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종교의
요구에 응한 적이
없다
(연중제22주일2024.9,1강론)
신명4:1-2, 6-8; 야고1:17-18, 21-22, 27; 마르 7:1-8 14-15, 21-23
법에 대한 다양한 태도는 여러 가지
다른 문화권에서 발견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개신교의
영향으로 법에 일종의 신성함을
부여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법이 원래 하느님의
뜻의 발현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반면, 아일랜드 문화권은
역사적인 이유로 법에 대한
태도가 매우 다릅니다.
그 이유는 아일랜드는 수백 년
동안 영국에 의해 점령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일랜드 사람들은
결코 영국 법을 자신들의 법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영국의 점령기간 동안, 법의 위반은
벗어날 수만 있다면 상당히 용인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을 가진 아일랜드
사람들은 현재까지도 법에 대해
매우 완화된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대부분의 사소한 법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무단횡단으로 체포될
수 있다는 생각은 아일랜드
사람들에게는 어이없기가 완전히
믿을 수 없을 정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문화적 태도는 법이
어떻게 해석되는 지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법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 지에 대한
반응이 나타납니다.
몇 년 전에 미국의 한 대법원
판사는 몇몇 법들이 사람들에게
잔인하고 부당하게 긴 처벌을
가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법들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며, 한 때 좋았던
몇몇 법들은 이제 더 이상 그렇지
못하게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정의의 목적에 필연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법률이 있습니다.
– 즉 그러한 법률은 정의의 목적에
도움이 되는 대신에 오히려 정의의
목적을 훼손시키고 무자비한 복수를
하게 해 주는 법률이 바로 그런
법률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런 법의
문제와 그런 문제들이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 지와 관련하여
제1독서 말씀과 복음 말씀 사이에
흥미로운 충돌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러한 말씀들은 매우 다른 역사적
상황에서 야기된 말씀들입니다.
신명기는 마지막 편집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엮어진
내용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빌론으로 귀양을 가서 살고 있다가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을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신명기는 이스라엘의 법과 전통을
상기시키고 백성들을 건실한 믿음으로
다시 불러내기 위해 편찬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타국에서 하나의
민족으로 계속 존재하고,
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에도
그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명기의 내용은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신명기는 이스라엘의 법과
전통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며 백성들의 신중한 복종을
최고의 지혜로 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방금 들은 복음 말씀은
아주 다른 시대에서 온 말씀입니다.
– 즉 신명기 시대에서500년 이상이
지난 후대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500년이라는 세월 동안, 신명기의
말씀은 국민의 지도자들에 의해
국민의 마음 속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국민들은 모세의 율법을 충실히
지키는 것이 이스라엘 하느님을
숭배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수적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였습니다.
국민의 지도자들은 율법을 완전히
준수하도록 보장하기 위해 소위
그 사람들이 말하는 “율법 주변의
울타리”라고 불리는 수백 가지의
추가적인 규정들을 추가하여
백성들에게 부과시켰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이 규정을
준수한다면, 지도자들은 그들이
실제로 율법을 어기는 것에
가까워지기 조차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문화에서, 충실한 유대인은
이 모든 율법을 철저하게 준수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규정들은
실제로 지켜져야 할 율법의 정신을
손상시키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모든 율법에 부과된
세부규정 까지를 다 지키는 일에
너무 집중하게 된 나머지, 하나의
참된 하느님께 대한 마음을 돌리려는
율법의 본래의 정신을 잃어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중요한 일을
잊어버리고, 율법만을 주의 깊게
준수하는 것이 마음의 종교를
대체하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런 일이 어떻게 전개되어 가게
되었는지를 알아보는 일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오늘의 복음 말씀을
통하여 열거해 주신 사악한 사상,
불결한 행동, 절도, 살인, 간통,
탐욕, 적대감, 시기심, 오만 등을
다루는 것보다, 성전 세금을 내고
안식일과 대축일 같은 것들은
지키고, 돼지고기와 다른 특정
음식을 먹는 것을 피하는 것이
훨씬 더 쉬운 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준수하는 것이
마음의 종교를 덜 부담 스럽게
대체하는 것으로 서서히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별로 많이 달라지지는 않았다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의 욕망, 야망, 욕심, 열정,
복수심에 대한 갈증을 훈육하는
것이, 이를 테면, 교통 법규를
준수하거나 심지어 정기적으로
성당에 나오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여전히
사실입니다.
