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캘리포니아 드리밍‘이 극장 안에 울려 퍼졌다. 로맨스 영화 '중경삼림'을 보던 중이었다. 좋아 하던 노래여서 그런지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영화 속의 여자 주인공은 삼촌의 패스트 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녀는 이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곧잘 틀어 놓고 일을 하는데, 이곳에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들르는 남자가 있다. 그는 아가씨에게 이 노래를 왜 좋아 하느냐고 묻는다. 그녀는 캘리포니아에 가면 성공할 것 같아서라고 한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다 캘리포니아에 갈 경비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왕가위 감독은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곳곳에 깔아 놓았다. 이 노래는 오래 전에 그룹 '마마스 앤 파파스'가 불러 힛트한 노래다. 젊었을 적 나도 이노래를 무척이나 좋아 했었다.
나뭇잎들은 모두 시들어가고 / 하늘은 잿빛으로 변해가지 / 한 겨울날 / 나는 거리를 거닐고 있어 / 내가 LA에 있다면 / 따스하고 편안하게 지내고있을텐데 / 캘리포니아가 그리워 / 이처럼 추운 겨울에는 / 이처럼 추운 겨울에는-
이 노래를 인상 깊게 들었던 곳은 낚시터였다. 취직도 진학도 하지 못하고 빈둥거릴 때여서 낚시를 다녔었다. 그날은 제법 멀리에 있는 강가로 낚시를 갔었다.
밤이 되자 으스스 추웠고 사위는 캄캄했다. 강 건너에 큰 길이 있었고 그와 나란히 기찻길이 있었다. 밤이 이슥해지자 자동차의 왕래는 끊겼고, 이따금 밤 열차가 지나갔다. 캄캄한 밤이라 열차는 어렴풋했고 불 켜진 차창만 또렷했다. 그래서 열차의 모습은 한 무리의 일행이 오렌지색 등불을 들고나들이 가는 행렬 같아 보였다. 가물가물 사라져 가는 등불의 행렬은 오래도록 내 시선을 붙들었다.
저 열차를 타면 다정한 얼굴들을 만날 것 같았고, 꿈을 펼칠 수 있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 줄 것만 같았다. 분명 열차가 닿는 곳은 아늑하고 따뜻한 곳일거라 여겨졌다.
한 차례 열차가 지나가고 나면 낚시터는 다시 쥐 죽은 듯 조용해 졌다. 그럴 때는 왠지 나만 어둡고 추운 곳에 버려진 것만 같았다. 한참 뒤 열차는다시 또 오렌지색 등불을 매달고 나타나서는 멀리 멀리 사라지곤 했다. 바로 그때, 가지고 갔던 라디오에서 이 '캘리포니아 드리밍'이 나왔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겨우 겨우 자리를 잡았지만 변변치는 못했다. 늘 안개 속에서 허우적대는 혼곤한 삶의 연속이었다. 그런 잿빛 속의 삶에서는 꿈도희망도 사라지고 뜨겁던 열정도 발그레한 뺨도 바래졌다. 대신 한숨과 체념이 회색빛 곰팡이처럼 슬어만 갈 뿐이었다.
그 몹쓸 것들은 밤마다 빨치산처럼 내 머리 속으로 기어들어 잠을 이룰 수 없게 했다. 그럴 때는 담배를 피워 물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는 그나마 서늘한 바람이 불어주었고, 아득히 달려가는 밤 열차가 보였다. 밤 열차는 오렌지색 등불을 매달고 어디론지 부지런히 달려가고 있었다. 그 등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희뿌연 안개가 다소 걷히었다.
그 낚시터에서처럼 저 열차가 닿는 곳은 따뜻할 것 같았고, 그 곳으로만 가면 모든 것이 다 잘 될 거라 여겨졌다. 이렇게 내가 웅크리고 있는 것은 다저 열차를 타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열차가 가물가물 사라질 때까지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었다. 남들은 잘도 가는 그 곳을 나는 왜 가지 못할까. 오렌지색 등불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만 줄곧 했었다.
영화 '중경삼림'에서 따뜻한 곳을 그리는 한 젊은 아가씨를 보았다. 나는 그녀를 보며 오렌지색 창을 달고 달리는 밤 열차와 내 젊은 날의 야윈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리고 그 열차를 타지 못해 아직도 어둡고 추운 곳에 웅크린 채 앉아있는 나를 돌아 보았다. 서글프게도 이제 그 열차는 타려해도 탈 수도 없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래서일까. 오렌지색 등불을 켜고 산모롱이 돌아 사라져 가는 밤 열차가 오늘따라 더욱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