가 된다. 자그마한 공원 나무 아래에서 두 녀석들이 돌탑(?)을 쌓는다. 탑이라야 고작 십여개의 돌멩이 뿐인 것이지만 쌓고 무너지면 또 다시 열심히 쌓고 있는 녀석들이다. 할아버지는 그저 옆에서 마냥 흐뭇한 모습으로 지켜볼 뿐이다. " 엄마 아빠 건강하게 해 주세요. 할머니 할아버지 우리 쌍둥이들도 건강하게 해 주세요 " 돌탑을 쌓고 큰 소리로 빌고 있는 손주들의 소원이다. 눈물겹도록 기특한 일곱살 손주들의 소원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할아버지도 마음 속으로 응원을 보낸다. 청담역 승강장은 B3(지하 3층)에 있다.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이 지상에서 지하역 승강장으로 연결 통로이다. 3층이라지만 아파트 높이로는 5층 정도의 깊이다. 지하철을 타러가는 도중에도 손주들의 놀이는 계속되고 있다. 뛰어 다니다가는 서로 업어주고 업히고 뒤엉켜 쓸어지기의 반복이다. 비틀거리며 몇 발자국을 옮기지 못하고 넘어지고 딩굴기를 만류에도 막무가내이다. 깔깔대고 웃고 떠들고 마냥 신나는 쌍둥이 두 손주들의 일상의 한 모습이다. 잠시도 한 눈을 팔 수가 없는 상황이다. 어른들의 생각으로는 말이다. 갓난애기 어린아이 청소년 청장년 노인들 남녀노소 나이 불문하고 각계 각층의 자신만의 삶이 있다. 태여나는 순간부터 한 사람으로서 독자적인 인권이 있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에게는 그들만의 생각으로 말과 행동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엄마 아빠는 아이들에게는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가 아닌가. 부모의 뜻대로 먹고 자고 입고 행동하고 배우며 자라는 것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곳에는 팥이 자랄 뿐이다. 잡초가 자라면 벌초를 해주어야 한다. 오곡백과도 땅 속의 물과 자양분을 흡입해야 열매를 맺는다. 땀과 정성을 쏟은 만큼 그대로 가을에 수확이라는 결과물을 얻을 수가 있는 노릇이다. 콩을 팥으로 만들겠다고 어른들의 어거지는 통할 수가 없으며 절망의 나락이 기다릴 뿐이지 아니한가. 어린아이가 원하는대로 하고픈대로 기다리고 지켜보는 아량과 배려와 베품이 필요하다. 어른이 어린이들 보다 더 낫다고 하는 판단의 기준이 무엇인가. 한 마디로 단지 어린이들 보다 조금 먼저 세상에 태여났을 뿐이지 아니한가. 막강한 권력으로 나라를 떡 주무르듯 하던 전직 두명의 대통령이란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탈법 불법 공금횡령 국정농단 헌법유린등 으로 쇠고랑을 찬 범법자로 국민들의 지탄과 척결의 대상이며 배신자일 뿐이다. 이 땅의 재벌이라는 작자들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돈 앞에서는 저들에겐 법과 질서 도덕적인 양심뿐 아니라 부모 형제 자매도 안중에서 사라진지 오래이다. 더구나 국민들은 자신들의 하수인이며 노예에 불과한 갑질의 대상으로 노리개로 보일 뿐이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불법의 온상으로 저들만의 세상의 성곽을 쌓고 있는 몰골이다. 가진 것이 더 많다고 창고에 금은보화와 곡식이 가득하다고 무슨 소용이 있을까마는. 모든 것은 진실 앞에 물거품으로 사라질 허상일 뿐인 것을 말이다. 국민의 뜻은 거역할 수 없는 도도한 역사의 심판자이다. 70여년 전에 할머니 생각이 그 당시 일곱살 손자의 가슴을 울리고 있으니. 70대 중반을 넘기고 있는 손자인 노객에게 슬픈 역사는 지울 수는 없는 올가미일까. 창고에 가득 쌓아 놓은 곡식을 지켜야겠다며 혼자 이북 고향에 남은 할머니의 세월이다. 일주일이면 다시 돌아온다고 늦어도 한 달 안에는 반드시 고향 어머니를 찾을 수 있다며 내 아버지는 자식 넷과 내 어머니만을 앞 세우며 피난길로 나선 것이다. 그 세월이 어느새 할머니의 손자가 자식을 낳고 자식들이 또 자식들을 낳은 것이다. 내 할머니 1세대가 가시고 2세대인 내 부모님들도 떠나신지 50년 40년이 흐른 세월이다. 3세대라 할 수 있는 이 노객마저 뜬다면 희미해진 고향산천을 누가 기억이나 하려는지. 하루 빨리 내 부모님이 그토록 그리워하고 가고 싶어하던 고향 땅을 언제나 밟을 수 있으리오. 한 줌의 재로 남은 부모님을 내 고향 산천에 묻을 수 있는 그 날이 언제나 오려는지. 효도 한번 제대로 못한 내 삶에 가장 잘 한 것은 무엇일까. 새삼스레 돌아보면 아내와 결혼한 것이 아닐까. 내 아내는 아들 딸을 낳아주고 아들 딸이 결혼하여 며느리 사위를 가계(家系)에 올리고 그리고 각 두명씩의 손주들을 품에 안겨 주었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평범한 삶이다. 돌탑을 쌓고 있는 손주들의 모습이 내 앞에 전개되고 있는 이 순간이 어쩌면 인간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꼭짓점이 아닐까. 어른들의 잘못된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기를 손주들의 돌탑에 얹어 놓으면 어떨까. 손주들이 밤새껏 TV를 보고 싶다고 칭얼대도 말이다.
2018년 6월 5일 무 무 최 정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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