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부터 시작되는 글. 서두는 항상 가마득하다. 어린이들 보고 싶다.
어린이들을 만나는 일은 항상 어려웠다. 이번에도 같은 생각을 두고,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하지 못했다. 이유가 뭘까. 아이들을 만나는 일에는 항상 최선을 다했다. 원래 그런 거니까. 사람들은 항상 그러니까. 나도 관성적으로 그랬다.
입 밖으로 뱉지 않은 생각은 번복할 기회가 많아서 좋다. 내가 어리석었다. 마주하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관성적인 게 아니라.
연후와 만났다. 연후는 꿰뚫을 수가 없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내가 지금 연후가 좋아하는 일을 행하는 건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로 했다. 연후와 함께 천년학타운의 동물들을 보고 싶었다. 연후가 싫어하면 어쩌나 걱정이 들면서도,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았다. 연후는 다행히 좋아했다. 늘 함께하던 핸드폰을 내려놓고 무언가에 집중하는 연후를 보면, 감동이 일었다. 연후에게 여기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싶어서, 내가 더 세심하게 아름다운 모습을 담았다. 어쩌면 연후에게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은,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연후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일명 사랑의 형태.
은후와 만났다. 은후는 시크 한 매력을 갖고 있다. 이제 와서 생각난 건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것을 은후는 언제 알게 될까.
은후와 유채꽃 축제를 함께 즐겼다. 북적한 축제 속을 거닐며 판매하는 과일을 시식해 보고, 손을 잡고 유채꽃 사이를 지나기도 했다. 번번이 은후에게 물었다. ‘저거 하고 싶어?’, ‘이거 맛있어?’, ‘꽃 예쁘지.’ 돌아온 대답은 이렇다. ‘아니, 별로.’, ‘그저 그랬어.’, ’응, 조금 예쁘네.‘ 은후다운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은 그랬다.
‘은후야 저기서 사진 찍을래?’ 은후는 ‘응, 그래.’ 하며 또 시크 하게 대답하고는 엄청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그 모습이 너무 웃기고 귀여워서, 오래 기억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래도 했다.
승유와 함께 축제를 보내던 주환이가 다가왔다. ’승유 잃어버릴까 봐 무서워.‘ 앞서 말했던 사랑을 주환이도 느끼나 보다. 그렇게 귀염둥이 셋과 함께 유채꽃을 눈에 담았다. 유채꽃 사이로 기차가 있었다. 그냥 기차가 있나 보다 생각하고 묻으려던 때, 은후가 기차에 가 보고 싶다고 했다. 도착해 보니 정말 운영하는 기차였다. 처음 보는 은후의 열정적인 눈동자, 타 보고 싶다는 귀염둥이들의 말을 그냥 넘기지 못했다. 하린 언니와 윤서 언니도 함께 여섯 명이서 기차에 올랐다. 은후는 여전히 별 감흥이 없는 것처럼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기차가 종착역에 달하고, 은후에게 물었다. ‘기차 어땠어?‘ 돌아오는 대답은 개중 가장 은후다운 대답이다. ’기차? 재미있었어.‘ 이 말이 그렇게도 설레었다.
세미한 것을 보라. 이번 어린이들을 만남과 동시에 받은 화두이다.
은후는 항상 시크 한 대답을 주면서도 다 티가 났다. 하고 싶은 건 아니라고 말하면서 눈동자는 같은 부스를 좇는 모습이나,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은 건 아니라고 하면서 이따 편의점에서 스크류바 먹고 싶다던 모습. 은후는 세미하지 않았다. 조금 다르게 말했을 뿐. 보이는 대로 볼 필요는 없다. 은후를 통해 스승님께서 들려 주신 말씀이다.
살림팀 오빠들의 부재로 나는 밥 공부 뒷정리에 함께했다. 살림팀을 하면서 세심해지는 중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떠오른 세심이라는 단어로, 마무리 모임을 하면서 생각했다. 세미와 세심은 같은 세 자일까. 세미한 것을 보려고 하니 나는 세심해져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내 열정이다.
첫댓글 함께 아이들 하나하나 세심하게 봐주고 챙겨준 덕분에 즐거운 큰집나들이였던 것 같아요~^^
큰집나들이 어땠냐는 질문에 시크한 고은후가 답합니다. “엄. 청. 재밌었어~” ㅎㅎ
따뜻한 시선과 사랑속에 함께한 시간들 참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