순전히 외부적이기만 한 종교에
대한 예수님의 격노하신 공격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예수께서는 순전히 외부적이기만
한 종교를 위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
자신과 우리 자신의 태도를 반성해
보도록 우리에게 도전장을 던져
주시는 말씀입니다.
실질적인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종교가 요구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일이 잘 진행되는
한 충실한 그리스도교 교인인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상실감이나
불의 또는 부상을 겪자마자 즉시
복음 말씀이 창밖으로 내던져지고,
그런 사람들은 매우 다른 사람들로
급변해 버리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듣고 있는 이 복음 말씀은
우리 모두 앞에 커다란 거울을 들어서
비쳐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정직하다면, 우리는
기꺼이 예수님의 요구하시는 것에
전혀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인정한다고 해서
우리가 포기하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축제 지내려는
이 성체성사는 우리의 여정을 위한
음식입니다. – 즉, 성체성사는
우리가 변화하고 싶어한다면 우리는
그렇게 할 수가 있으며, 그 여정에서
주님은 항상 우리를 지탱해주시고
감화시켜 주시기 위해 우리의 여정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첫댓글 아멘.아멘
우리의 여정중에 함께 ~~
감사합니다
+ 아멘~~~~~🙏
감사 합니다
응원합니다 ♡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더위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네요
건강 조심하십시오
예마음에예수님부르심에종교로드러가고보니하느님과예수님계시고내마음에미듬이내가하느님을민고기도하니항상하느님예수님저에각가이계셔요감사합니다축복받드셔요,(미소)(최고)
신부님 감사합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편안한 저녁시간 되셔요♡♡♡
찬미예수님!
아멘.🙏
공감되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시기ㆍ질투ㆍ게으름. 욕망을 다스리는 것이 법을 지키는 것보다 때론 어렵습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늘감사합니다 오늘도주님과함께건강하시고행복하세요
🌈복음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말씀과 묵상과 기도 [8월31일]
📖말씀: 마태 25,29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 묵상
회개는 행동을 바꾸는 것입니다. 신앙인이 된 이후 무엇을 바꾸었습니까?
최소한 세 가지는 바꿔야 합니다. 첫째, 좋은 말만 하기. 하느님은 뒷담화, 비판, 단죄, 화내는 모습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둘째, 행동을 바꾸기. 하느님이 기뻐하실 수 없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나태'입니다. 기도는 바빠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셋째, 가치관을 바꾸기. 돈 버는것, 건강, 자녀를 잘 키우는 것이 삶의 최종 목표인 분들은 참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신앙인의 최종 목표는 그리스도입니다.
🕯나의 기도
충만함의 전부이신 주여, 당신을 통하여 거룩한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완전한 사랑이신 당신을 향하여 나아가게 하소서.
💒실천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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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화발전소
찬미예수님 (하트)
신부님! 감사합니다.🙏❤
🌈복음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말씀과 묵상과 기도 [9월1일]
📖말씀:야고보서 1,27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깨끗하고 흠 없는 신심은, 어려움을 겪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아 주고,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 묵상
'하느님의 말씀으로 용서와 자비를 실천하자'는 말은 결국 "내가 하느님 말씀 안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살펴보자"는 말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나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용서 받았다는 것을 알기에 타인을 용서할 수 있고,
하느님으로부터 자비를 입었다는 것을 알기에 자비를 베풀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 사랑, 은총을 얼마나 많이 받았습니까? 살아온 날만큼 받았습니다. 이 사실을 안다면 나누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도
주님, 저의 완고함과 냉정함에서 행동을 바꿀 수 있게 저를 도우소서. 저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당신은 당신의 예정을 원하는 대로 펼치소서.
💒실천해보기
•자비를 베풀기
♧복음화발전소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