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생 이 야 기
수산 김원도
아직 나는 나의 전생을 알지 못 한다.
숙겁의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알지 못 한다.
아니다. 진정으로 알고 싶은 마음이 없다.
생각해 보면, 유사 이래 인류 역사적으로 보나, 이 땅의 역사를 보나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었던 적이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내가 임금이었든, 고관대작이었든 확언하건데 지금보다 더 나은 인간의 삶은 아니었을 것이 확실하다. 우선, 지금 내 생애에서 즐기고 있는 문명과 문화의 발달상으로 보아도 그렇고, 이 땅에 터전을 마련한 것도 그렇고, 지금만한 용모와 인격을 갖춘 것도 그렇고, 부모 형제 가족 친구 등 주위의 인연들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원불교의 정법을 만나서 인생 후반기에는 출가하여 성불제중의 서원을 이뤄갈 수 있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처음 출가했을 무렵 일주일에 한번 원로원에서 어른들을 모시고 당시에 신문이나 방송에서 회자되는 시사과학 주제에 대해서 강의를 했다. 강의가 끝나면 내용에 따라서 어느 어른은 따로 방에 초대하여 긴 대화를 나누기도 했는데, 이때 특히 관심을 보이신 분이 양산 김중묵 종사님이시다. 그런데 다른 어른신들은 나의 호칭을 “김박사”라고 했는데, 양산 종사님은 처음 나를 보면서부터 “스님”이라고 부르셨다. 자신 소개를 다시하고 혹시 잘못 알고 그러시는가 하여 정정을 하여 드려도 여전히 호칭은 “스님”이다. 전생에 깊은 산에서 수도하던 선승이었단다. 그 후로는 그런가보다 하고 관심 없이 지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책 한권을 선물 받아서 읽어 보았다. 제목이 “당신, 전생에서 읽어 드립니다”이다. 마침 한가하여 읽어보았다.
저자는 비교적 젊은 여인으로 우연한 기회(사실은 질곡의 삶의 여정을 겪고서)에 상대방의 전생을 보는 능력을 갖게 되어서 어려운 환경을 당한 인연들을 도와주고 있다고 한다. 자신도 어떻게 상대방의 전생을 알게 되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은 그의 전생에 얽힌 사연이 현재의 환경을 만나서 풀어지는 과정이기 때문에 당사자가 그런한 원인을 알게 되면 큰 고통 없이 당하고 있는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기 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나름대로 자신의 처지를 살펴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는 이러한 예를 많이 들면서 현실적인 삶의 단편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다가 지난 달 전무출신 훈련에 입선하여 공부하는 중에 두 법동지가 특강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은 전생을 보기도 하고, 상대방의 전생도 알 수 있다고 한다. 이는 그렇게 어렵거나 특이한 능력이 아니라 선정진을 정성으로 오래하면 자연히 얻게 되는 결실이라고 하면서 그것이 무슨 대수로운 일이냐는 표정이다. 하기야 정산종사 법어에 보면, “앞으로 오는 세상에는 사람들의 정신이 훨씬 밝아져서 오래지 않아 자신의 전생을 젊었을 때 일처럼 기억할 수 있다(도운편21장)”고 하셨다. 그러나 아직 깨치지 못한 입장에서 생각하면 과연 그럴까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이제 다시 전생을 생각해 본다.
옛 성인께서 말씀하시기를,“전생을 말하기는 쉽고도 어려운 일이나. 알기 쉽게 말하자면 그 사람이 현재 살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전생을 알 것이요, 그 사람의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의 후생(미래)을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전생에 잘 살고 복 많이 지은 사람은 이생에 잘 사는 사람이고, 죄 짓고 남에게 못할 일 많이 한 사람은 고통스런 삶을 산다는 교훈이시다.
분명 그렇다. 흔히 이 세상에 공짜는 없고 거저 되는 일은 없다고 한다. 대부분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러나 실 생활에 있어서는 많은 사람들이 힘 안들이고 이뤄지는 것을 원한다.
왜 그럴까? 그래서 많은 성인들께서 가르침을 펴시는 이유이다.
다시 나는 누가 네 전생을 알려 주겠다고 하면 서슴지 않고 사양하리라.
첫댓글 현생의 삶에서 전생을 그릴수 있음에 공감합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노력한 만큼 거둘수 있으니 열심히 정진하는 수 밖에 도리가 없는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