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의 약속 문 태 준 (1970~ )
마음은 빈집 같아서 어떤 때는 독사가 살고 어떤 때는 청보리밭 너른 들이 살았다.
별이 보고 싶은 날에는 개심사 심경당 별 내리는 고운 마루가 들어와 살기도 하였다. 어느 날에는 늦눈보라가 몰아쳐 마음이 서럽기도 하였다.
겨울 방이 방 한 켠에 묵은 메주를 매달아두듯 마음에 봄 가을없이 풍경들이 들어와 살았다.
그러나 하릴없이 전나무숲이 들어와 머무르는 때가 나에게는 행복하였다. 수십 년 혹은 백 년 전부터 살아온 나무들, 천둥처럼 하늘로 솟아오른 나무들
뭉긋이 앉은 그 나무들의 울울창창한 고요를 나는 미륵들의 미소라 불렀다. 한 걸음의 말도 내놓지 않고 오롯하게 큰 침묵인 그 미륵들이 잔혹한 말들의 세월을 견디게 하였다.
그러나 전나무 숲이 들어앉았다 나가면 그뿐, 마음은 늘 빈집이어서 마음 안의 그 둥그런 고요가 다른 것으로 메워졌다.
대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듯 마음이란 그냥 풍경을 들어앉히는 착한 사진사 같은 것 그것이 빈집의 약속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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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빈집에 한없이 넓고 큰 꿈을 들여 놓고 산다는 것이 부럽습니다
시인들이 가지는 가난한 부자는 이런 즐거움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