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 교수님의 추모미사가 있었노라며 친구가 유고작책을 보내왔습니다
장영희 그녀가 간지 벌써 일년....
기도합니다 그녀가 간곳에서는 건강하시라고....
故장영희 동문 1주기 추모 유고작 낭독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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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71 영문) 동문 1주기 추모 유고작 낭독회에서 창작 연주를 선보이고 있는 브라스퀸텟.
지난해 5월 9일 모든 이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세상을 떠난 故 장영희(71 영문) 모교 영문과 교수의 1주기 추모 행사가 5월 9일 교정에서 열렸습니다.
이날 오후 4시 이냐시오 성당에서 류장선 신부를 비롯한 예수회 사제 공동 집전으로 추모 미사가 마련됐고, 장영희 동문의 생전 친근한 벗이었던 류해욱(75 경제) 신부는 강론을 맡았습니다.
장영희(71 영문) 동문 1주기 추모 미사
유가족을 비롯해 이종욱(66 사학) 총장, 조긍호 교학부총장, 유기풍 산학부총장 등 교직원과 동문 및 장영희 동문의 제자 및 팬 클럽 등 80여 명이 참석한 미사였습니다.
영성체 이후 장영희 동문의 오빠 장병우 씨는 참석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자리에서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애통함은 그 무엇으로도…”라며 말을 잇지 못했고 “장영희 교수를 사랑해주셨던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장병우 씨가 여동생 장영희(세례명 마리아) 동문을 추억하며 추모 미사에 참석한 신자에게 인사하고 있다.
미사 이후 마태오관 9층에서는 오후 5시 40분부터 뜻 깊은 자리가 마련됐습니다. 장 동문이 남긴 글을 모아 샘터사에서 펴낸 유고작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낭독회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장영희 동문 유족이 주관하고 샘터사와 모교가 후원한 행사였습니다.
지난해 6월 22일 총동문회(회장 74 무역 김호연) 주최로 마련한 장 동문 유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낭독회 이후 두 번째로 마련된 이번 유고작 낭독회에는 17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장 동문이 환하게 웃고 있는 커다란 현수막과 함께 한 덕분에 고즈넉한 추모 공연이라기보다 신간 출판기념회처럼 따뜻하고 넉넉한 분위기였습니다.
특히, 이날 행사 사회를 맡은 방현주 MBC 아나운서, 낭독을 맡은 성우 배한성, 피아니스트 신수정, 가수 김영우, 추모 공연을 담당한 ‘김광희 교수와 브라스퀸텟’ 및 책의 노래 ‘서율’ 등은 모두 장 동문의 벗이자 지인이자 팬의 자격으로 모였습니다.
유고작 낭독회 사회를 맡은 방현주 MBC 아나운서
방현주 아나운서는 “장 교수님의 팬으로 인사 나누며 지내다가 덜컥 저 역시 암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를 받게 됐을 때는 동병상련의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라고 인사했습니다.
오프닝 낭독을 맡은 성우 배한성 씨가 낭독 이후 장영희 동문과의 추억담을 말했다.
“장 교수에게 아내가 만든 퀼트 손가방을 선물했던 기억이 떠오른다”는 배한성 씨는 장 동문이 특별히 좋아한 시인이었던 에밀리 E. 디킨슨의 ‘만약 내가(If I can)…’를 낭독했습니다.
피아니스트 신수정 씨의 낭독
장 동문의 친구이자 장 동문이 아플 때 직접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 병원을 자주 찾았던 신수정 씨는 장 동문이 남긴 에세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낭독했습니다.
장영희 동문의 팬이라 밝힌 가수 스윗소로우 멤버 김영우 씨가 낭독하고 있다.
연세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면서부터 장 동문의 팬이었다는 가수 스윗소로우의 멤버 김영우 씨는 ‘위대한 순간은 온다’를 낭독한 뒤 “위대함을 택시 안, 시장, 떡볶이집 등 작은 일상에서 발견하셨던 장영희 교수님처럼 일상 속에서 위대함을 찾으려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이종욱 총장은 추모사를 통해 “장영희 교수님의 유가족이 기탁한 장학금이 다음 학기부터 제자들에게 지급됩니다. 장 교수님은 세상을 떠나서도 많은 학생들의 앞길을 돕고 계십니다”라고 말한 뒤 “내년 9월 국제인문관 및 산학협력관이 신축되면 장 교수님 이름을 딴 공간을 마련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예수회 신부가 된 장 동문의 제자 김치헌(90 영문) 동문은 외국에서 추모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류해욱 신부님이 대독한 편지에서 김치헌 신부는 “오랫동안 잡은 목발 탓에 팔목이 저 보다 더 두꺼우셨던 선생님. 선생님 가방을 들어드리면서 인문관 복도를 걷고 싶고, 열정적인 강의와 유모 또한 듣고 싶습니다”라고 남겨 주위를 숙연하게 했습니다.
