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이 초대한 시인_ 김미령 신작시>
목련주공
김미령
그는 일부러 강변을 따라 먼 길을 돌아왔고 목련이 벌써 지고 있더라고 말해 주었다.
새에게 모이를 주고 나왔다고 이제 죽은 듯이 자고 있을 거라고 말하면서
남모르는 아픈 동생이라도 두고 온 사람처럼 내겐 그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그 새는 얼마나 클까. 몹시 난폭하고 시끄러워 매일 이웃의 원망을 듣진 않을까.
그 새는 지금쯤 새장을 나와 빈 집을
서성이고 있을 것 같았다.
창가로 햇빛이 깊숙이 들어와 눈이 부셨다.
그의 안경에 비친 풍경을 바라보는 동안 나는 어둑한 골목 안의 커다란 홍등을 본 듯했고
그리고 그 밑에 서 있는 사람의 커다란 부리를
그가 아는 것이 내가 본 것과 다르지 않았고
그가 막 하려다 관둔 말은 나도 그만 가슴에 묻기로
우리는 주택가를 통과해 다시 강가로 나갔다.
낡은 놀이터를 지나다 새장 같은 기구를 보았고
그 안에 웅크려 앉아 빙빙 돌았다.
점점 빨라지면서 지워지는 얼굴
우리 이미 알고 있었지 않아? 이토록 평범한 미래*
십 년 후에도 이십 년 후에도
삶이 이대로 지속될 거라는 것
그가 뜬금없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나는 잠깐 딴 데를 보고 있었고
목련 아래 그의 후드점퍼가 문득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김연수
<시편이 초청한 시인_ 김미령 대표시>
굿 엔딩
김미령
목소리는 옥상에서 들려왔다.
자리를 옮겨가며 희미해지다 다시 커지는가 싶더니 한 사람이 막 전화를 끊으며 문 안으로 들어섰다.
옥상에 있는 거 아니었어요?
그의 실물이 점점 커지면서 내 앞에 멈춰 서더니
방금 왔는데요?
목소리의 발생 지점이 모호해졌다. 그의 다툼에 대한 나의 상상이 납작해져 흘러내리더니 실제 얼굴이 단순한 상狀으로 망막에 맺혔다.
어떤 기분이 생기려다 사라졌고
오후가 다시 밋밋해졌다.
조금 전에 하늘소를 봤는데요 흰 점이 많은…
각자 휴대폰을 뒤적이다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어릴 때 보고 정말 오랜만이었는데 저는 하늘소를 보면 좋은 일이 생길 것 같거든요.
그는 약간 상기된 얼굴로 말했고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때 창밖에서 여름이 우릴 보고 있었다.
서쪽의 햇빛이 실내를 깊이 비추었을 때 책장 위 먼지들이 뒤꿈치를 들고 있었고
오래 기다렸던 우편물은 모르는 곳으로 가고 있었고
훗날 내가 이런 상황을 다시 맞이하리란 걸 예감하며 나는 이 순간을 자세히 기억해두기로 했다.
점심으로 국수는 어떤지 물으려는데 전화가 울려 그는 다시 복도로 사라졌다.
김미령 시인
200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
『파도의 새로운 양상』 『우리가 동시에 여기 있다는 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