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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롬 4:3)
다음은 로마서 4장에 대한 매츄 헨리의 주석에서 설명해 주는 내용입니다. 너무 좋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고 분명히 말한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3절). 신앙에 관한 모든 논쟁에 있어서 우리는 이 질문을 해야 한다. 위대하거나 훌륭하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성경은 말하기를 '아브라함이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는지라'고 한다(창 15:6).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었다. 그와 같이 의로 여기신 바 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로 된 것이다. 이 말씀은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불신앙으로 고통스러운 갈등을 겪고난 직후에, 약속된 후손에 관하여 아주 주목할만한 믿음의 행위를 보였을 때 말해졌다. 칭의를 얻는 데는 완전한 믿음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우세한 믿음 즉 불신앙을 이길 만한 믿음이 요구된다.
이 칭의의 마지막 부분에 와서 모든 사실을 우리에게 적용한다(4:23-25).
그는 여기서 아브라함이 칭의는 우리의 본보기가 되기 위한 것이었다고 결론짓는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23절). 그 사실이 기록된 것은 단지 아브라함을 역사적으로 계속해서 칭찬하거나 그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어떤 점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구약 성도들에 대한 기사는 단순한 역사적 기록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지도하기 위한 선례와 거울(고전 10:11)이 되고 또 우리에게 교훈을(롬 15:4) 주기 위해서 기록되었다. 특별히 아브라함에 관하여 이 사실이 기록된 것은 '우리도 위한' 것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바로 그와 같은 의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그 기록은 족장들을 위할 뿐 아니라 세상 끝에 오는 우리도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기 때문이다.
1. 우리의 공통적인 특혜(23,24)
그 특혜가 즉 의가 우리에게 전가될 것이다.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23절). 바울은 교회 안에서 이 자비가 계속될 것을 나타내기 위해,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세상에 교회를 두시는 동안에는 지금처럼 그 칭의가 앞으로도 계속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미래 동사를 쓰고 있다.
2. 우리의 공통적인 의무(25)
이러한 특혜의 조건이자 의무는 믿는 것이다. 이 믿음의 바른 대상은 하나님의 계시이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계시는 장차 올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었고, 우리에게 주신 계시는 이미 오신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계시에 있어서 이러한 차이가 믿음의 문제를 바꾸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를 일으키신 분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그의 능력을 믿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은혜를 의지해야 한다. 그는 이 사실을 25절에서 설명하고 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25절). 그는 죄를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에 사실상 범죄자로서 죽으셨다. 그러나 자기 죄 때문에 죽으신 것은 아니다. 그는 우리의 죄를 보상하시기 위해 죽으셨다. 예수는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그는 그의 죽으심의 공로로 우리의 빚을 다 갚으셨고 부활로 우리의 채무가 소멸되었다는 증서를 받으셨다. 사도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특별히 강조한다.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도 그리스도이시다(롬 8:34). 이제 모든 문제를 살펴볼 때 우리가 우리 자신의 행위의 공로로 의롭다 하심을 받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의를 의지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이것은 바로 바울이 본 장과 전 장에서 우리의 모든 위로의 원천이며 위대한 근원으로서 확증해온 진리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바울 사도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가’를 따라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성경에 기록된 아브라함과 다윗의 사례를 들어서 율법의 행위에 의해서는 절대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는 인간이 오직 그리스도를 믿어서 그의 의를 전가받고(전가된 의)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강단에서 설교하시는 분들도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가’를 따라서 설교를 준비하고, 전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후 2:17)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의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11)이라는 말을 잘 순종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예배 시간에 대표기도를 하시는 분들은 성경에서 기도에 대하여 배워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교회의 목사님이나, 장로님이나 집사님이 하시는 대표기도를 본받아 기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본받으려는 분들이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가’를 따라서 기도를 하셨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러하지 못한 경우엔 문제가 됩니다. 기도의 내용도 그렇고, 기도의 형식도 결핍이 많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기도들을 잘 배우고 본받으려고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또 기도에 대해 잘 가르친 책들을 공부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한칼빈탄생500주년기념사업회가 지난 2009년 6월 22일 서울교회에서 ‘칼빈과 한국 교회’를 주제로 진행된 ‘요한칼빈탄생500주년기념 학술 심포지엄’에서 장훈태 박사가 ‘칼빈의 기도론’을 주제로 한 연구논문을 발표한 것 중에서 몇 가지라도 함께 읽어보기를 소원합니다.
