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하며 회개 기도를 드리는 이유
다니엘은 바빌론 땅에서도 결단하여 믿음을 지킨 덕분에 하느님과 동행하며 보통 사람들이 가지 않을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단식하고 자루옷을 두르고 재를 쓴 채, 기도와 간청으로 탄원하려고 주 하느님께 얼굴을 돌렸다."(다니 9,3)
기도는 우리 본성과 어긋납니다. 그래서 결심하고 결단해야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의 자리는 의지의 자리입니다. 다니엘이 단식하고 기도를 시작합니다. 단식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다는 뜻입니다. "사흘 굶으면 포도청의 담도 뛰어넘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자기 본성을 거스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단식하며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절박한 기도 지향을 놓고 기도합니다. 가족 문제, 사업 문제, 학업 문제를 놓고 단식하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나 나라와 민족의 죄악을 놓고 회개하며 기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크세르크세스 임금의 왕비가 된 에스테르가 민족의 위기 앞에 단식을 선언했습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이 함께 사흘간 단식하며 기도합니다. 물조차 마시지 않는 절대 단식을 합니다. 기도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의 인종 청소를 획책했던 하만이 오히려 교수대에 매달렸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런 기도를 드릴 때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단식하며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하느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기도의 사람들이 대신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야 합니다.
다니엘이 백성들을 대신하여 먼저 단식합니다. 자루옷을 두르고 재를 뒤집어씁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할 때 하는 행동입니다. 심할 때는 옷을 찢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다니엘의 결심을 귀히 보시고,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신자 한 분이 세례받은 다음 날부터 하느님께 나아가기로 마음먹고 새벽기도를 3년 만 해 보자고 결심했는데, 결국 그 결심을 지켰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그의 결심을 하느님께서 받아주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기도할 수 있었겠습니까? 기도는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다니엘이 단식하며 회개기도를 드리기로 결심합니다.
"나는 주 나의 하느님께 기도하고 죄를 고백하며 아뢰었다. '아, 주님! 위대하시고 경외로우신 하느님,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 계약과 자애를 지키시는 분.'"(다니 9,4)
다니엘에게 하느님은 "위대하시고 경외로우신 하느님"이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향한 경외감에 속속들이 젖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세상보다 크신 분입니다. 세상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너무 커서 우리 시야를 넘어선 존재와 너무 작아서 우리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존재입니다. 각각을 보려면 망원경과 현미경이 필요합니다. 인간은 꾸준히 더 크고 정밀한 기계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것 가지고도 볼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볼 수 있습니까? 믿음을 통해서만 볼 수 있습니다.
모세와 다윗은 하느님께서 누구신지 그분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뜻을 알고, 성품을 알았기에 주님의 성품에 호소하여 기도했습니다. 하느님이 누구이신지를 아는 것이야말로 기도의 출발점입니다. 위대하시고 경외로우신 하느님 앞에 나아가지 않으면 기도의 힘을 알 수 없습니다. 자신과 비슷한 존재 앞에서 기도해 봐야 무슨 힘을 경험하겠습니까? 무슨 경외심이 들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온 우주보다도 크시다는 사실을 모르기에 주님을 경외하지도 않고, 주님께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기도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큰 세상, 큰 우주를 보면서도 그보다 크신 하느님은 보질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