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에서 온 편지
- 헤르만 헤세
'귀하의 감동적인 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옥고는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면에는 약간 어울리지 않음을
무척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편집부에서 오는 이런 거절 편지가
거의 매일 날아온다. 문학잡지마다 등을 돌린다.
가을 내음이 풍겨 오지만, 이 보잘것없는 아들은
어디에도 고향이 없음을 분명히 안다.
그래서 목적 없이 혼자만을 위한 시를 써서
머리맡 탁자에 놓인 램프에게 읽어 준다.
아마 램프도 내 시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말없이 빛을 보내 준다. 그것만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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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납치하다』 중에서
- 류시화
인간의 창조 행위는 자연발생적인 영감에서 출발하지만 타인의 인정을 받을 때 기쁨은 배가된다. 그렇더라도 근원적인 기쁨은 어디까지나 자기 만족을 위한 것이다. 신춘문예 시즌이 다가오면, 혹은 그 시기가 아니더라도, 독자들로부터 자신이 쓴 시를 평가해 달라거나 시적 재능이 있는지 묻는 편지를 자주 받는다.
헤세의 시는 읽는 순간 수채화 같은 순수가 마음에 스민다. 십대에 이미 '시인이 아니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고 선언한 그가 출판사나 잡지사로부터 수없이 이런 거절 편지를 받았을 때의 기분이 어떠했을까? 돌아갈 고향이 없는 사람처럼 고독했을 것이다. 더구나 이 시를 쓸 당시 헤세는 50세였다. 그러나 왠지 그 고독감이 밝다. 인류 문학 최고의 반열에 오른 헤세에게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는 것이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헤르만 헤세는 전쟁 반대론자였기 때문에 독일의 군국주의 아래서 배신자, 매국노라는 지탄을 받고 모든 저서가 출판 금지되었다. 극심한 심적 고통으로 칼 융의 제자에게 정신분석 치료를 받기도 했다. 스물두 살에 시집 『낭만적인 노래들』과 산문집『자정 이후의 시간』으로 문단에 입문했으나 히틀러 사망 후인 69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인정을 받고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암울한 세월 동안 수많은 '거절 편지'를 받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타인의 찬사를 들으려는 목적 없이' 계속해서 글을 썼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다행인 일인가. 사실 읽는 거의 모든 문학작품,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예술작품 대부분이 그런 '거절 편지'들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어디 예술작품뿐이겠는가.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고통은 크다. 그러나 내면의 포기가 주는 고통은 더 크다. 대시인의 시가 감동을 줄지라도, 자신이 쓴 시만큼 자기 삶의 중요한 부분을 건드리는 시는 없다. 시를 써서 바람에게 읽어 주면 바람이 머릿결을 쓰다듬어 줄 것이다. 겨울강에게 읽어 주면 강물이 얼음장 밑에서 화답할 것이다. 그러면 자신을 둘러싼 세상과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다.
우리는 타인에게 보여 주거나 인정받기 위해 살지 않는다. 타인의 인정에 의존하는 기쁨은 오래가지 않는다. 마지막 행의 오묘한 독백, '시를 써서 혼자 소리내어 읽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그런 마음만으로도 부족할 게 없다.
첫댓글 마음의 위안을 듬뿍 안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있는 책인데
기억 속에선 다 지워졌네요.
다시 읽을 책 목록에 적어놓을게요.
세계적인 대가에게도
이런 절망의 시간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저만 그런 줄(유형은 다르지만) 알았어요.
결국 작품은 1차적으로 나를 위로하는 것이로구나, 싶습니다.
대문호에게 저런 세월이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류시화 시인의
우리는 타인에게 보여 주거나 인정받기 위해 살지 않는다. 타인의 인정에 의존하는 기쁨은 오래가지 않는다.
'시를 써서 혼자 소리내어 읽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이 말이 진리입니다.
얼마전에 고인이 되신 신경림 시인 초청 강의를 오래전에 한 번 들은 적 있습니다. 그분 말씀이 생각납니다. 백일장 상 복이 없다고 그러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위안을 그때 받았어요. 초등학교 담임샘이 너는 시인이 되겠다 . 문학소녀의 꿈이 있었는데 사회 백일장에 족족이 떨어졌어요. 그래서 라디오 방송 엠비시 여성시대 싱글벙글쇼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단골 당첨 ㅎㅎ 그리고 기업 사보 구독해서
사보에 실리면 얼마나 좋았던지..... 그러고 보니 나두 꽤 오래된 사람이네요. 등단 하기 전일입니다.
염 선생님 덕분에 시간여행 다녀왔어요
회장님^^
동병상련...
저는 10세 때
담임 선생님의 발굴(?)로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지 뭐예요.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도 상복이 없어요.
어쩌다 받으면 꼴찌 상?
그래서 나는 안 되는구나 하며
숨어든 마음 다시 꺼내려면
상처가 나곤 했지요^^
신경림 시인께서도 그러셨다니
믿기지 않아요...
아무튼 묵묵히 쓰겠습니다.
아 ~
그랬었었군요 ㅎ
저도 어디다가 특별히
내 본적은 없지만ㅡ,,
어려웠던 시절을 극적으로
살아 내셨던분들의
간증듣는 기분!
절망까진 아니었었지만
염진희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이 듭니다*~*
나의 글 한줄이 세상에 감동을
일으키지 못하는줄 알면서도
오늘도 끄적이는 이유
그냥 좋으니까^^
짝짝짝 ~
Me too!
위대한 시인들도 저런 길을 걸었군요..
'시' 라는 매력 있고 높은 세계가 아직도 생소하고 멀게만 느껴집니다.
포기할까 싶을 땐 헤세의 글을 꺼내 읽어봐야겠네요
좋은 글 올려주신 염선생님 감사합니다. ~~^^
위점숙 선생님, 송재옥 선생님, 손설강 선생님, 김종기 선생님, 김병수 선생님, 법정 선생님, 현송희 선생님~
함께 읽고 공감해 주셔서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