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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무곡 청소년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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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배우며 학기말 마무리 글: 일상과 끌질
이재혁 추천 0 조회 71 24.05.01 22:36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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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4.05.26 13:09

    첫댓글 나에게 끌질은 멋 부리지 않는 법을 알려 주었다.
    나는 어떤 일을 하든 성과가 눈에 보이는 일을 좋아했다. 눈에 보이는 성과만큼 더 열심히 할 수 있었고 그 모습을 봐 준 사람들의 칭찬을 먹어 가며 살아갔다. 내가 한참 공방을 다닐 때도 그러했다. 오픈 시간에 가서 마감 때까지 하루 종일 있었던 이유도 내가 열심히 하는 만큼 내 결과물이 빨리 나오기 때문에 오랜 시간 앉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이고, 같은 회원분들이 한마디씩 던지는 "어린 나이에 기특하네"라던가 "엄마를 위해 가구를 만든다니 기특하다"라는 칭찬 덕에 에너지를 낼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내게 끌질은 너무나 재미없었다. 아무리 오랜 시간 앉아 있어도 눈에 보이는 성과도 없고 자극적이고 역동적인 몸동작도 없었기에 단순히 반복되는 망치로 끌을 뚜드리는 작업은 내게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타이틀 때문이었다. "애 중 가장 빨리 작업물을 만든 사람", "애 중에 가장 오랜 시간 앉아 있는 사람" 이런 나만의 경기에 푹 빠져 있었기에 하기 싫은 끌질도 꾹 참고 했다. 하지만 결국 일이 났다. 나는 통나무에 구멍을 뚫어서 그 안에 전구를 넣어 가로등을 만들고 싶었는데, 거의 다 뚫을 때

  • 24.05.26 13:10

    즈음 머리 쪽과 몸통 쪽이 쪼개졌다. 처음 계산을 잘못해서 너무 얇게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그렇기에 끌질을 하는 도중 욕심을 내다 가뜩이나 얇은 벽과 머리가 쪼개지는 상황이 생겼다. 맨틀이 나가 버릴 것 같았다. 멋진 모습과 잘 만든 결과물을 원한 나에게 오점이 생겨 버린 것이다. 그래서 깨져 버린 나무 조각을 놓지 못하고 목공풀로 붙여 가며 계속 진행했다.

    결국은 앞뒤로 통나무를 뻥 뚫어 버렸고 달성했다는 정복감에 취해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나가는 현곡이 눈에 보여 급히 자랑하였고, 내 결과물을 보시곤 청천벽력 같은 말을 내뱉으셨다. "이거 못 써" 이 말 한마디에 내 온갖 시간과 노력이 무너지는 듯했다. 원래 목표는 구멍을 하나 더 뚫을 예정이었지만 현곡의 그 한마디에 다 무너지고, 하기 싫었다. 내가 원하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굴욕감과 온갖 정성이 무너지는 듯한 무기력을 느끼고 한참을 끌질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다시 끌질 작업을 하게 되었다. 당연히 나는 할 맛도 안 나고 마음도 안 움직였다. 첫날부터 10 분도 안 지나서는 실증이 나 수영을 하러 갔다.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깔짝깔짝 건들고 방에 가서 낮잠을

  • 24.05.26 13:11

    잔다던가 더욱 맛있는 도파민을 찾아 떠났다.

    그렇게 5 일이 지나가고 다시 통나무 앞에 앉았다. 여전히 조금만 하고 도망갔지만, 방에 누워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끌질은 해 본 적이 있을까?" 그 물음이 번뜩였고 다시 통나무 앞에 앉아 끌질을 시작했다. 빨리 성과를 내야겠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오로지 끌질 동작 하나하나 느껴 봤다. 아주 잠깐이지만 반복되는 동작에서 오는 편안함을 느꼈다. 그러고 옆에 보이는 실패작을 봐도 아무렇지 않았다. 끌질을 하려고 통나무를 골랐지, 남에게 보여 줄 통나무를 고른 게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끌질로 나무껍질을 벗겨내듯 내 몸의 껍질도 하나 벗겨 냈다. 끌질을 통해 나는 어떤 행위를 하든 그 행위를 수단이나 남의 시선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닌 그 행위 자체를 듣고, 보고, 맛보고, 느껴야 한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끌질을 통해 겉멋을 날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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