* 칼빈의 ‘기도론’은 자신의 ‘기독교 강요’ 제3권 20장에서 다뤄지고 있다. 칼빈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져야 할 중요한 것이 기도이며, 이것은 신앙의 참된 증거라고 강조한다.
* 칼빈은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소망을 나타내는 신앙이다. 기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전적인 믿음이 그의 사랑하시는 이들을 우러러볼 수 있고, 우리의 전적인 기대가 그를 의지할 수 있으며, 우리의 소망이 하늘을 향하도록 하고, 하늘의 보화를 열어 보이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 칼빈은 기도하는 자의 원칙을 몇 가지로 설명한다. 그는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것과 그의 존재와 인도를 받을 것을 요구한다. 기도하는 자의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첫째, 경외심이다. 칼빈은 “기도하는 사람의 올바른 자세는 하나님과 대화하려는 적합한 마음과 정신을 가지는 것”이라고 한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다. 따라서 불경스럽거나 충동적이거나 경솔한 요소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심정으로 기도하는 자는 철저하게 주만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자기의 능력과 기도에 온 정신을 바쳐야 하고, 산만한 생각으로 주의가 흩어지지 않아야 한다. 이는 기도의 원칙이다. 경외하는 생각이 전혀 없는 경박한 태도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과 반대되는 것이다.
* 칼빈은 기도의 원칙에서 절제를 들고 있다. 하나님은 절제하는 간구를 들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경건한 자들의 뜻에 행하시겠다고 하지만 그들의 뜻대로 허락하시거나 관용하시지는 않는다. 철저하게 자신의 뜻과 계획, 방법에 의해 경건한 자들과 기도하는 자들을 돕고 계신다. 하나님은 절제와 정직함으로 구하는 것을 원하신다. 따라서 기도할 때 합당치 못한 일들을 가지고 경솔하고 몰염치하고 무례한 자세로 하나님께 부르짖고, 닥치는 대로 어떤 망상이라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드러내 놓는 사람들은 중대한 죄를 짓는 것이다. 한마디로 부끄럽고 추잡한 욕망을 모조리 내어놓는 것이 얼마나 뻔뻔스러운 일인가? 우리는 삶 속에서 내어놓을 수 없는 기도의 제목들, 추악하고 감히 내놓을 수 없는 것들을 하나님께 털어놓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러한 것에 대해 용납하시지 않으신다. 오히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시며 우리의 소원을 그의 권위에 굴복시키시며 억제시키신다.
둘째, 부족한 마음과 회개하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 칼빈은 기도할 때, 자신의 부족을 의식하고 회개하는 심정으로 기도할 것을 강조한다. 그는 “우리는 기도할 때 항상 자신의 부족을 느끼며, 우리가 구하는 모든 것이 얼마나 필요함을 진심으로 생각해서 그것을 얻고자 하는 진실함, 그리고 강렬한 소원을 갖고 기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때, 자신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가증스러운 것이다. 분명히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께 대한 희롱이다. 하나님은 정직한 영을 좋아하신다. 따라서 올바른 기도의 시작과 준비는 겸손하고 성실하게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용서하지 않은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지 않으신다.
