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나서 다시 처음 장을 펴보았다.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갑니다.” 처음에 보았을 땐 아이러니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라...얼음골에서 허준 이야기와 작가의 부친을 떠올린 것처럼 내게도 그런 장소가 있는지 생각해 보다 어릴 적 살던 집의 마루턱이 문득 떠오른다. 봄이면 마당 한 가운데 자리 잡은 화단에서 연두빛이 물들고 나무에 새빨간 홍시가 떨어질랑 말랑 하면 하늘은 깊고도 깊어져 새하얀 구름만이 내 눈에 들어온다.
소광리의 소나무 숲에서 생각 없이 잘라내고 있는 소비만 하는 우리를 꾸짖는다. 자연에서 받을 것만 생각했던 우리 ... 정말이지 생각해 보면 우리는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다. 자연이야말로 인간의 모태인데 그렇게 셀 수 없이 주었는데 우리는 자연을 파괴하고 학대했다. 어느 순간 그것이 당연시 되어버린 지금의 현실이다.
역사를 배우는데 가장 어려웠던 점은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것 이였다.
사물도 위에서 본 것과 옆에서 본 형태가 다른 것처럼 역사 또한 그러하다. 반구정과 압구정을 통해 들려주었던 내용에선 그런 생각을 했다. 과거에 권신과 모신으로 명상이나 현상으로 칭해져 이름이 남아져 있던 황희와 한명회 그는 우리에게 당부하고 있다 정치란 사회의 잠재적 역량을 최대한으로 조직해내고 키우는 일이라고 선대가 해석한 역사는 그들이 심판한 것이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눈으로 그 차이를 헤아리는 것이라도 말이다.
그 중요성을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에서 다시 한번 거론한다. 어리고 어리기 만한 단종을 부와 권력을 탐하는데 이용해 결국은 유배와 죽음으로 몰아갔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의식적으로 머릿속에 틀어박힌 습관과 관념에 사로 잡혀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도 흰 도화지 위에 집을 그리라 하면 항상 사다리꼴 모양의 지붕을 먼저 그린다. 어찌 집을 지붕을 먼저 지을수 있겠는가? 정말로 가슴까지 느껴지는 말이었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능력이란 인간적 품성이 도외시된 “경쟁적 능력”이라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상대를 낙오와 좌절로 떨어뜨려 얻을수 있는만큼 무기임도 분명하다. 그럼 우리는 이 숨겨진 칼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것인가? 당신이 말했던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이고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라 일렀다. 하지만 세상은 신데렐라가 되길 원하는 사람보다 평강공주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변화를 가져다줌을 우린 알고 있다. 단지 편안함에 안도 하지 않고 조금은 불편함을 이겨내는 극기의 마음가짐이 중요한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