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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훅'에 실린 cbs라디오 피디 정혜윤 님의 글입니다. 잔잔한 감동을 주는 글이라 옮겨 봅니다:)
해피 뉴이어!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전에 여러분 모두 12월 31일을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하다.그날의 세계를 이해하려면 그 전날의 세계를 봐야하기 때문이다.나는 12월 31일을 설악산에서 보낸적도 있고 뉴질랜드의 야외 온천에서 눈과 별을 보며 반딧불이 동굴의 신비에 대해 생각하며 보낸 적도 있고 사이판 철 지난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수영복을 입고 보낸 적도 있었지만 바로 지난해 12월 31일이 가장 좋았던 것 같다.왜냐하면 나는 12월 31일 일주일 전부터 매일매일 이렇게 시작하는 원고를 쓰고 고치고 또 고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붙잡고 싶은 시간에 관한 이야기라고도 할수 있을 것 같다
음악 (올드랭 사인 뮤직 박스 분위기로)
이제 곧 한 해의 별과 태양은 우리에게 안녕 안녕 손을 흔들 것이다.
이제 곧 종 소리가 울릴 것이다
2010년은 곧 작별을 고할 것이다
이렇게 아련하고 아까운 밤의 한가운데에서
요정처럼 몸집이 아주 작은 할머니 하나가
방안에서 조심조심 움직이고 있다.
아주 따뜻한 방은 아니다.
그렇지만 방안엔 노랗기도 하고 오렌지색이기도 한 불빛이
흘러 다닌다.
믿을 수 없이 반짝거리고 믿을 수 없이 부드러운.
그 빛은 여든 살이 넘은 그녀의 눈에서 흘러나온 빛무리의 반향들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녀는 몸을 잔뜩 구부리고 뭔가 쓰고 있다.
한참 뒤 그녀는 주름진 입술을 달그락 달그락 움직이며
중얼중얼 읽는다.
아니 그녀는 시를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음악 f.o)
시간이 지금 잠시 멈춘다.
(나레이션 잠시 멈추고)
너 아름답구나…잠깐만 멈추어라 !
음악 시그널 (드보르작 현을 위한 세레나데)
(씨비에스 송년특집
인생이 시다)
이 글은 송년 특집 다큐멘터리 원고의 첫 부분이다. 31일 밤 열한시에 방송되었다. 지난 11월에 이 특집을 제작하기 위해 음성에 두차례 내려갔는데 날이 갈수록 그때 만난 할머니들의 기억이 생생해진다. 끝내 나는 12월 31일 밤에 시간을 두 손으로 담아서 ‘잠깐만 멈춰라!’하고 부드럽게 주문을 외웠다. 그때 내 마음은 여기 서울에 있지 않고 음성의 작은 방에 있었다. 나는 마음속에서 깜빡 여행을 다녀왔다. 그 이야기의 일부분은 이렇다.
음성에 들어서면 사람들은 초록색 빨강색 세 개의 고추가 동상처럼 서있는 것과 수박 연구소를 볼 수 있다. 음성이 고추와 수박으로 유명한 고장이기 때문이다. 마을 가운데로는 무극천이 흐른다. 조금 더 위쪽에선 금강과 한강이 나뉜다. 음성의 중심지는 금왕이다. 옛날 1910년대에 금을 많이 캐던 곳이라 금왕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 시절엔 금을 캐러 사람들이 많이 몰려 들었었고 거리는 시골답지 않게 밤늦도록 흥청거렸다. 다이너마이트 터지는 날엔 사람들은 멀리서도 땅이 흔들리는 걸 느꼈고 어린아이들은 귀를 막고 엎드리면서도 두려움과 함께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가벼운 흥분감을 느꼈다. 그러나 지금 그 시절의 광부들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그 시절의 이야기들에 앞서 옛날 어느 왕이 쉬어갔다는 나무와, 어느 장수가 전쟁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칼을 내려놓았던 바위에 얽힌 이야기들같이.