셋째, 자신에 대한 신뢰를 모두 버리고 겸손하게 용서를 비는 기도를 해야 한다. 칼빈은 “기도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은 겸손하게 영광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며 자기의 영광을 전혀 생각하지 않으며, 자기의 가치를 일체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곧 자기 자신의 신뢰를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자기의 가치를 티끌만큼이라도 주장해서 허영과 교만에 부푼다면 하나님 앞에서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는 마땅히 자기의 영광이나 자기 가치에 대한 어떤 생각도 버려야 한다.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이같이 겸손하게 산 사람들의 실례를 성경에서 찾아보아야 한다. 다니엘, 다윗, 이사야, 예레미야, 바룩과 같은 하나님의 종들은 모두가 경건하면 경건할수록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더욱 겸손했다. 따라서 기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죄의 용서를 비는 것이다. 칼빈은 “겸손하고 성실하게 죄를 고백하는 것과 용서를 구하는 것이 기도의 시작이며 준비”라고 말했다. 사람은 그가 아무리 거룩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와 자유롭게 화해하시기까지는 무엇인가를 하나님께 희망을 가져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자신이 용서하지 않는 사람에게 순조로운 관계를 갖지 않으신다.
넷째, 확신 있는 소망이다. 칼빈은 우리의 기도가 반드시 응답된다는 확실한 소망을 갖고 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기도할 대 소망과 믿음은 공포심을 극복하고 오히려 용기를 가져다준다. 확신은 모든 불안에서 해방되게 하고, 감미로운 감정을 갖도록 한다. 확신은 완전한 평안으로 우리의 믿음을 위로하지만 더욱 더 깊은 의미는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 때문이다. 기도는 우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인도에 따른다는 것이 기도의 법칙이다. 만약 우리가 어떤 은혜를 받기 위해 간구하면서 그것을 실제적으로 기대하지 않는다고 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이 부족한 믿음에 대하여 심히 노여워하실 것이라고 칼빈은 말한다. 그러므로 경건한 사람의 기도는 두려움과 소망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즉, 그는 현재의 곤경에서 신음하며 앞으로 올 고통을 두려워하고 불안해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에게서 피난처를 얻으며 언제나 그가 도와주실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 그리스도 중심적인 기도
칼빈의 가르침은 전반적으로 그리스도 중심적이며, 이 점에서 기도론도 예외는 아니다. 인간은 언제나 자아가 강하고 자존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인간 자신에게서 선한 것이라고는 찾기 힘들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도움을 구하고, 필요한 것들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비참 대신에 모든 행복을 제공해 주시는 분이시다. 곤궁 대신에 부요함을 주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는 하늘의 보화를 우리에게 열어주시어, 우리가 믿음을 다하여 그의 사랑하는 이들을 생각하게 하신다.
우리의 기대를 오로지 그에게 걸게 하시고 우리의 소망을 오로지 그에게만 두고 집착하게 하신다. 이같은 내용들은 그리스도 중심적인 신앙을 소유하도록 만든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자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그리스도 중심이다. 그리스도로부터 무엇인가 받고, 그에게서 찾아야 하고, 또 그 안에 있는 것을 기도로써 구하는 길밖에 없다. 칼빈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해야 한다고 특별히 강조하는 까닭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중보자로서 하늘의 사역을 계속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 법칙이다. 일상적인 언어로 기도해야 한다. 똑똑한 말로 하고 분명한 의식으로 하되, 일정한 시간에 마음과 정성을 완전히 기도에 바쳐야 한다. 그러나 기도할 때 주의할 점은 우리의 주관에 의해 하나님을 조정하지 말고, 우리가 조정받도록 해야 한다. 성령이 인도함을 통해 기도하고, 인내를 갖고 계속 기도해야 한다.
