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주 동안 삼무곡에서는 스스로 학교 일정을 진행했다. 내 스스로 일과를 살아갈 일정을 짜고, 핵심적으로 단 하나의 일에 매달려 보며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얼마나 마음을 낼 수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 일종의 시험과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소설 집필을 이번 스스로 학교의 주제로 삼았고, 21일간 하나의 소설을 완성하겠다는 목표로 시작했다.
사실 나는 소설이라는 분야에 제대로 발을 들이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무작정 소설 한 편을 완성하겠다고 다짐했던 것은, 내 나름대로 소설과 친하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나와 같은 나이에 나와 같은 꿈을 품은 친구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자기는 웹소설 작가 되는 게 꿈이다. 그래서 왜냐고 물었더니, 그냥 본인이 재미있게 보고 인상적으로 읽은 게 웹소설이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 말이 워낙 인상적이고, 올바른 작가의 자세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 역시 그래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해 보니, 독자로서 대하는 소설과 작가로서 대하는 소설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우선 부딪히고 봐야만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간극이기도 했다. 나는 정말로, 소설을 쓰면서 고려해야 할 점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그냥 즉흥적인 에너지로, 마치 내가 독자로서 소설을 읽을 때 느끼는 이야기가 나고 내가 곧 이야기인 것 같은 몰아일체(物我一體)의 느낌대로 쓸 수 있을 줄 알았다. 실재로 여태껏 내가 글을 쓸 때는 그런 식으로 써왔으니까. 물론 21일간 소설을 쓰며 깨달은 바를 미리 말하자면, 이는 소설 역시도 마찬가지기는 마찬가지였다. 단지, 그와 동시에 생각해야 하는 것들이 좀 많을 뿐이었다.
새삼스럽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바로 광마회귀(狂魔回歸)라는 이야기이다. 내가 이 작품을 감상하며 자주 느낀 점을 두 가지 꼽아 보자면, 첫째는 ‘이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사랑하는구나.’하는 것이고 둘째는 ‘글이 정말 자유분방하다.’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작가가, 정말 즉흥적으로 글을 써나가는 줄 알았다. 글이 어디로 튈지 모르면서도 얽매이지 않는 향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는 마치 철저하게 계산되어 있는 이야기의 전개 위를, 다시 한번 독자의 자유분방한 마음가짐으로 채워나가는 것 같은 구상이었다.
나는 집필 과정에서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마다 광마회귀를 읽었는데, 새삼 다섯 번은 넘게 본 작품인데도 매번 감상을 달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유독 글의 작가인 유진성 작가가 어떠한 마음으로, 어떠한 의도로, 어떠한 심정으로 이 글을 이렇게 썼을지에 대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전에는 읽히지 않은 것들, 읽지 않은 방식. 이러한 부분은 광마회귀를 읽고 난 후 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느껴졌다. 작가의 버릇이 보이고, 내가 지금 처한 상황에서, 작가는 이런 식으로 글을 써 나갔겠구나 하는 것들이 느껴졌다. 새삼 글쟁이라는 말이 다르게 와닿는 기분이었다.
사실 내가 본격적으로 소설 집필을 시작할 수 있었던 건 스스로 학교 기간이 마지막 한 주 남았을 시점에서였다. 그전까지 나는 끊임없이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하며,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글을 써야 하는지를 직접 부딪혀 가며 익히고 있었다. 물론 당시에는 2주 동안 아무런 진전이 없는 듯한 스스로에게 회의감과 자괴감이 끊임없이 밀려왔다. 왜냐하면 글을 쓰다가도 잘 써지지 않으면 금방 자판을 놔버리는 경우가 더러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소설도 이야기의 한 갈래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나에대한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소설을 써나가는 대표적 도구인 창의력 역시 내가 보고 들은 경험을 기반으로 두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쓴 이야기가 아무리 현실에 기반했을지라도, 어떻게든 독립적인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현실과 허구 사이를 이어줄 구상이 필요했다. 이야기를 읽을 때는 굳이 신경쓸 필요 없는 사소한 부분들. 언뜻 자연스럽게 스쳐 지나갈 수 있는 부분들에도 작가로서 이야기를 대할 때는 일일이 신경 써야만 했다. 그러나 사소한 것들에 마음 빼았기고, 그것에 휘둘려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을 잃게 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아직 내 스스로 그런 이야기의 기틀이 되는 부분들을 대하는 자세를 못 잡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자세를 잡고, 이야기를 써나가는 마음의 정도(程度)를 잡는데 그 2주가 걸린 것이었다.
내가 이 2주를 통해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느낀 것들은 조급하지 말 것, 맡은 일에 충실할 것이라는 다짐이었다. 내가 쓴 이야기가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다시 한번 되새기는 마음에서 읽고, 스스로가 쓴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키우고, 그 과정에서 전에는 신경쓰지 못한 부분들을 신경쓰게 되었다. 결국, 나는 천재가 아니기 때문에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들을 모두 총괄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조급해지면 이야기가 금세 산으로 가버렸다. 그럴 때는 그저 덤덤한 마음가짐으로,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와 내가 쓴 이야기를 독자의 마음가짐으로 읽었다. 그러다 보면 전에 놓친게 눈에 들어오고, 내가 이해 못한 내 이야기 속 요소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하다. 언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처음에는 주인공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읽고, 두 번째는 조연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읽고, 세 번째는 엑스트라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읽게 된다고. 그러니 작가인 내가 미리 두 번, 세 번, 몇 번이든 먼저 보고 내가 읽은 걸 묘사해 놓아야 나중에 독자가 읽을 때 머무를 자리가 생기리라 생각했다. 언뜻 그런 마음가짐으로 글을 썼었다. 사실 내가 느끼기에도 나는 글을 쓰면서 생각을 워낙 많이해서, 그것들을 일일이 글로 옮기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저 전반적인 나의 마음가짐만을 이야기하자면, 그냥 내가 만들어 낸 이야기가 좋았다. 좋아하니 더 알고 싶고, 알고 싶으니 깊어지고, 깊어지니 선명해지고, 선명해진 만큼 더 넓게 펼쳐졌다. 그저 그런 마음만을 품은 채로, 다른 건 그리 중요시 여기지 않으며 그저 이야기를 적었다. 언뜻 보았을 때 기간 내에 완성할 수 없음을 깨달았으나, 그 사실에 조급할 것 없이 그저 내 페이스대로 글을 써 나가야 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므로 아직 내 글은 완성되지 않았다. 사실 여태 진행도를 봐서는 꽤 오래 걸릴 것 같다. 그래서 지금 내게는 사실상 21일짜리 하루는 끝났어도, 아직 스스로 학교는 끝나지 않은 셈이었다.
이렇게 나의 21일 간의 스스로 학교는 끝이 났다. 여러모로 느끼는 점도 많고, 배운 점도 많은 시간이었지만, 아무래도 나의 태도에 대하서는, 존중에 대해서는 그리 높은 점수를 줄 수 없었다. 내가 배운 것들에 대해서는 존중하는 마음이지만, 스스로 노력하지 못한 부분도 감안하여 나는 스스로에게 50점의 점수를 매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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