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백석문학상 수상작
우리처럼 낯선 (외 2편)
전동균
물고기는 왜 눈썹이 없죠?
돌들은 왜 지느러미가 없고
새들이 사라지는 하늘은 금세 어두워지는 거죠?
저토록 빠른 치타는 왜
제 몸의 얼룩무늬를 벗어나지 못하나요?
맘모스라 불리던 왕들은
맨 처음 씨앗을 뿌리던 손은 어디로 갔나요?
꼭 지켜야 할 약속이, 무슨
좋은 일이 있어 온 건 아니에요
우연히, 누가 부르는 듯해 찾아왔을 뿐이죠
누군지 모르지만, 그래서
잠들 때마다 거미줄이 얼굴을 뒤덮고
아침의 머리카락엔 불들이 흘러내리는 걸까요?
한 처음,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던 것처럼
그냥 웃게 해주세요
지금 구르고 있는 공은 계속 굴러가게 하고
지금 먹고 있는 라면을 맛있게 먹게 해주세요
꽃밭의 꽃들 앞에 앉아있게 해주세요
우리처럼 낯선
꽃들이 피어있는 동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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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균의 시집 『우리처럼 낯선』은 드물게도 종교적이다. 세상의 부패와 타락을 속절없이 허락한 그 신에게 오히려 참회를 요구하는 반종교성을 통해 구원에 대한 갈구와 구원 없는 현대의 묵시록이 극적으로 전경화하는데, 그렇다고 꼭 비장 또는 감상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해학이 따듯하다. 세상의 끝에 마련된 고독한 기도의 공간에서 걸어나와 새삼 연옥을 발견한 듯도 싶다. 모쪼록 새로이 출현한 연옥을 가볍게 때로는 가볍지 않게 산보하며 희망을 무서워하는 시적 분노가 고도로 단련되기를! _ 최원식(문학평론가)
뒤
꽃이 오고 있다
한 꽃송이에 꽃잎은 여섯
그중 둘은
벼락에서 왔다
사락 사라락
사락 사라락
그릇 속의 쌀알들이 젖고 있다
밤과 해일과
절벽 같은 마음을 품고
깊어지면서 순해지는
눈동자들의 빛
죽음에서 삶으로 흘러오는
삶에서 죽음으로 스며가는
모든 소리는 아프다
모든 소리는 숨소리여서
─멀리 오느라 애썼다,
거친 발바닥 씻어주는 손들이어서
아프고 낮고
캄캄하고 환하다
사락 사라락
사락 사그락
제 발자국을 지우며 걸어오는 것들
아무 데도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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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나는 그의 시가 조금은 전형적인 관조의 미학에 기울어 있다고 생각했으나, 그런 불성실한 선입견 탓에 내가 놓친 것이 있었을 것이다. 시의 수준이 고르고 편차가 적다는 장점 때문에 그의 수상에 동의한 것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꽃이 오고 있다// 한 꽃송이에 꽃잎은 여섯/ 그중 둘은/ 벼락에서 왔다”(「뒤」)고 쓸 때의 그 ‘벼락’에 이끌렸다. 그의 ‘벼락’은 언제나 고요하고 쓸쓸한 하늘에서, 고요하고 쓸쓸한 방식으로 온다. 그 하늘이 구름과 무지개의 저편, 더 멀고 깊고 캄캄한 정신적 우주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의 시에 비가 내리고 꽃이 필 때, 그 비와 꽃은 저 안 보이는 우주에서 내리고 저 무한한 우주에서 피어나는 것이겠다. 전동균의 ‘고요한 벼락’은 그곳 어디에선가 안간힘을 다해 태어난다. _ 이장욱(시인)
햇반에 고추장 비벼 먹는
화성에 갈까봐
화성에, 화성에 가서 토끼를 키울까봐
마태수난곡을 들으면
햇반에 고추장 비벼 먹는 저녁이면
아무도 기억할 수 없는 기억 저 편에서 기차는 달려오네
검은 옷 입은 사람들 가득 찬
그러나 텅 빈 기차는
역도 없는 바닷가 모래밭에 나를 남겨두고
블랙홀 같은 파도터널로 사라지고
화성에, 화성에 갈까봐
화성에 가서 눈이 붉은 토끼들과 탁구를 칠까봐
귀를 쫑긋대며 블루스를 출까봐
닫힌 문을 보면, 별 일 없니?
걱정스레 안부를 묻는 마음들
시장 좌판에 쪼그려 앉아 마늘을 까는 손들
밥 먹는다는 일의 누추와 장엄
꿈 따윈 가지지 마, 그럴수록 고통스러우니
사슬에 묶인 채 악기를 켜듯
잎 푸른 나무들 어둡게 불타오를 때
나는 내 뒷모습을 만나고 싶어
수컷이 새끼를 낳는다는 해마들의 얼음바다,
그 처음이며 끝인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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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균의 시에는 도처에 세상을 건너가는 고투가 보인다. 그것들은 정제된 언어와 겸허의 자세로 불편한 곳에서 견뎌내는 생에 대한 성찰과 집중의 힘을 보여준다. 한편 대상과의 조우나 그 전개에 있어서는 짐짓 달관에 가까운 시적 득의를 엿볼 수도 있는데, 그것들이 시인의 연배에 비해 다소 이르게 찾아온 것이 아니라면 이는 그의 공부의 깊이 덕일 것이다. 더러는 허무나 해학으로 생을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도록 장치를 마련하면서도 대부분의 작품이 일정한 격조를 유지하고 있어 책장을 넘기는 기대와 재미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일언이폐지하여 “밥 먹는다는 일의 누추와 장엄”(「햇반에 고추장 비벼 먹는」)을 통하여 삶의 비루를 즐기거나 위무하려는 그의 시편들은 저녁같이 깊기도 하고 연필심을 다듬는 손끝처럼 섬세하기도 했다. _ 이상국(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