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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마라톤 2연패, 맨발의 영웅 아베베 비킬라
보통, 올림픽의 꽃은 마라톤이라고 합니다. 마라톤은 선수의 체력이나 정신력 등에 근거한 스포츠라 다른 종목들에 비해 고가의 장비가 필요하지 않아 특히 경제력이 낮은 저개발 국가의 선수들이 우승을 꿈꾸며 열심히 달리는 종목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아프리카 선수들은 운동에 유연한 근육조건도 갖추고 있어 마라톤에서는 검은 대륙 출신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일이 많습니다. 세계적으로 매년 800개 정도의 대형 마라톤 대회가 열리고 있다고 하는데 단축마라톤이나 동네 마라톤까지 합산한다면 수 천 개가 넘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울트라마라톤이라고 해서 기존의 마라톤 구간을 훨씬 초과하는 도로육상경기도 많으니까요.
하지만 마라톤 최고의 영광은 역시 올림픽 무대입니다. 제 아무리 세계 육상선수권대회나 정상급 마라톤 대회에서 몇 차례 우승을 했다고 해도 올림픽 우승 한 번에 견주지 못 하는 게 현실입니다. 올림픽 마라톤은 올림픽을 상징하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기에 여기서의 우승은 다음 올림픽 전까지의 4년간 세계가 인정하는 왕들의 왕(King of Kings)이라는 최고 영예를 얻습니다.
마라톤은 육상경기에 속하며 단거리, 중거리, 장거리를 넘어서는 초(超)장거리 레이스지만 트랙을 반복해 도는 트랙경기가 아닌 도로를 달리기 때문에 도로경주, 혹은 그냥 마라톤으로 부릅니다. 마라톤은 육상 경기에서 42.195km의 포장도로를 달리는 장거리 경주인데 기원전 490년 아테네의 용사가 전쟁터인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 달려와 전승의 소식을 전하고는 쓰러져 죽었다는 데서 유래합니다. 42.195km라는 약간 애매한 거리는 유럽의 거리측정 기준인 마일(mile)과 야드(yard)를 km로 환산한 것인데 26마일 385야드입니다.
마라톤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북동쪽으로 약 40Km 정도 떨어진 동네의 이름으로, 이 곳에서 기원전 490년 페르시아와 아테네가 격돌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아테네의 승전 소식을 전한 전령 페이디피데스를 기리는 뜻에서 1896년에 올림픽에 채택된 육상 경기 종목으로 알려져 있는데, 헤로도토스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아테네는 스파르타의 도움 없이 몇몇 동맹도시의 도움으로 마라톤 평야에서 페르시아군을 격퇴했다고 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로, 페르시아 전쟁을 중심으로 동방 여러 나라의 역사와 전설 및 그리스 여러 도시의 역사를 서술해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헤로도토스의 기록에는 전령(傳令) 페이디피데스가 이틀을 달려 마라톤 전투 승전 소식을 아테네에 전했다는 이야기가 전혀 나와있지 않기도 하지만,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겨우 30~40km를 꼬박 이틀간 달렸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 전설처럼 퍼져 있는 마라톤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는 후대에 지어낸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마라톤 전투와 관련된 일화로 페이디피데스가 스파르타로 질주하던 중 그리스 신화의 팬(Fan.판)신이 나타나 아테네의 건승을 약속했다고 하며, 이를 기리기 위해 당시 아테네에서는 해마다 횃불 들고 달리기대회를 열었다고 합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은, 마라톤 전투에서 패전한 페르시아의 후예국인 오늘의 이란은 마라톤 경기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란의 옛 국가명인 페르시아가 마라톤 전투에서 패전한 사실을 후세가 기분 좋게 즐길 기분은 아니겠지요. 이 때문에 올림픽과 아시아 경기대회 등 세계대회에서 마라톤 종목에 출전한 이란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으며, 자국의 수도에서 열린 1974년 테헤란 아시안 게임에서는 마라톤 경기가 정식종목에서 아예 제외되었을 정도입니다.
마라톤은 일반적으로 경기의 대미를 장식하는 각별한 의미로 올림픽 폐회식 날 열립니다. 한 국가에서 다수의 참가자가 나와도 무방하기에 간혹 수 십 명이 출전하는 경우도 있죠. 여기에는 선두권을 형성하는 유력 우승후보들을 견제, 페이스 조절에 혼란을 유도해 자국 선수를 유리하게 하는 이른바 ‘페이스메이커’들도 많이 들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중도 포기를 각오하고 선두로 치고 나감으로써 유력 후보를 초조하게 만들어 페이스 조절에 실패하도록 만드는 거죠.