어느 마을에나 있기 마련인 전설이 전해 내려오지만 그 어느 것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삶의 지혜와 행복을 쉽게 간단히 가르쳐 주지는 않았다.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아득한 삶의 지혜 대신 인삼, 담배, 수박을 기르는 고된 노동이 사람들의 일상을 채웠다. 이렇게 아주 오랜 세월 고된 노동을 한 사람들이 이제 노인이 되어 노인 복지관에 모여 든다. 할아버지들은 아침부터 나들이옷을 차려입고 당구를 치면서 올해는 장사가 잘 안된다는 이야기나 큐를 제대로 맞추려면 몸을 어떻게 틀어야하는지 같은 이야기를 나눈다. 당구치는 홀 옆에는 시 창작 수업을 하는 교실이 있다. 수강생은 모두 일흔 살이 넘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한 할아버지의 손톱 밑에 떼가 시커멓게 떼가 낀 이유는 그가 가을 내내 일을 했기 때문이고 그전에 평생 일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파리 뒷다리 털도 보여줄만큼 커다란 돋보기를 들고 시를 쓰러 왔다. 그 방의 문을 연 사람들은 누구라도 예상치 못한 분위기에 주춤 멈춰서고 말 것이다. 혹시 어린아이들이 노인으로 분장한 것일까? 나는 분명히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마치 수업을 기다리는 유치원생들만 같아 보인다. 분홍색 필통, 원고지, 연필이 돋보기 약봉투와 섞여 있었다. 가장 신비로운 것은 눈빛이었다. 아니 신비로운 눈빛들이었다. 노년의 성숙한 관조나 한탄, 피로감이 아니라 수줍음과 설레임이 봄날 보리밭 아지랑이처럼 일렁일렁대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아니 이 사람들은 마치 단테가 천국에서 말한 것처럼 들판의 이삭이 피기 전에는 그 값을 헤아려볼 생각은 결코 해본 적이 없는 진실한 농부들 같지 않은가!
시 창작 교실수업은 다 같이 아홉 번 박수를 치고 강의를 맡은 증재록 시인이 골라온 시를 한편 읽고 그 다음엔 각자 적어온 시를 큰소리로 발표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그런데 왜 박수를 아홉 번 치는 걸까? 그 궁금증을 안고 할머니들 이야기를 쭉 따라갔다.
정 반헌 할머니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그녀가 요즈음 매일 외치는 구호가 있다. 바로 이 구호다. “이대로 늙을수는 없다!” “내 가슴속엔 젊음만이 있다”. 그녀는 이 구호를 노트북 앞에도 붙여 놓았다. 글을 쓰기 전에는 반드시 이 구호를 보고 맹세한다. 살아오면서 시 비슷한 것을 써 본 적은 없어도 그녀는 다른 것을 써보기는 했었다. 쇠죽을 끓이다가 막대기로 쇠죽에다가, 밥을 짓다가 부지깽이로 흙바닥에. ‘나는 왜 이럴까?’ ‘달아, 달아 너는 내 맘을 아니?’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니?’ ‘나도 교복입고 학교에 가고 싶구나.’이런 것들이었다. 부모에게 말하면 부모가 속상할까봐 친구에게 말하면 미쳤다고 할까봐 속에 담고만 있던 말들이 쇠죽의 뽀글거리는 거품위에, 부엌의 흙바닥 위에 쓰여 졌다가 사라져갔다. 그녀의 말을 듣고 있자니 우리가 한때 품었던 수많은 소망들 역시 슬픔을 안고 희미하게 모래바닥에 누워 있는 풍경들이 눈앞을 스쳐갔다.