* 기도 훈련
기도란 신앙의 구체적인 행위다. 그러나 기도에 대해 가르치고 음미하고 훈련되는 것이 필요하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전 삶의 영역에 폭넓게 영향을 미치는 만큼 더욱 더 철저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기도는 끊임없이 자신을 복종시키는 작업이고, 거듭남을 통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기도는 죄의 용서와 확신, 자신의 갱신과 변화가 있어야 한다. 칼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훈련시켜서 우리로 하여금 아버지를 찾고, 아버지께 간구하게 하므로 큰 유익을 얻게 하려 하신다고 격려한다. 또한 성도가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더 많이 노력해 자기의 결점을 시정해 기도의 완벽한 법칙에 날마다 더 가까이 접근해야 한다면서 우리가 기도 훈련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칼빈은 기도훈련 가운데 시간을 정하고 기도하는 것과 인내로서 기도를 계속하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칼빈은 기도 훈련을 하는 자와 배우는 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기도의 장소, 시간, 태도, 형식 등에 관해서는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과 그의 뜻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어떤 특수한 상황에 묶어두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오로지 자신을 위한 기도를 드린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한다. 이와 같은 내용을 볼 때 기도는 하나님 중심으로 행해져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첫째, 일정한 시간에 기도해야 한다.성도는 일정한 시간을 정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일정한 시간이 되면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완전히 기도하는 데 바쳐야 한다. 일정한 시간이란 깊은 밤을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보내고 난 이른 아침에, 하나님의 온전한 축복으로 식사를 마쳤을 때, 하루 일과를 마치고 밤에 잠을 자려고 할 때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시간을 지킬 때 미신적이어서는 안된다. 시간을 지킴으로써 하나님께 빚을 갚는 듯이, 그리고 남은 시간에 대해서는 갚은 빚지 없다는 심정으로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 규칙적으로 시간을 바쳐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연약함을 위한 일종의 훈련이다. 우리가 기도할 시간이 없을지라도 시간을 만들어 기도해야 한다. 특정한 시간, 특정한 곳에서 기도하지 않으면 결코 기도를 배울 수 없다. 하지만 기도하는 시간이 형식에 지나치지 않도록 삼가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은 잘못된 기도나 형식적인 것을 원하지 않는다. 마음과 시간과 온전한 심령으로 그 앞에 나아가 간구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둘째, 인내로 기도를 계속해야 한다. 칼빈은 우리의 욕망을 버리고 주를 인내로써 기다리며 기도하다 보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열정에 빠져 착각을 일으킬 때가 많다.즉,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거나 도와주시지 않으면 노하시거나 적의를 품으셨다고 속단하고, 기도를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성급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지 말고 자신의 마음을 잘 조절하면서 평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우리가 기도할 때 가졌던 소망과 확신이 상실되었을 때도 그 희망을 연기하면서 성경이 우리에게 강력하게 요구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칼빈은 강조한다. 다시 말하면 낙심하지 않는 태도(눅 18장)를 갖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인내로 기도한 실례들로 가득 차 있다. 갈멜산에서 일곱 번 기도를 드린 엘리야(왕상 18장), 한 사건으로 21일간 기도를 드린 다니엘(다니엘 10장),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의 기도(마 26장), 성령이 임할 때가지 기도한 초대교회 성도들(행 1장), 옥중에 갇혔던 베드로의 기도(행 12장), 바울도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해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권면하면서 로마인들에게는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라고 했다. 칼빈은 “기도는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과 우리의 필요와 간구가 하나님께 알려지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기도는 끊임없이 계속하지 않으면 헛된 것이 된다고 주장하면서 성도들이 인내하면서 기도를 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내해야 할까? 칼빈은 순종할 마음과 태도를 갖출 것,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법칙대로 우리를 다스리도록 맡길 것, 기도를 계속하면서 법이나 욕구를 누르면서 끈기 있게 주님을 기다리는 법을 배울 것 등을 당부했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복종이야말로 인내하며 기도하는 자에게 필수적이다. 기도는 하나님이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주신 커다란 특권이다. 따라서 죄의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만이 기도할 수 있고, 부활의 확신과 재림하실 예수를 믿는 자라야 기도할 수 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에게 생명이다. 기도가 없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는다. 기도의 줄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받는 것으로서 생명의 줄과도 같다.
더 많이 있지만 이 정도로 마치고자 합니다.
다음은 기도 특히 예배 시간의 대표기도에 대한 몇 가지 생각입니다.