하지만 이런 페이스메이커들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자국의 유력 선수가 잘 달려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일이기에 많은 경우 작전 실패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성공하는 경우도 있어서 자기나라 선수가 우승하는데 순교자 역할을 하지만 누가 페이스메이커인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마라톤은 고독한 스포츠라고도 합니다. 출발부터 도착까지 긴 구간을 달리는 동안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5km 구간마다 도로변 테이블에 마련된 물병도 달리는 선수가 스스로 집어 들어야 합니다. 선수가 물병을 잡다가 놓쳤다고 해서 누군가 그 선수에게 다시 집어 주면 바로 실격 처리됩니다. 선수가 달리는 동안 다른 선수와의 경쟁에서 비롯된 (옆 선수의 몸에 걸려 넘어진다거나 하는)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타인의 주행을 방해하는 의도적 신체적 접촉이나 물리적 도움도 불가합니다.
선수는 물을 마실 수도, 물병을 들고 뛸 수도 있지만 물을 많이 마시면 뱃속이 출렁거리거나 얼마 되지 않는 물병의 무게로도 소소한 체력소모를 가져오기에 달아오른 입안을 축이거나 몸을 식히기 위해 머리에 뿌리고 나서 곧바로 물병을 던져버리는 이유도 그래서입니다. "경기에 임한 선수는 조력을 받을 수 없다"는 마라톤 규정 때문에 부상에 따른 응급 의료조치를 받는 일도 허용되지 않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1년 연기되어 2021년에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지난 2016 리우올림픽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케냐 출신의 엘리우드 킵초게(Eliud Kipchoge.37) 선수가 다시 우승했군요. 그 나이에 올림픽 마라톤 2연패입니다.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10위 안에 드는 것도, 또 메달권에 드는 일도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인데 정말 대단한 체력과 의지력입니다.
마라톤 세계기록은 킵초게가 2018년 독일 마라톤대회에서 세운 2시간 1분 39초이니, 인간의 한계로 여겨지던 마의 2시간대 벽이 무너지는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올림픽 마라톤에서 최고의 전설적 인물을 꼽으라면 1960년 로마 올림픽과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제패한 에티오피아의 아베베 비킬라(Abebe Bikila. 1934~1973)를 추천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는 올림픽 무대에서 아프리카 흑인이, 그것도 세계 신기록으로 마라톤을 제패한 최초의 인물이지만 로마 대회에서 신발을 신지 않은 맨발(Barefoot)로 달려 우승한 ‘맨발의 기관차’로 더 유명합니다.
아베베 비킬라는 에티오피아 제정시대 때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1974년 멩기스투의 공산쿠데타로 폐위) 친위대에 소속된 군인이었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UN군의 일원으로 1년간 황제 직속부대인 칵뉴부대 대대장 경호병으로 춘천지역에서 복무 후 귀국했고 24세에 군인 마라톤 대회에 처음 참가했음에도 상당한 기록이 나오자 그 때부터 마라토너로 달리기 시작합니다. 대부분의 마라토너들은 10대 초중반에 운동을 시작하는데 뒤늦게 운동을 시작한 그에게 기대를 거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죠.
그는 이렇다 할 국제대회 기록을 가진 선수가 아니어서 뒤늦게 로마 올림픽 선수에 포함되었기에 발에 맞는 신발이 없었습니다. 마라톤 선수는 여러 개의 맞춤신발을 신었기에 당시의 후원사 아디다스는 아베베에게 맞춤신발을 제공할 시간이 부족하자 아베베의 코치는 맨발로 달려본 경험이 있는 그에게 차라리 맨발로 달릴 것을 권유했습니다. 새털처럼 가벼운 지금과 달리 그 때는 마라톤 신발이 600g 정도로 무거워 선수의 체력을 끌어내리는 한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1960년 로마 올림픽 마지막 날 야간에 치러진 마라톤 경기에서 노란색 상의에 11번을 단 맨발의 흑인선수가 세계 신기록(World Record)으로 결승선을 통과하자 전 세계는 경악했습니다.
마치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에서 깡마른 임춘애 선수가 육상 3관왕을 차지하자 배가 고파 라면만 먹고 뛰었다는 어처구니없는 신문기사가 확산된 것처럼 아베베도 신발을 살 돈이 없어 맨발로 뛰었다는 보도가 난무했지만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운동선수에게 설탕이나 특히 밀가루 음식은 근육 건강을 저해하는 최악의 정크 푸드(쓰레기음식)라는 사실을 모르는 무지한 기자가 쓴 대표적 정크 뉴스였습니다. 아베베 뒤로 마라톤 결승선을 통과한 나머지 선수들이 탈진으로 쓰러지거나 엎드려 구토를 하는 모습과 달리 그의 체력은 계속 달릴 수 있는 양호한 상태였습니다.