낭독회와 더불어 장 동문을 기리는 음악회도 행사 중간 마련됐습니다.
김광희 명지대 교수가 장 동문을 기리며 작곡한 추모곡 ‘MIRACULUM(기적)’을 트럼펫 2, 호른, 트럼본, 튜바 등으로 이뤄진 브라스퀸텟의 관악 5중주 연주로 감상했습니다.
밴드 ‘책의 노래 서율(書律)’이 반포 4동 성당 어린이들과 함께 추모 창작곡을 불렀다.
책에서 받은 감동을 노래로 표현하는 밴드 ‘책의 노래 서율(書律)’은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영희에게’, ‘With' 등 창작곡을 선보였습니다.
낭독회 마지막 순서였던 가족 인사 시간에서 오빠 장병우 씨는 유족을 대표해 참석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뒤 “영희야, 내일 보자”라고 인사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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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장영희 선생님
먼 길 떠나신 선생님께 아직 고별인사도 드리지 못했는데,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왔습니다.
작년 이맘 때 먼 이국땅에서 선생님께서 떠나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무덤 위에 꽃 한 송이 드릴 수 없어 눈물로 가만히...(확인불명)... 다시 벌써 1년이 되었습니다.
소식만으로 접하는 선생님의 먼 길 떠나감 앞에, 자격 없는 제자인 저는 흐르는 눈물 위로 '죄송하다'는 말만 삼켜야 했습니다.
종종 그럴듯한 농담으로 "야, 치헌아. 놀랬지?"하며 장난치시던 선생님의 환한 미소를 떠올리며, 먼 길 떠나심이 진정 농담이었기를 얼마나 바랬었는지요.
'선생님, 지금 장난치시는 거죠? 벌써 1년이 지났는데, 이제 농담이었다고 빨리 말해주세요.'
수업시간에 거침없이 열정을 쏟아놓으시던 선생님,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조금이라도 더 줄려고 애쓰시던 선생님, 오랫동안 잡은 목발에 팔목이 저보다 더 두꺼우셨던 선생님.
선생님, 오늘은 당신이 무척 보고 싶습니다. 당신의 가방을 들어드리고 함께 인문관 복도를 걷고 싶고, 당신의 열정적인 수업이 듣고 싶고, 재치 넘치는 유머를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 이제 또 봄입니다. 먼 길 떠나시기 전, 서강 언덕에 뿌리신 마음의 싹들이 기지개를 펴는 소리가 들립니다. 지난 1년 동안 저희들의 눈물과 그리움으로 자란 싹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겠지요.
그러나 선생님, 제게는 아직 작년의 봄도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님의 무덤에 가서 그 싹을 만져보기 전까지는…….
2010년 5월 9일
제자 김치헌
류해욱 신부 대독
[김치헌 신부님은 서강대 영문학 90학번 출신이며, 3년 전 장 교수님께서 당시 사제서품을 받는 제자들을 위해 쓰신
'하느님과 멋진 춤을'에서 교수님의 수업을 기록적으로 많이 수강했던 제자 중 1명이라고 소개되었던 분입니다.
장 교수는 임종 직전, 자신의 장례미사를 제자 출신 신부님이 맡길 희망하셨는데, 김 신부님을 비롯하여 해당되는
분들 모두 해외유학 중이었던 관계로 친구이신 류해욱 신부님께서 하시게 되었습니다.
감동적인 추모글 보내주신 김 신부님, 그리고 대독해주신 류 신부님 감사합니다.]
'장영희 교수 1주기' 답사
'세월이 더디구나' 했는데, 오늘은 '참 빠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희를 눈으로 떠나보내고, 가족들의 가슴에 묻고, 성모님의 품에 안겨 드린 지 정확히 1년이 되는 날입니다. '1주기'라는 말이 왠지 생소하게 느껴지고, 더욱이 영희에게는 어울리지 않은, 아름다운 성모성월 5월을 맞아서 '5월의 초대'라는 이름으로, 영희의 유고를 모아 출간기념 낭독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영희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간직하시고 이 자리에 함께하여주신 제자, 선배, 동료, 그리고 친지 여러분.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날마다 축복처럼 꽃비가, 아니 꽃비 같은 축복이 흠뻑 내리시길 기원합니다.
저는 저희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5녀 1남 중 둘째이자, 영희와는 여섯 살 오빠인 장병우입니다.
