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올해 들어 처음으로 백패킹을 올라갔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고, 계절이 풀리고, 날씨가 따뜻해 짐에 따라 온전히 문명의 품속에서 벗어나 자연에서의 삶을 영위할 만한 때가 온 것이었다. 화창한 날씨, 거센 바람이 항시 불어오는 푸릇푸릇한 공간, 폐 밑바닥까지 숨을 들이쉬어도 마음의 평화에 전혀 흠이 가질 않는 맑은 공기를 맡으며, 바뀐 배움의 터를 받아들이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마침 산에서 받은 이번 백패킹의 주제는 숨과 쉼이었다.
나는 여태 삶을 살아오며 숨을 쉬다 할 때에 쉼이 평소 일상에서 사용하던 쉼과 동의어인 줄 몰랐다. 아니, 정확히는 단어에 대하여 그리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말이 더 알맞을 것이다. 그러니 이번에 산을 올라서 현곡께 숨과 쉼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삶에 녹아있는 너무나 당연하다시피 느껴지는 부분에 대한 소소한 자각을 가지게 됐다. 마치 바쁜 삶을 살다 보면, 스스로가 숨을 쉬고 있는지조차 까먹고 살게 되는 것처럼. 내가 가지고 있던 당연함이라는 관념 뒤에 숨겨진 소소한 진실을 마주해 보았다.
숨을 쉬다. 이 말을 듣고 가장 먼저 생각났던 것은 삼무곡에서 매일 아침 명상을 할 때에 듣는 박석 교수님의 잠시라도 숨 고르고라는 노래 가사였다. ‘숨가쁜 생활 속에 나를 잃고 살아가죠. 잠시라도 숨 고르고 나를 한 번 느껴봐요.’ 내가 의식하지 않는다면 알 수 없지만, 언제 어느 때나 잠시 앞으로만 뻗어 나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내면으로 들어가 보면 들을 수 있는 나의 숨소리. 그렇기에 어찌 보면 나의 삶 속에서 가장 당연한 부분으로 생각되고 잊혀 질 수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잠시 쉬어간다는 뜻으로 숨을 쉰다라는 단어의 조합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을까. 마치 내가 누군지,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자각을 잃지 말라는 경각심을 심어주겠다는 뜻이 내포되어있는 것만 같았다.
민혁이 형과는 이제 1년을 넘게 봐온 사이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아직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대화를 나누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왜냐하면 개인적으로 민혁이 형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마치 내가 부정당하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기 때문이었다. 너무나도 뚜렷하고 선명하게 자신의 삶에 대한 주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민혁이 형의 모습은 나에게 때론 강한 동기부여가 될 때도 있지만, 반대로 피곤하고 만사 짜증 나게 하는 부분도 가지고 있었다. 마치 너무나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민혁이 형의 세계관에 나를 이루는 것들이, 내 스스로 나라 생각하고 자부심 가진 부분들이 제멋대로 재단되고 오려지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 보니 민혁이 형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냥 대화 자체를 점차 기피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물론 민혁이 형 입장에서는 그런 내가 참 답답했겠지만, 굳이 대화를 이어가서 내게 득이 될 게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니 말을 더 잇지를 않았었다.
그러던 와중, 이번 백패킹 첫날 저녁, 다 같이 모여 밥을 먹던 와중에도 민혁이 형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내게는 똑같이 피곤하고 불편한 감정들이 치솟았고, 굳이 대화를 이어가기 싫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그러나 민혁이 형 또한 본인 생각을 숨기는 성향이 아니다 보니, 내가 자꾸 할 말을 삼키는 것에 대하여 솔직한 불편함을 과감하게 표현해 왔다. 나는 자꾸만 민혁이 형의 페이스에 휘말리고 얽매여서 내가 나를 잃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걸 몹시 싫어했지만, 그래도 꾹 참고 대화를 이어 나가 보았다. 인연의 끈을 내 쪽에서 먼저 끊어내려 하지 않고, 적당한 구실들을 가져다 대 이유를 정당화 하여, 그냥 하기 싫을 뿐인 것들을 위선적으로 끊어내지 않았다. 그렇게 저녁 식사를 마치고 민혁이 형과 둘이 산책을 다녀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능한 가만히 민혁이 형의 이야기들을 들으려고 노력했다. 누군가에게는 나의 이러한 노력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일 수 있겠지만, 내게는 그저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짧은 대답을 꺼내는 것 만으로도 몹시 버거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여태 내가 가지고 있던 세계관과 맞지 않는 것들을 납득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러한 부분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대화가 어느 정도 이어질 때 즈음 부터는 더 이상 귀로 민혁이 형의 말을 듣지 않게 됐다. 이제 와 여기에 그날 민혁이 형에게 들었던 말을 적으라고 한다면, 나는 아마 그 절반도 적지 못할 것이다. 그저 번잡하게 어질러져 있는 문장의 맥락을 젖혀 두고, 그 뒤에 있던 민혁이 형의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만을 들었다. 말이 아니라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소리. 이에 나 또한 감응하고 보니 한참 동안 눈물이 미친 듯 쏟아져 내렸다. 세상에서 가장 먼 존재들이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한순간 안에, 시공간적으로 같은 자리에 있기 위해서 얼마나 거대한 운명적 흐름이, 기적이 있어야 가능한 일인가. 사실 또 해보라 해도 힘들 거 같다. 내가 붙잡고 놓지 않던 집착을 내려놓고 온전한 나의 모습을 띤 채 남을 마주한다는 건, 아무래도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그래도 정말 값진 경험이었다고 생각 되어진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 말이 아닌 몸으로 경험했던 순간이었기에 아직도 그때 내 마음은 선명히 기억에 남아있다.