에티오피아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베니토 무솔리니(B. Mussolini/1883~1945) 파시스트 정권인 이탈리아에게 침략을 당해 황제가 해외로 망명하는 등 아픈 역사가 있었기에 로마 올림픽에서의 우승은 한국이 일본 올림픽에서의 우승한 것과 같은 극적인 감동을 가져와 아베베는 전 아프리카의 영웅으로 대접받았고, 올림픽 마라톤 제패를 국가의 경사라며 크게 기뻐한 셀라시에 황제는 금시계와 독일제 폴크스바겐 자동차 등으로 마라톤 영웅을 극진히 예우했습니다.
1964년 도쿄올림픽. 이번에는 스포츠용품 브랜드 푸마가 특수 제작한 육상화에 17번이 새겨진 검은색 상의를 입고 등장한 아베베 비킬라는 4개월 전 맹장 제거수술을 받고 회복중인 선수였습니다. 세계 언론과 토쿄올림픽위원회는 아베베를 우승후보에서 제외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부정적 시선을 일축하며 2시간 12분 11초라는 신기록으로 다시 결승선을 통과했고, 아베베의 우승을 로또당첨보다 어렵게 여긴 일본은 에티오피아 국가(國歌)를 아예 준비하지도 않았습니다.
때문에 그가 시상대에 올랐을 때 울려 퍼진 것은 황당하게도 에티오피아 국가가 아닌 일본의 국가인 기미가요(君が代)였죠. 일본은 우승자의 국적인 에티오피아 국가가 아닌 자기들 국가를 내보내면서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시상대에서 울려나오는 기미가요의 연주시간이 이토록 길게 느껴졌던 일본인은 한 사람도 없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초유의 사태에 대해 에티오피아는 물론 세계 언론도 거세게 항의했습니다. 일본은 거듭 사과했지만 마라톤 시상식 기미가요 사건은 1964년 도쿄올림픽 최대의 흑역사로 남게 됩니다. 이후 올림픽 개최국들은 모든 참가선수의 국가를 하나도 빠짐없이 준비하는 큰 교훈을 얻게 되죠. 인류는 반드시 실패를 통해서만 교훈을 얻게 되나 봅니다.
아베베는 올림픽 마라톤 개인 3연패라는 전무후무한 꿈을 안고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 출전합니다. 마라톤 3연패는 신체적 한계성을 가진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희망 수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가 반환점을 1위로 돌 때까지만 해도 세계는 3연패의 금자탑이 가능할 것이라며 흥분했습니다. 하지만 전성기가 지난 나이에 부상까지 겹친 상태로 산소가 부족한 멕시코 고산지대를 달리던 그는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선두권에서 점차 밀리다가 결국 17km에서 중도 포기를 하고 맙니다.
반환점 1위에도 불구하고 중도 기권한 아베베의 정신상태를 비난하는 여론이 끓었지만 아베베는 나름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다함으로써 같이 달리던 동료 마모 웰데(Mamo Wolde)의 우승에 기여했고, 이로써 에티오피아는 마라톤 3연패를 달성한 최초의 국가가 됐죠.
절치부심한 아베베는 옛 영광을 회복하려 했지만 이듬해 찾아온 교통사고는 그의 경추를 부수고 척추를 손상시키며 하반신 장애인으로 만듭니다. 황제의 하사품인 폴크스바겐 자동차로 달리다 일어난 사고였죠.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재활을 하며 펜싱, 탁구, 양궁 등을 익히며 장애인 선수로 활동하며 메달도 땄으나 패럴림픽 금메달 수상이라는 일부 소문과는 다르게 그의 메달수상은 크지 않은 몇몇 아마추어 대회였다고 하는군요.
1973년 또 한 번의 교통사고를 당한 아베베는 사고 후유증인 뇌출혈로 인해 41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고 맙니다. 국민영웅 아베베의 장례식에는 에티오피아 국민 6만 명 이상이 참석했고 맨발의 마라토너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베베의 사망을 애도했죠.
이후 아베베 비킬라의 생애를 소재로 한 영화 ‘애슬리트(The Athlete/육상선수)’가 2010년에 개봉되었고, 셀라시에 황제가 잠들어 있는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성 요셉 묘지에는 아베베와 함께 멕시코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마모 웰데 선수의 동상이 세워져 두 마라톤 영웅의 전설을 기리고 있습니다.
역대 올림픽 마라톤 2연패 기록 보유자는 세 사람입니다.
1. 아베베 비킬라(에티오피아) / 1960 로마, 1964 도쿄
2. 발테마어 치르핀스키(독일) / 1976 몬트리올, 1980 모스크바
3. 엘리우드 킵초게(케냐) / 2016 리우, 2021 도쿄
위 기록 보유자 중에서 연이어 세계기록을 경신한 사람은 아베베가 유일하다니 생각할수록 더욱 대단한 사람입니다.
