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보훈문에 일반부 최우수상
나뭇짐과 나비 / 이원도
다리를 저는 진철이의 책가방을
나비의 날개처럼 양어깨에 걸머지고
홰나무 골목길 앙감질하며 뛰어오던
골 안 언덕배기 참꽃가지 꺾어
진철이의 책가방에
두말없이 꽂아주던
복록이가 나뭇짐을 지고 온다.
날선 지게 멜빵이 초등학교 3년을 중퇴시켰지만
복록이는 한번도 멜빵을 탓하지 않았다.
모래바람을 헤치는 낙타의 굽은 등처럼
서럽게 번지는 지게바디가
가난의 등뼈를 갉아먹지만
머슴살이 복록이의 새경은 축내지 못했다.
복록이 나뭇짐에는 나비가 따라다녔다.
무게를 들어주려고 나뭇짐 근방을
풍선처럼 붕붕 떠다니는 나비
나도 나비가 갖고 싶다고
복록이를 졸랐더니
나뭇짐에 딸려온 참꽃가지를
내 책가방에 두말없이 꽂아주면서
―나비는 꽃을 따라 다닌단다.
집에 와 책가방을 펴면 복록이의 나비는
복록이를 따라가고
시든 꽃잎만 누에고치 허물처럼 말라 붙어있을 뿐
복록이는 나비 한 마리도 제 맘대로 내어주지 못하는 유약한 거짓말쟁이였다.
논산훈련소를 마치고 자대 배치 후 꽃을 찾아 떠난 나비처럼 우리는 까맣게 잊고 지냈다. 투이호아 본부PX에서 우연히 만났던 날 물 젖은 나비의 날개처럼 퉁퉁 불은 향수를 밤새 마셨고, PNE 현지기술자 모집광고를 달러처럼 펼쳐들고
우리 지원하자.
천대받으면 어떠랴 돈벌어서 고향 가자.
귀국박스에 전자제품 가득 채워 떵떵거리며 귀국하자.
암송아지 한 마리 사서 배내기도 치며
사래 긴 上南들 땅마지기 일구어놓고
보습 날에 걸린 노을을 멀미가 나도록 마시자.
그러나 복록이는 유행가 가사처럼가난해도 고향이 좋다면서
다시 머슴살이를 해도 동생들 공부 뒷바라지해야 한다면서
물소처럼 나의 건의를 윽박질러버리던
귀국특명 받은 고참병장 김복록
그로부터 우리 둘은 폐품창고에서 낙타의 전생이 인화된 캐멀담배를 꼬나물고
귀국박스를 채울 탄피, 전쟁의 원심력을 살의로 날려 보내고 시치미 뚝 떼고 평화롭게 누워있는 탄피, 손바닥 물집이 생기도록 저주의 망치질을 두드리며
나비가 득실거리는 갈비봉으로 가자.
그래, 참꽃 화들짝 핀 골안으로 가자.
그랬던 복록이는
내게 두 번째 거짓말을 했다.
대민 봉사 나간 고학력 신병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첨병부대 지원했던 복록이의 羽化登仙(우화등선)
―나비는 꽃을 따라다닌단다.
雨季(우계)의 정글엔 전령을 기다리는
눈물 그렁그렁한 종려나무 잎사귀들이
축 처진 날개를 붙이고 흐느낄 뿐
나비는 날지 않았다.
꽃이 없는데 나비가 올까봐서,
유월의 초가마을
박꽃 하얗게 기상나팔을 불어대면
진철이와 나는 고속도로의 검은 눈물을 닦으며
생애 37번째 동작동에 간다
(동작동 월남참전용사묘역 육군하사 金福祿을 기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