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9일 물날 (음 8.4)
#1.
예사롭지 않은 가을 바람에
내내 차문을 닫고 운전을 했습니다.
빈 속에 커피 한 잔 짜르르 내려가면 좋겠다 싶은 아침.
(어제 '밥과 명상' 공부하고도 이런 소리가... 쯧쯧)
배움터 주차장.
빨강 노랑 깜장 색색의 작은 차들이 올망졸망.
차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고 했던가요?
큰사람이 큰차 타는 건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배운대로 사는 거, 재밌습니다.
근데 아몽은...?
아, 맞다. 자전거 타고 다니지!
(너구리는 말 타고 왔을거고. 몽골족잉께...)
#2.
아침명상,
아몽의 [영성수련의 기본] 윤독.
건강하지 못한 동기와 감정들은
대개 마음이 떠나 있을 때에 일어난다.
불교 심리학자들은 마음이 거기 없을 때에만
건강하지 못한 힘들이 발동한다고 말한다.
분명히 아침엔 듣는다고 들었는데
집에 와서 다시 읽어보니 생전 처음 읽는 글 같습니다.
마음 붙들어 매기가 쉽지 않네요, 여간 깨어있지 않으면.
아침산책 나가는 길,
은행나무집 환기를 시킵니다.
안방 벽지에 곰팡이가 슨지 벌써 몇 달째.
마음은 이미 도배까지 끝냈는데...
오늘도 '마음만 거기있기'로 마쳤네요.
#3.
너구리가 유모차 한 대 끌고 갑니다.
지난 봄 아침산책 때 뵌 어르신의 부탁으로
카페에 올려 기증받았던 유모차였는데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어요.
그 길에서 어르신을 다시 뵙겠지 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고,
댁을 찾으려 구랑실.너구리가 애썼지만 헛수고였어요.
안타깝게 그 유모차는 이제껏 창고에서 뒹굴다
오늘 드디어 새 임자를 만났습니다.
너구리의 전언으로는
오늘 유모차 받으신 그 어르신들이
진심으로 진심으로 고마워하셨답니다.
'그나마 다행'이란 말은 이럴때 쓸까요?
(그 때 유모차 보내주신 아무개 엄마도 고맙습니다!)
지난 토요걷기 때 만난 마을회관 뒷집 어르신은,
"학교서 고추 따믄 갖고 와. 우리집에 건조기 있응께."
"어머니, 말릴래야 말릴 고추가 없어요."
"내년에 갖고 와 그럼."
내년 고추 농사는 잘 될까요?
(노린재에게 물어 봐!)
아침 산책 끝날 즈음,
슬슬 지치고 허기가 느껴지는 그 길목에
떡하니 있는 방앗간 하나.
저만 보면 고무신 달라고 보채시는(?)
노월마을 이장님댁이죠.
어제는 고추를 빻는지 재채기가 나더니
오늘은 기름짜는 냄새가 진동합니다.
참 고소한 아침입니다.
#4.
밥모심을 기다리는데
은혁이가 나타나질 않습니다.
찾으러 갔던 짝꿍 승희 돌아와 하는 말,
"아몽한테 벌 받고 있어."
슬쩍 내다보니 세 녀석이 복도에 쪼르르 앉아,
'학유유절하여 선학선유하라'를 복창하고 있더이다.
정오기도 때 지나치게 흥분해서 분위기를 깼던가봐요.
오랜만에 보는 정겨운 풍경에 그만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러게 '학유유절하여 선학선유'해야지!! ㅎㅎ
#5.
밥모심을 마치고 운동장이 떠들썩해 나가보니
너구리를 가운데 두고 아이들이 삥 둘러 서 있습니다.
"뱀이야!"
태식이가 책읽는 소녀상 발아래서 발견했다네요.
작년인가 태식이를 물었던 녀석과 같은 종의 살모사라나요.
너구리가 잠시 머뭇거리다 맨 손으로 뱀의 머리를 쥐어틀고
교문 밖으로 척척 걸어가니 아이들 졸졸 따라가며 와~와~!
너구리 뒷태에 유난히 힘이 들어갑니다. ㅎㅎ
어느 저명한 농부께선 뱀 나오면 좋은 땅이라고 하셨지만,
아이들 안전이 우선 당장 신경 쓰이네요.
우거진 풀숲부터 서둘러 정리해야겠습니다.
#6.
햇볕 쬐며 앉아있는 건영.
"건영아, 이제 몸 다 나았어?"
"응."
"근데, 너 병원에 있을 때 제니스가족 형누나들이 빛 보내준 거 받았어?"
"응!"
정말 일초의 주저함도, 의혹도 없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지 얼마 안 된 천사는 다른가 봅니다.
#7.
지난주 3학년은 구랑실과
수와셈 마지막 시간에 바느질을 했다지요.
선호는 엄마 휴대폰 주머니를 만든다며 도와달라고 왔어요.
며칠 끙끙대더니 드디어 오늘 완성했더군요.
"이 안에 편지도 넣으면 좋지 않을까?"
"그래!"
구석에서 가리고 쓰다가 머리를 긁적이며 옵니다.
"내가 국어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
'귀찮게'와 '될게요'의 맞춤법을 묻습니다.
(대충 내용 짐작되지요? ㅎㅎ)
사랑의 편지까지 넣은 주머니를 흔들며
이제부터 말과글 열심히 공부하겠다며
하이파이브! 하고 갔습니다.
#8.
아이들을 보내고 제니스 방에 모여
'아침열기'와 '빛칠하기'를 공부하고
배움지기 살림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오늘 이야기꺼리가 많았네요.
사랑어린잔치, 공동체놀이, 월요산책 코스, 한가위...
해가 꼴까닥 넘어갔습니다.
사랑어린잔치! (10월 27~28일)
'모두 함께 어울려 놀면서 크는 집'이 큰 주제라네요.
마을 어르신들과 여러 벗님들을 모셔서
한바탕 어울려 노는 대동의 자리랍니다.
신난다가 꼭두쇠를 맡고,
많은 이들이 준비꾼으로 나선답니다.
줄거리만 들어도 벌써부터 흥이 나네요.
사랑어린 이들답게,
단순소박하고 정성스럽게 준비하자고 합니다.
그래야죠!
#9.
오늘은 사십여(!)년 전,
지구별에 민들레 소풍오신 날.
음력 8월 4일.
초승달이 어여쁘게 지고 있대요.
민들레가 가장 좋아하는 말,
오늘은 우리가 전합니다.
"민들레,
당신이 계셔 우리가 있습니다. 고마워요"
#10.
잠들며,
깨며 속삭입니다.
"그래, 너는 사랑이야!"
[하늘기도 1000-235일째를 닫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