이상으로 우선 남자 마라토너에만 국한해 올림픽 마라톤 경기와 에티오피아 출신의 전설이자 ‘맨발의 기관차’ 아베베 비킬라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 보았습니다.
재미있으셨다면 추천과 구독, 알람설정.... 은 유튜브가 아니라 필요 없군요.ㅎ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양복입은 아베베 사진도 있고...귀한 사진 보게해주시어 감사 드립니다.
소싯적에 아베베가 최곤줄 알았지요..
양복입은 아베베 주머니에 만년필이 꽂혔네요.
우리 젊었을 때 유행을 다시 봅니다.
그럼요. 맨발의 폭주기관차라고 하여 초등학교 때 선생님들에게 아베베 이름을 엄청 들었죠.
저는 아디스 아바바가 아베베의 이름을 따서 수도 이름을 지은 걸로 생각했다니까요?ㅎ
셀라시에 1세는 국제적 평가가 좋은 사람이었는데 육군소령 멩기스투라는 놈이 군란을 일으켜
제정을 폐지하고 공산주의 정권을 수립했는데 이 놈도 나중에 역반란을 당해 쫓겨났죠.
길 가다 주운 걸 귀한 사진이라고 하시니 정말 귀한 사진으로 보이는군요.
일단 100원부터 시작해 봅니다.ㅎ
@김붕래
중, 고교 때 입던 교복의 가슴 주머니에 꽂혀 반짝반짝 빛을 내던 만년필은
당시의 로망이었습니다. 왠지 있어보였잖습니까?ㅎ
시간이 지나면 다 소용이 없는데 이따금 학교 교문에 007 가방을 들고 나타나
우리를 유혹하는 만년필 장수들을 기억하자니 빙그레 웃음도 납니다.
그 때 가방 안에 가득한 빛나는 만년필은 참 가지고 싶은 물건이었습니다.
세계의 정상들은 지금도 양국 문서에 서명할 때 대부분 만년필을 쓴다는군요.
펜촉에 빠이롯드 잉크를 찍어 쓰다가 그걸 엎어서 책이고 노트가 죄다 엉망이 되고...
선생님 덕분에 즐거운 추억에 젖어보면서 혼자 웃습니다.ㅎ
공부 잘 했습니다.
맨발의 아베베 - 젊은시절 회자했던 해외토픽이었습니다.
한국전 참전 용사라니 더욱 반갑습니다.
맹장 수술의 후유증을 딛고 2시간 12분 11초의 기록을 세웠다니 진정 인간승리입니다.
우리 황영조 선수의 바로셀로나 올림픽 기록을 찾아보니 2시간 13분 23초 -
대한민국도 무한한 가능성의 나라라는 생각을 합니다
선생님같은 분이 공부 잘 하셨다니시 당치 않으십니다.ㅎ
기성세대들 중에서 아베베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마라톤 신기록은 나날이 줄어들고, 비공인이지만 킵초게는 1시간 59분 몇 초를 기록했다는군요.
2시간 벽이 드디어 무너졌다는 충격에 아프리카를 제외한 많은 국가들은
마라톤을 계속 해야 하나 하는 고민에 빠졌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케냐 출신의 귀화 마라토너 오주한이 도쿄올림픽에서 부상으로 기권한 사실이 애석합니다만
우리나라도 손기정, 황영조, 이봉주와 같은 인물들이 있었으니
좋은 후예들이 나와 국위를 선양하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밤새며 올리신 올림픽 영웅 아베베 자료 잘 보았습니다 아무래도 최선생님 수면사이클에 문제가 생기셨다니 관악산 걷기나 동네주변을 산책하시면 좋을듯해요 아베베가 걸어온 선수로서의 삶은 인간의지의 승리로 사고로 다리를 잃었을때 그 절망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군인정신도 큰 위로가 됐을듯 그도 사후에 하늘의 별자리가 되지않았을까 생각되어요
황실 근위병 출신이었던 아베베는 황제 실각 1년 전에 죽었습니다.
멕시코 올림픽 때 금메달을 딴 마모 웰데는 공산쿠데타를 일으켜 황제를 몰아내고
국민을 학살한 멩기스투 정부의 소속 군인이었기에
멩기스투 정권을 붕괴시킨 차기 군사정권에 의해 국민 학살죄를 쓰고
세계의 석방운동에도 불구하고 9년간 복역하다 출옥 6개월만에 간암으로 사망합니다.
암튼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게 정말 징글징글 합니다. 자기나라 국민을 죽이는 개들이죠.
마라톤 영웅이었다가 하반신을 잃은 사람이 재활로 장애인 스포츠 종목에 나선다는 의지는
정말 기가 막힌 것이지만 그런 꼴 안 보고 죽은 아베베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요?
우리 지기님께서 아베베 별자리를 하나 정해 주시면 어떠실지..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