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안보에서 1박을 하고 아침,
엄마와 큰올케와 함께 호텔 안에 있는 온천을 다녀온 후,
다같이 아침먹으러 나가서...
머리 속으로만 그토록 먹고싶어했던 올갱이 해장국을 먹었습니다.
어려서 외갓집에 가면 해질녘에 동네 개울에 바가지 한 개씩 끼고 나가
할머니랑 같이 올갱이를 잡았어요.
그러면 할머니께서 된장 풀어넣고 삶아서 한바가지 던져 주시면
바늘을 들고 쏙쏙 올갱이를 뺐죠.
한 다섯개 빼면 하나는 입으로 쏘옥~ 들어가고
그렇게 한 대접 만들어 드리면
할머니께서 담그신 맛있는 된장으로 저런 올갱이 국을 끓여주셨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고, 거기에 열무김치 얹어서 쓱쓱..
입에 침 고입니다.
올갱이국 너무너무 먹고 싶어요.
그날 절반은 올갱이해장국, 절반은 이 해장국을 시켜 먹었습니다.
한국 다녀온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저 그림이 저를 무척 괴롭게 하네요.
아침을 먹고 있는데, 청주 고모부님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그냥 보내기 서운하셔서 청주에서 수안보로 오셔서 밥이라도 한끼 사 먹이고 보내고 싶으시다고요.
고모와 고모부께서 그렇게 멀리서 수안보로 와주셨어요.
고모부님과 함께 간 곳은 문경새재입니다.
날씨는 뭐, 여전히..
아주.. 그냥..
문경새재 이 곳에서 드라마나 영화 촬영을 한다고 합니다. 셋트장이에요.
곤장 백대를 치렸다!!
고운아빠의 리얼한 표정에 다들 크게 웃었습니다.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느냐.
당장 주리를 틀거라.
나무만 보면 폴짝 올라가는 고운이를 따라 온 가족이 돌아가면서 올라가는데
본인이 무척 요염하다고 생각하는 저 자태를 보는데 사진 찍어주기 싫은 강한 충동이...
같이 살았다면 둘이서 가까운 자매로 지냈을텐데
유진이와 고운이, 말없는 성격도 비슷.. 생긴 것도 비슷..
도대체 누굴 닮아 말이 없는 건지 도통 이해가 안갑니다.
너무너무너무 귀여워서 볼 때마다 자꾸 주무르고 싶어지게 하는 영헌이에요.
사진 앞줄 왼쪽에 계신 분이 고모부시고,
사진 앞줄 오른쪽에 계신 분이 우리 고모세요.
우리 고모와 찍은 오래된 사진 한장 찾았습니다.
엄마께서는 언제나 "이 세상에서 너희 고모만큼 착한 사람은 세상에 없다"고 늘 말씀하셨어요.
고모가 저 아주 어릴 때 뜨게질해서 주신 벙어리장갑을 엄마가 고이 간직하시다가
몇년전 미국 오면서 가져오셨고, 그걸 저도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고운이가 끼기에는 너무 늦었고 나중에 손녀딸 끼게 해야겠어요.
위 사진을 보고 고운이가 자기 키가 크게 나왔다고 몹시 좋아했었습니다.
샘이는 여기 다녀온 이후로 우리가 옛날에 살았으면 양반 맞냐고 계속 묻습니다.
고모께서 뜨끈뜨끈하게 막 찌어오신 옥수수로 그날 얼마나 잘 먹었는지 모릅니다.
그날 고모부께서 더덕구이 정식을 사주셨는데,
저는 그날 이 더덕구이를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몰라요.
정말 맛있었습니다.
우리 영헌이가 한국 떠나오기 전날 제게 조용히 와서는
"고모는 왜 미국 살아요?" 묻던 것이 찡하게 남습니다.
그러게나 말이다... 나도 잘 모르겠네...
우리는 다시 숙소로 돌아왔고,
고모와 고모부께서는 청주로 돌아가셨습니다.
미국 가져가라고 고춧가루와 참깨도 주셔서 지금 냉장고에 잘 넣어두었어요.
두고두고 맛있게 잘 먹을께요, 고모..