정 반헌 할머니 옆에는 한 충자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지금은 여기 시 창작 교실 맨 앞자리에 앉아 있지만 그녀는 일흔 두 살까지 완전히 문맹이었다. 그녀는 나고 자라고 사는 동안 한번도 음성을 떠난 적이 없다. 그녀의 친정 동네는 꽤 큰 마을이었고 친정집도 컸다. 딸이라 하면 그저 집에서 끌어안고 귀여워하면 되는 줄로만 알았던 부모들은 그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먼 친척의 중매로 스물 다섯에 옆동네인 하루동으로 시집 왔다.한충자 할머니는 너무 부끄러워서 결혼하고 사흘이 지난 뒤에야 신랑 얼굴을 간신히 바라봤다. 시집은 아침 한끼만 밥을 먹고 두끼는 죽을 먹어야 할 정도로 무척 가난했고 가족이 많았다. 방은 아랫방 윗방 두 개가 있었는데 여덟 명이 이불 하나 덮고 발만 넣은채 동그랗게 누워서 잤다. 시할아버지는 새색시가 들어오자 방을 비워주고 다른 집으로 자러 나갔다. 노인네를 쫓아내고 자는 것 같아서 한 충자 할머니는 신혼인데도 이건 사람 사는게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친정 엄마는 딸이 굶어 죽을까 딸을 출가시킨 후 하루도 편한 잠을 자지 못했다. 친정 엄마는 딸 집에 딱 한번 찾아왔다. 집안에는 들어오지도 못하고 집 앞 느티나무 밑을 서성거렸다. 그저 손자만 안고 들여다보고 있다가 한 충자 할머니가 얻어다 준 국수 한 그릇 서서 먹고는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곤 며칠 뒤에 돌아가셨다. 그게 한충자 할머니 평생의 슬픔이 되었다. 그런데 또 다른 슬픔도 있었다. 씨뿌리고 고추심고 모내고 밥해먹고 자식 기르느라 그녀가 문맹인걸 아무도 몰랐다 .그런데 뜻밖의 일로 그녀가 문맹인걸 모두 알게 되었는데 한충자 할머니의 남편의 이야기를 옮겨보면 이렇다.
“난 결혼하고 군대에 갔어요.군대에 가서 아내에게 편지를 썼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답장이 안와요. 그래 제 맘에 없는 결혼을 해서 그런가보다 라고 추측을 할 수 밖에 없었지요. 그러다 휴가를 얻어 집에 왔어요. 그런데 집에 오니 아내가 날 반겨줘요. 그래 날 싫어하는 것 같지 않은데 왜 답장을 안하느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펑펑 울어요. 문맹자라 그러더군요. 그때 아내가 문맹자인 걸 처음 알았어요. 한번은 구촌뻘 되는 처녀가 집에 놀러왔는데 그녀는 글을 알아요. 그래서 아내는 내 편지를 꼭 쥐고 편지를 보여줄 수는 없고 답장 한통만 써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해서 딱 한번 답장이 오긴 왔었어요. 그런데 군대에서는 꼭 일주일에 한번씩 편지를 써야만 했어요. 그래서 동생들에게 쓸 수도 없고 아내가 읽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계속 아내에게 편지를 썼지요.내 맘에 있는 비밀 이야기 같은 건 못했지요. 읽지 못하니까. 대신 부모님 모시고 잘 있어달라고만 했지요”
그녀 나이 일흔 두 살이 되었을 때 그녀는 노인 복지관 한글반에 들어갔다.아이들이 길 바닥에 함부로 해놓은 낙서만 봐도 저것이 무엇일까? 그녀는 엄청 부러웠었다고 한다.죽을 때까지 글을 배우지 못하면 나 죽어 저승 가서라도 꼭 배워야지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전에 죽기 전에 이름 석자라도 쓰고 싶었다.일주일에 두 번씩 삼년을 다녔더니 한글반 졸업이었다.아이고!난 받침도 아직 모르는데.하는 생각이 들어서 어디가서 한글 좀 더 배울데 없느냐고 물었더니 시창작반으로 가라고 했다.‘배운 거라고 잊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시가 뭔지 모르면서도 시 창작 교실까지 오게 되었다.배우기 시작하자 기쁜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글을 배우고 몇 년 뒤에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오십년 만의 답장이다.그 편지의 전문은 이렇다.
