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 강소천
지구가 도는 것을 우리는 세월이 흐른다고 한다. 확실히 세월은 흐르는 것임에 틀림없다. ‘오늘’을 뒤로 밀어버린다.
옛 시조에도 “인걸도 물과 같아서 가고 아니 오더라.”라는 구가 있거니와, 세월과 함께 모든 게 흘러버린다. 연령이 그렇고 청춘이 또한 그렇다.
그러나 물은 흘러도 산영(山影)은 흐르지 않는 것처럼, 세월은 흘러도 추억만은 흘러버리지 않는다.
지구가 생긴 이후 단 1분도 지구를 머무르게 한 적이 없다. 그러니 ‘오늘’을 오늘대로 머무르게 할 재간도 없다.
아니 있다. 단 한 가지, 그게 곧 사진이다. 사진의 얼굴은 나이를 먹을 줄도 늙을 줄도 모른다. 이렇게 귀중한 사진을 우리는 6·25전쟁으로 해서 거의 잃어버렸다. 그게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보면 한층 더 분하고 아깝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북에 아이들을 두고 온 나는 때때로 사진이라도 한장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늘 가져본다. 그런 생각이 이번 나로 하여금 ‘꿈을 찍는 사진관’이란 작품을 쓰게 했는지도 모른다.
언제인가 나는 골목길에서 이북에 두고 온 내 아이와 모습이 흡사한 이이를 만난 적이 있다. 나는 달려들어 그 아이를 부둥켜안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생각하면 얼마나 우스운 일이냐? 이북에 있는 내 아이가 이런 데 와서 있을 리 없고, 설사 왔다손 치더라도 지금 그 애가 저렇게 조그만 애는 아닐 것이다. 나는 4년 전 떠날 때 그 애들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수일 전, 나는 그림의 동화 ‘숲속의 난쟁이’를 읽고 앞으로 내게도 그런 일이 생길는지도 모를 거라고 쓴웃음을 웃어 보았다.
어느 대낮에 두 남녀 아이가 술래잡기를 하였는데, 여자아이가 잘못하여 난쟁이(妖精)들이 사는 숲속에 들어가 버렸다.
난쟁이들과 잠깐 동안 춤추며 놀다 숲속을 나왔는데, 그 동안 벌써 7년이란 세월이 흘러버린 것이다.
숲 밖에 나온 여자아이의 눈엔 모든 게 이상했다. 우선 몇 시간 안 지난 것 같은데, 어느새 밤이 가버리고 아침이 되었나? 이제까진 여름철이었는데 벌써 가을 경치일까? 그러나 그런 건 문제가 아니었다. 집에 돌아와 아버지 어머니를 만났을 때,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부모는 늙었었다. 그리고 그 곁에 웬 젊은이가 하나 앉아 있었다.
“아버지 저이는 누구예요?”
하고 여자아이는 물었다. 얼마나 기가 막힐 일이냐? 그가 바로 자기와 함께 술래잡기하던 7년 전 친구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고향과 집을 떠난 지 벌써 4년… 언제 내 아이들과 다시 만나게 될는지는 모르나, 생각만 해도 서글픈 일이다.
큰애들은 몰라도, 내가 떠날 때 돌밖에 안 되었던 아이는 이 아비의 모습을 통 모를 게 아닌가?
“엄마, 우리 아빠 언데 돌아오우?”
하며 어머니께 매달리던 큰애들도 이렇게 늙어버린 아비를 보면 서먹서먹해할는지도 모른다.
이러고 보면 사진이나 추억도 도무지 미덥지 않다. 산영처럼 흐르지 않는 추억이 안타깝다.
추억을 통해서 만나는 아이들이나 꿈에 혹시 보는 아이들의 얼굴은 내가 떠날 때 그대로다. 통 나이를 먹을 줄도, 클 줄도 모른다.
나는 세월이 빨리 흐르기를 바라야 할 것인지, 흐르지 말기를 바라야할는지를 통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