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군사가 갖추어야 할 것
하느님의 군사로 부르심을 받은 이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그러므로 악한 날에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그리고 모든 채비를 마치고서 그들에게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한 무장을 갖추십시오."(에페 6,13)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한 무장을 갖추는 것입니다. 세상의 무기가 아닙니다. 사울 임금은 다윗에게 이스라엘에서 가장 귀한 갑옷, 자기가 입고 있던 임금의 갑옷을 내 주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몸에 맞지도 않고 무겁기만 했습니다. 그는 임금의 갑옷을 벗어 버리고, 하느님의 무기로 무장하고 골리앗을 이겼습니다.
하느님의 무기로 무장하지 않고서는 세상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당당히 설 수조차 없습니다. 기도의 자리가 승리의 자리인 것은 하느님의 무기로 무장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굳건히 서십시오.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위한 준비의 신을 신으십시오. 무엇보다도 믿음의 방패를 잡으십시오. 여러분은 악한 자가 쏘는 불화살을 그 방패로 막아서 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투구를 받아 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에페 6,14-17)
전쟁과 관련된 격언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유비무환(有備無患)입니다. 준비 되어 있으면, 적이 함부로 넘보지 못합니다. 둘째,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입니다. 나를 알고 적을 알면 이깁니다. 나를 모른 채 적을 이기면 이기고 낫도 집니다. 나도 모르고 적도 모르면 말할 것도 없습니다.
기도의 자리는 나를 알고 적을 아는 자리입니다. 그 일을 위해 하느님께 지혜를 청하는 시간입니다. 사람에게 물으면 사람 수준의 지혜를 얻고, 하느님께 물으면 하느님 수준의 지혜를 얻습니다. 하느님의 지혜는 늘 이기는 지혜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분명히 질 것 같은데 절대로 지지 않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죽은 것 같은데 실은 살아 있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세계입니다.
하느님의 지혜를 가진 사람만이 늘 이기는 싸움을 합니다. 어떻게 해서 이깁니까? 먼저,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릅니다. 하느님께서 곧 진리이시기에 진리의 편에 서면 지는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굳건히 서는 것입니다. 불법이 나를 지켜 줄 것 같지만 불법은 나를 사로잡아 죄의 포로가 되게 합니다. 의로움이 나를 지킵니다. 그다음에 평화의 복음을 위한 준비의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구원의 투구를 쓰면 방어 무기는 완비된 것입니다.
공격 무기는 없습니까? 딱 하나 있습니다. 바로 성령의 칼입니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해서 진리의 허리띠에서부터 성령의 칼까지 무기를 갖춥니다. 무기를 갖추고 가는 곳이 어디입니까? 두 곳이 있습니다. 기도의 자리와 일상의 자리입니다. 두 곳 모두 전장이므로, 어디를 가건 무기를 갖추고 가야 합니다.
사실, 영적 전쟁은 기도의 자리에서 더욱 치열합니다. 그래서 무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일단 갖추고 나면 두려울 게 없습니다. 하느님의 군사에게 완전 군장은 하느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로움은 자신에게서 나오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를 때 의로움을 얻습니다. 이익의 신을 신으면 잠시는 이익을 거두는 것 같지만 멀리까지 가지는 못합니다. 가는 길에 다 잃어버리고 맙니다. 끝까지 사명을 다하려면 평화의 복음을 위한 준비의 신을 신어야 합니다.
우리는 수많은 가짜 뉴스, 거짓 정보에 시달립니다. 특히 하느님과의 관계를 이간질하는 잘못된 정보가 많습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과 신뢰를 저버리라고 끔찍하게 공격합니다. 그것을 다 막아 내는 것이 믿음의 방패입니다. 이간질에 놀아나지 않고, 시기심에 거꾸러지지 않도록 믿음이 막아 줍니다. 머리를 다치면 치명상을 입듯이, 구원의 본질을 잃어버리면 영원한 생명을 놓치게 됩니다. 구원의 투구로 머리를 보호해야 사탄의 사특한 능력을 구하지 않습니다. 맨머리로 세상에 나섰다가는 엉뚱한 데 정신을 빼앗기고 맙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세상과 싸우겠습니까? 돈으로 싸울까요? 권력으로 싸울까요? 아니면 지식이나 학벌로 싸울까요? 세상은 그런 것들로 싸우려고 덥빕니다. 하지만 기도하는 사람보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없고, 기도하는 사람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없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늘 하느님의 무기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가 로마의 감옥에서 에페서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며 기도로 승리하는 비결을 알려 줍니다.
"여러분은 늘 성령 안에서 온갖 기도와 간구를 올려 간청하십시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인내를 다하고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며 깨어 있으십시오."(에페 6,18)
기도하는 사람의 승리 비결은 "늘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무기로 무장을 하고 성령 안에서 온갖 기도와 간구를 올려 간청하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성도는 119구조대와도 같습니다.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불순종입니다.
중재기도는 기도로써 하느님의 기쁨에 이르게 하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자신의 기도 지향은 깜빡 잊은 채로 이웃을 위해 기도하다가 자기 기도의 응답까지 받는 것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이웃 성도들을 위해 기도했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내 자녀가 잘 자라 줍니다.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청하시는 바를 따라 기도했더니, 어느새 걱정하고 염려했던 일들이 슬그머니 응답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추구하며 기도했더니, 내 모든 필요가 채워져 부족한 것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이런 경험을 한다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무엇을 청해야 할까요?
"그리고 내가 입을 열면 말씀이 주어져 복음의 신비를 담대히 알릴 수 있도록 나를 위해서도 간구해 주십시오. 이 복음을 전하는 사절인 내가 비록 사슬에 매여 있어도, 말을 해야 할 때에 이 복음에 힘입어 담대해질 수 있도록 말입니다."(에페 6,19-20)
바오로는 감옥에 갇힌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기를 부탁합니다. 부탁은 단 한 가지입니다. 말씀을 주셔서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전하게 해 달라는 것뿐입니다. 감옥에 있는 것도 그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정도면 복음에 미친 사람이 분명합니다. 정말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선교하는 신자가 있습니다. 바오로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열정이 넘치고, 잘 웃고, 쉽게 베풉니다. 참 밝습니다. 복잡하지 않고 단순합니다.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과 친밀해질수록 자신을 위해 요구하는 것이 줄어듭니다. 일일이 청하지 않아도 채워 주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늘 넉넉합니다.
그런데 자기 욕심을 채우느라 가슴 졸이고, 서로 비교하며 갈등을 빚는 우리는 무엇에 미친 것일까요? 자기 자신에게 미친 것이 아닐까요? 이보다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교회의 기도 지향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세상의 죽어 가는 영혼들을 위해서 무엇을 기도해야 할까요?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아닌 복음에 미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