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이 초청한 시인_ 김효연 신작시>
위대한 요플레
김효연
게으른 저 연필을 깎자 더 자랄 것이다 닳고 뭉개진 지우개는 숲으로 가겠지
상스런 이 손가락을 털어놓자 손가락질 받으면 뭐 숟가락은 아니니까
대기업이 로망인데 깎거나 털어놓다가 재떨이가 될 수도
그렇지만 요플레 뚜껑에 혀를 사용한다는 회장님 공개는 우뚝하다
공룡이 싹싹 핥고 베짱이가 대충 훑는다고 공룡이 부자로 오래 살거나 베짱이가 일찍 죽는 건 아니다
‘요플레 뚜껑 1개에 붙어있는 양은 2g이며 40개 정도의 뚜껑을 핥아 먹어야 1개 분량의 이득을 볼 수 있다’
혀의 효율성만 연구하다 가난한 장례를 치른 아버지, 오직 이득에만 빨간 밑줄 긋고 몰두했더라면
여럿이 모여 요플레를 먹는 건 품위와 상식에 차질이 생기는 동시 이익을 포기할 수도 있다
작지만 단숨에 핥기엔 살짝 부족한 뚜껑은 회장님 혀를 몇 번이나 움직이게 할까
통 밑바닥까지 닿지 않는 안타깝게 짧은 혀가 내 검지를 야무지게 빨고 있다
<시편이 초청한 시인_ 김효연 대표시>
이전의 세계
김효연
사월에 핀 기침은 꽃이 다 떨어져도 지지 않았다
뼈다귀를 물고 개가 잽싸게 달아나자
고양이도 공범인가 사라진다
병원은 늦게 도착하고,
허리뼈를 이미 갉아 먹힌 사람은
C로 분류되었다
난데없이
로트와일러가 허벅지를 물어뜯는
자동차가 헬멧에 피를 묻히는 금요일
접시꽃은 접시, 꽃이 아니라 접시였다고
번복하기를 바라는 이 어처구니
돈다발 대신 약 다발을 받아들면
익숙했던 모든 사물들이 낯선 형태로 뿔을 들이댄다
밥상이 구토의 원인인양
곤두박질치는 체중계가 문제인양
불안한 정서는 가발인양
고깔모자의 감정을 처음으로 존중하며
하얀 접시에 놓인 빨간 케이크 한 조각을 받들며
희미하게 열린 문을 밀치고 다시 들어갈 수 있다면
김효연 시인
2006년 《시와 반시》 등단.
시집 『구름의 진보적 성향』 『무서운 이순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