1. 미리 준비해서 종이에 써 보고 그것을 보면서 기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임금님이나 대통령을 만나서 이야기를 한다고 하면 얼마나 준비하고 연습하여 꼭 필요한 말만 하려고 할 것입니까?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그보다 더 신중하고 경외하는 자세로 준비하고 조심스럽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시간에 대표기도를 할 때에는 가능하면 종이에 써서 보면서 하는 기도를 권하고 싶습니다. 즉석에서 하는 기도가 성령님의 인도를 따르는 것이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있지만, 실제 예배 시간에 경험하는 바로는 횡설수설하거나 쓸데없이 머뭇거리거나, 끝날 때 ‘아멘’하기가 어려운 기도를 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드는 생각입니다. 잘 정리된 기도는 짧은 예배 시간에 성도들이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집중하게 합니다. 그러나 즉흥적 기도는 중언부언할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2. 실제로 하나님께 기도를 한다고 하면 너무 자주 “하나님” 혹은 “아버지”를 부르는 것을 피해야 할 것입니다. 친구와 대화하거나 친구 부모님과 대화할 때에 한두 마디 이야기하고서 친구나 친구 부모의 이름을 부른다면 얼마나 어색하겠습니까? 10분간을 이야기하더라도 아마 한두 번 부르면 충분하고, 다음에는 필요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것입니다. 미리 기도를 준비하지 않은 경우엔 더욱 그러한 부름이 많은 것을 봅니다.
3. 중복되는 말들을 주의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남의 글을 인용해 보니 읽어보시면 동의가 될 것입니다.
교인들이나 목회자들 중에도 〈기도말〉 중에 중복되는 말을 쓰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고쳐야 한다. 예컨데, “고맙고 감사하신 하나님 아버지”,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믿음과 신앙을 더하옵소서”, “간절히 비옵고 기도합니다”, “근심 걱정 우수사려(憂愁思慮)가 많은 세상에서”, “받아 열납(悅納;창4:4)하여 주옵소서”, “봉헌하여 드리오니(바치오니)” 등등이 주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사례인데 이는 표현어휘(형태요소)는 달라도 뜻(의미요소)은 같은 말이다. 출처 : 아이굿뉴스(http://www.igoodnews.net)
4. ‘지금은 처음시간’이라는 표현은 틀린 표현입니다. 예배의 시작을 알리면 이미 예배는 시작된 것입니다. 예배 인도자의 기도를 시작으로 찬송, 성시교독에 이어 기도인도자가 나와 기도인도를 하기 때문에 예배의 처음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처음 시간이오니(혹은 시작하는 시간이오니) 마치는 시간까지”라고 기도합니다. 또한 “예배의 시종을 주님께 의탁합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둘 다 ‘예배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마치는 시간까지’로 바꾸어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여간 기도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것이기에 성경에서 어떻게 가르치는가를 잘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남들이 하는 것을 본받으려고 하는 것보다 성경에서, 그리고 신앙고백이나 요리문답에서 바르게 배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기도의 순서에 대한 다음 글을 함께 읽어보고 싶습니다.
* ACTS - 찬양(Adoration) 고백(Confession) 감사(Thanksgiving) 간구(Supplication)
* 감사와 찬양이 함께 섞여서 기도가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
1. 감사
1)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 - 구원하심, 용서하심, 축복하심
2) 응답을 믿는 감사
․ 감사의 말들 : 단순한 “감사합니다”라는 표현보다는 실제로 은혜를 주신 것에 대한 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다. * 시 30:11,12
․ 구원하여주심에 대한 감사
․ 한 주간 동안, 또는 지금까지 이끌어주심에 대한 감사
․ 과거 축복에 대한 감사
(시 100:4)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2. 찬양
1) 하나님의 성호 찬양 2) 하나님의 거룩하심 찬양 3)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 찬양
3. 죄의 고백과 회개
1) 죄는 응답을 가로막음 (사1: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2) 고백과 회개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 고집 죄인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갈등 이해
3) 고백의 내용 : 일정 기간 동안 지었던 죄, 불신앙
4. 간구
․탄원의 기도 - 과부의 기도같이 간구 (눅18:1-8 ), 히스기야의 간구 기도
․간구의 내용 : 모임의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예배, 기도회, 장례 등).
․중보성의 기도(도고) : 위정자, 불신자의 구원, 질병의 쾌유 등.
5. 맺는 말 -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