장안동 집 이사하느라 고생을 많이 하신데다가
폭염에 많이 힘들어하셨던 아버지는 숙소에 남으시고,
큰동생네 식구들은 직장과 이사, 또 유진이의 자원봉사 때문에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남은 식구들은 다시 차를 몰고
월악산 미륵사지 터로 갔습니다.
이곳은 저희의 신혼여행지 중 한 곳이었거든요
저희는 신혼여행을 어디로 갔냐면요,
차를 가지고 설악산, 충주호, 수안보, 속리산을 거쳐 마지막은 조실 외갓집에서 마무리하고 서울로 갔었습니다.
신혼여행을 그런 식으로 했던 탓일까요,
우리 가족은 차 가지고 정처없이 돌아다니는 것을 너무나도 좋아합니다.
저희 애들은 리조트나 휴양지 같은 여행은 가본적도 없지만 앞으로도 가기 싫다고 하면서
어진이는 특히 여행지 선정할 때마다 "경치 좋은" 곳 가자고 합니다.
취향이 아주 노년스럽다고 해야 하나요
미국내 여행을 가면 어딜 가도 어진이는 항상 그 지역의 나무들이 어떻게 다른지 늘 언급하곤 합니다.
여기서 잠깐,
우리 부부가 95년 신혼여행 가서 찍었던 사진을 올릴께요~~ 잠시만요.
지하 가서 사진도 찾아야 하고..
이것 말고 또 있는데 당장 이것만 눈에 보이네요.
하~~ 웃기네요.
나름 커플티라고 입고 저 화려한 반바지하며..
날이 너무 더워서 더 이상 돌아다니는 것은 힘들 것 같아 다시 숙소로 갔습니다.
그리고 좀 쉬다가 온천을 한번 더 했던 것 같고(더위 먹었었나 기억이 안 나네요)
그 다음에는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하도 옥수수를 많이 먹어서 식욕이 별로 없어서
식사를 할 사람은 식당에서 식사를 좀 하고 오고
남은 식구들은 양념치킨, 순대, 과자 등을 사다가 숙소에서 먹고 놀았어요.
그렇게 두번째 밤을 다같이 보내고 잘~~ 잤습니다.
(다음에 계속)
첫댓글 우리 고모는 정말 천사시지. 매형하고 누나하고 저게 언제때 사진이여? 결혼 전?
신혼여행 사진이라니까~~
무엇보다 엄마 아빠 고향을 찾아 친지들을 만나 함께 했던게 가장 귀한 시간이었네~
또 이렇게 자상하게 후기까지 남겨주니
먼훗날까지 더욱더 오래 오래 기억에 남을거야 보는 우리들도 즐겁게 감상하고 있네~
네, 20일간의 여정에서 단 하루도 버릴 것이 없게 너무 잘 지내다 와서 여운이 크네요. 틈날 때마다 글 올릴께요
우리가 옛날에 살았으면 양반이었냐는 질문은 조영후씨가 정말 많이도 했던 질문이었는데^^..아이들은 생각이 비슷한가봅니다.^^ 영헌이는 어제도 저에게 와서 절 이해시키듯 이야기 해주더라고요. "엄마, 미국고모는 고모부가 미국에 있는 병원에서 일해서 거기서 사는거래." 고모가 한명인데도 영헌이는 미국고모라고 하는게 미국이 너무 멀게 느껴지나봅니다. 영헌이가 고운, 어진, 샘이를 벌써 보고싶어하네요.
영후는 똑똑하면서도 속이 참 깊고, 영헌이도 사려깊은 귀염둥이로 잘 자라고 있더라. 공항에 나와서 마지막 인사하는 두 녀석 사진을 볼 때마다 뭉클해. 미국 고모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있어~~~
월악산 미륵사지터는 제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는 곳입니다. 사진에서처럼 신혼여행때 갔던 곳인데 당시에는 주변에 아무 건물도 없었고 길가에 손수 채취해서 말린 나물을 파시던 동네 할머니만 몇 분 계셨습니다. 고등학생처럼 어린 몇 사람말고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상당했을 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불상과 탑, 석등만 남았지만 왠지 마음을 따스하게 해줬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우리 두사람 잘살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틀림없이 빌었을텐데 부처님의 신통력이 아직까지 발하는지 여지껏 잘 살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니, 매형인 나를 때리는 작은 처남의 얼굴이 너무 행복해 보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