2001년 봄이었습니다. 저희 아버님이 1976년에 하버드에 교환교수로 머무시던 보스턴 바로 그곳에서, 영희는 아버님과 똑같은 대학에서 똑같은 교환교수로 일을 막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마침 미국으로 출장을 가게 되어 주말 하루, 영희가 묵던 자그마한 아파트에 묵었습니다. 기껏해야 두 달만의 만남이었지만,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다음날 영희가 끓여준 된장국으로 아침을 먹고, 하버드 거리와 찰스강 주변을 같이 걸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영희가 "오빠, 우리 기념으로 선글라스 하나 사자"하고 제안을 했습니다. 지금은 잃어버렸습니다만, 영문도 모르고 1개에 1달러 99센트짜리 선글라스 2개를 사서 하나씩 가졌습니다. 그날 오후, 저는 다음 일정이 있어서 영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공항으로 갔습니다. 차에서 내려 20여 미터쯤 걸어가다가, 터미널 입구에서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영희는 그때까지 가지 않고, 운전석에 앉아 나의 뒷모습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영희는 우리 둘이서 그날 오후에 산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습니다.
몇 개월 후면 만나는 그런 짧은 헤어짐에도 그처럼 아쉬움이 남는데, 영영 헤어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애통한 마음을 위로하기에는 그 무엇으로도 부족합니다. 그러나 오늘은 가시지 않는 슬픔을 위로하는 것보다, 영희를 향한 그리움을 다독거릴 시간이 되도록 노력했습니다. 분명 영희도 그렇게 바라고 있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영희를 떠나보낸 상처가 아물지 않는 저희 가족의 삶에 사랑과 희망의 힘으로 위로와 기도의 은혜를 주시는 여러분과 모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저희 가족의 감사를 드리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영희는 저에게, 그리고 언니 동생 조카들에게 "이 세상에는 참으로 아름답고 고마운 것들로 가득하다"는 그런 일깨움을 주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오늘 모시고 나오지는 못했습니다만, 자식들 몰래 영희의 유품을 품에 안으시고 소리죽여 통곡하신 저희 어머니, 자식들 앞에서는 꿋꿋이 중심을 잡아주시는 훌륭하시고 용감하신 저희 어머니께 감사드리며 영희 몫까지 효도할 수 있도록 오래오래 건강을 유지하시길 기도해주십사 하고 여러분에게 감히 부탁을 드립니다.
이 세상에 남아있는 저희 가족은 '언젠가는 저 세상에서 만난다는 희망과 믿음이 있기에 살아가기 마련'이라는 영희의 말을 기억하며, 하루하루 성실하고 올곧게 살아가겠다고 여러분 앞에 약속드립니다.
오늘도 성모님 앞에서 묵주 기도를 바치며, 영희에게 말을 건네겠습니다.
"영희야. 내일 보자"
(서울=연합뉴스) 김정선 기자 = 영문학자인 고(故) 장영희 서강대 교수 1주기 추모 행사가 9일 오후 5시30분 고인이 몸담았던 서강대 경영관 9층 리셉션홀에서 열렸다.
장 교수 유족이 주관하고 샘터사와 서강대가 후원한 이날 행사는 고인의 글과 지인들의 추모글 등으로 엮은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출간 기념 낭독회로 진행됐다.
장 교수 모습을 담은 영상이 상영된 뒤 성우 배한성이 장 교수가 생전에 좋아한 에밀리 디킨슨 시 '만약 내가'를 낭독했다.
이종욱 서강대 총장의 추모사에 이어 장 교수 제자로 가톨릭 사제 길로 들어선 김치헌 신부가 영국에서 보낸 추모글도 소개됐다.
피아니스트 신수정은 정 교수 에세이 가운데 삶을 풍부하게 하려면 지금 옆에 있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라고 강조한 글을, 그룹 '스윗소로우' 멤버인 김영우는 위대한 순간이란 하찮게 생각하는 순간들 속에 숨어 있음을 말한 글을 각각 낭독했다.
가요 '세노야' 작곡가인 김광희 명지대교수와 브라스퀸텟의 공연도 있었고, 밴드 '책의 노래 서율'은 장 교수 마지막 에세이집 제목이기도 한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과 이해인 수녀 추모시에 곡을 붙인 '영희에게', 7명의 아이와 함께 부른 '위드'(With) 등 추모곡도 소개됐다.
이날 사회는 장 교수 생전에 병원에서 우연히 보고 "교수님 팬"이라며 달려갔다는 방현주 MBC 아나운서가 맡았다.
방 아나운서는 이후 암 판정을 받아 수술하고 한숨 돌리게 됐을 때, 백혈구 수치가 모자라 항암치료를 못 받고 돌아가던 길이었는데도 함박웃음을 보여준 장 교수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고 한다.
샘터사 측은 "출연자들은 평소 장 교수 글을 좋아하거나 인연이 있어 서로 용기를 얻고 격려했던 분들"이라며 "고인을 함께 기억하고 어떤 삶을 살더라도 희망을 포기하면 안된다는 고인의 메시지를 되새기자는 게 이번 행사 취지"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