이번에 백패킹을 올라가 진행했던 프로젝트 중 가장 큰 줄기였던 것은 바로 나무에 둘레석을 쌓는 일이었다. 나무를 하나 골라 그 주위로 돌을 쌓아 나만의 작은 정원을 만들어 내는 일, 누군가 앉아서 책을 읽거나 대화를 나눌 수도 있는 삶이 이루이질 자리를 만드는 일이었다. 본래 숨 쉬는 집이 위치한 층 중앙의 나무 두 그루 주변으로 크게 둘레석을 두르는 것이 메인 프로젝트였지만, 나와 동혁이는 개별적으로 자신만의 나무를 골라 독립적인 정원을 하나 만들었다.
전에 돌을 쌓았던 경험이라고는 학교 본관 앞 작은 정원을 꾸밀 때 쌓은 짧은 길이의 둘레석이 전부. 그랬기에 이번에도 개인적으로 내 이름 걸고 만드는 둘레석을 과연 잘 쌓을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그러나 막상 시작하고 보니, 의외로 내 상상보다 더 일의 진행이 원활했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돌이 척척 쌓이고, 부족한 부분들도 그에 알맞는 노력으로 보완이 가능했다. 한 마디로, 정말 일이 일답게 잘 굴러갔다. 그렇다 보니 또 재미가 들리기 시작했고, 내가 제대로 된 하나의 일을 수행하는 것만 같은 기이 들었다. 마치 내가 이 일을 통하여, 이 창조의 과정을 통하여 의미 있는 존재로 거듭나는 것만 같은 느낌. 나라는 존재가 마치 이 일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은 그 모든 감각이 이 일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나는 누구인가. 이에 대한 대답으로 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고, 어떻게 생각하고, 그에 대하여 이렇게 쌓고, 붓고, 만들어 내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러니 남들이 쉬거나 다른 일을 할 때에도 나는 홀로 나의 일을 할 수 있었다. 남들이 어떠한 페이스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지에 개의치 않고, 내가 지금 하는 이 일에서 스스로의 삶에 의미를 찾아내고 온전히 잘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무엇을 재미있어하고, 무엇에 의미를 두고 살아가는지. 이는 정말 중요한 가치라는 생각이 들어 진다. 나라는 전 존재를 단 하나의 일로 대변해 말 할 수 있는가? 나는 오로지 이 하나의 일을 수행할 수 있음으로 만족할 수 있는가? 그러한 천성, 천직을 찾지 못 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다른 어딘가에서 가치를 찾고자 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 여기, 이곳에 가치를 두는 사람은 인생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어느 쪽에 속하는 사람인가. 진심으로 지금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인가? 둘레석을 쌓는 일은 우연히 상황이 맞아떨어졌기에 즐기며 할 수 있었던 것이지, 삶을 살아가다 보면 내가 마주하고 싶지 않는 순간들도 허다하게 마주하게 되어있다. 그런 순간들을 나는 어떠한 방식으로, 무엇으로서 살아낼 것인가. 내가 의미 두고 사랑하는 것들을 떠올리며, 현재에 가치를 두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을 기꺼이 수행해 낼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한 번 던져보며, 이번에는 그저 내 마음에 드는 나만의 작은 정원을 하나 완성한 것으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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