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세상의 모든 찌질이들에게 축복을, 비극을 전복하다. - 소설 '은교'
사랑의 욕망이 근본적으로 소유욕에 기반할 때, 그 결말의 대부분은 파국이라는 비극으로 끝난다. 이번 달 독서평은 강경으로 귀향한 박범신 작가의 은교였다. 사랑도 관계론, 혹은 존재론으로 승화될 때, 비로소 욕망의 코드는 부드럽고 선량한 것으로 순치되는 것은 아닐까? 흔히 물적 토대에 기반한 사랑은 소유론적 욕망을 필연적으로 야기한다. 소유적 개념은 언제나 이기성을 띠며 때론 폭력적이고, 일방적이며 상대를 자신의 의지를 수용하는 대상으로 의미를 가둔다. 그러기에 비윤리적이고 비이성적이며 부조리하다.
소유욕망이란 개별적이고 이기적이기에 그 욕망은 사악하고 날카롭고 통제불가능한 존재가 되지만, 최대한의 관계성을 존재의 본질로 동의하는 것이 관계론의 구성원리라고 수용한다면 '너 거기 있고, 나 여기 있는', 그러면서 대상들이 자유스러운 상태에서 상호 영혼의 교류를 통해 영적 결속감으로 충만해지는 상태가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행복의 본질도 같을 것이다. 이기적인 나만의 행복이란 이기성에 바탕하고 있는바 나만의 행복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 희생되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을 이해한다면 나의 행복은 누군가의 고통을 수반한다는 것은 아닌가?
이 소설에서 구원 역할은 온전히 은교의 차지다. 욕망이 도덕과 윤리적 틀을 벗어나지 않도록 통제하나 정작 자신의 주위를 결코 행복하게 하지 못하는 선천적 허무주의자 이적요나, 평생을 열등감 덩어리로 살아가는 이 시대 대부분의 열패자들을 대변하는 서지우. 이들에게 은교는 하나의 은총이자 생의 약동이다. 그러므로 비극적 죽음으로 끝나는 이 냄새나고 진부한 기성들을 생동하는 생명의 은교는 끝끝내 구원한다. 삶의 허망과 울증에 찌든 이적요와 스스로를 루저라고 자폐질하는 찌질이 서지우에게 은교는 존재의 이유이며 구원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