당신을 만난 지가 벌써 오십년이 지났군요. 그동안 부모님을 모시고 아들 딸 가르치느라고 힘들고 가난한 살림에 세월 가는 줄도 모르고 우리 인생이 다 되었어요. 당신을 챙길 시간 조차 없어 너무 소홀히 생각한 것 같습니다. 지금에 와서 후회하고 있어요. 그동안 나에게 사랑을 베푸신 당신에게 감사드립니다. 당신이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지요. 당신을 군대에 보내놓고 그 뒤에 편지가 와서 읽을 수도 없어 가슴이 얼마나 답답한지 슬퍼서 울 때 살고 싶지도 않았죠. 편지를 쓰지도 못하고 읽지도 못하는 나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신 당신이 너무나 고마웠어요. 그때부터 공부를 하기로 결정했지요. 2004년 3월 11일 음성군 노인 복지 회관에 가서 내 마음을 열고 한글 학교 문을 두드렸습니다. 힘이 된 것은 당신의 사랑이지요.일 주일에 두 번씩 데려다준 덕분이지요. 이렇게 연필을 들고 쓴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고 기쁨과 감격의 눈물이 납니다. 이제 소원이 하나 풀리고 그 동안의 부끄러움을 면하는 것 같습니다. 당신에게 그동안 사랑한다는 말 한 번도 써보지 못했고 이제야 당신께 사랑이란 말을 씁니다. 당신을 이 세상 끝까지 사랑할 겁니다. 여보 고맙습니다.
2006년 4월13일 당신의 아내가
그런데 그녀는 무슨 시를 쓸까? 내가 처음 읽고 충격을 받은 시의 제목은 무식한 시인이었다
시는 아무나 짓는게 아니야
배운 사람이 시를 써 읊는거지
가이 갸 뒷다리도 모르는게
백지장 하나
연필 하나 들고
나서는게 가소롭다
꽃밭에서도 벌과 나비가
모두 다 꿀을 따지 못하는 것과 같구나
벌들은 꿀을 한 보따리 따도
나비는 꿀도 따지 못하고
꽃에 잎만 맞추고 허하게 날아갈뿐
청용도 바다에서 하늘을 오르지
메마른 모래밭에선 오를 수 없듯
배우지 못한게 죄구나
아무리 따라가려해도
아무리 열심히 써도
나중엔
배운 사람만 못한
시,시를 쓴단다
무식한 시인 (한충자)
그녀는 정말 무식한 시인일까? 나는 이 특별한 시 앞에서 할 말을 잊고 있다가 그녀의 집에 따라갔다.그리고 시를 좀 보여달라고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는 매일 밤 시를 쓰고 있는게 아닌가? 벽마다 그녀가 쓴 시가 비닐 코팅된 채 붙어있었다나는 그녀가 백살 된 시어머니의 점심 식사를 차리는 동안 정신을 잃다시피 그녀의 시를 읽었다. 나는 그때의 경이로움을 이렇게밖에 묘사하지 못했다.
부끄러워 얼굴 붉히고 스스로 무식한 시인이라 말하는 그녀가.
깊은 밤
조심조심 불을 밝히고 화장대 서랍을 연다
치약과 몇 장의 비누 뒤에 숨겨놓은 두툼한 갈색 종이 봉투를 꺼낸다
대체 무슨 보물이길래 깊숙이 숨겨놓았을까?
그 안에서 나온 것은 원고지 뭉치다.
밤마다 또박또박 써놓은 시가 수백편이다.
그녀의 시 속에서 애석하게 죽어버린 엄마는 가을빛으로 살아난다
콩다발을 머리에 이고 가는 젊은 어머니는 가을볕 아래
하늘의 축복을 받는다
증재록 시인과 치는 손뼉 아홉 번은
우리를 시인으로 만들어주는 기쁜 손짓으로 살아난다
손뼉 아홉 번은 열 번보다 좋다
더 채울게 있으니까.
그리고
봄 씨앗 뿌리는 날은 이렇게 변한다
바가지에 씨앗을 담고
밭으로 가는 길
개나리 민들레 진달래
꽃이 만발하고
벌 나비 이꽃 저꽃으로 날아다닌다
저 건너 산에는 아지랑이 아롱아롱
마음을 사로잡아 씨뿌리기 힘들게 하고
밭에는 이얏 쩌쩟 소모는 구성진 소리
괭이질하다가 앉아 쉬는데 깜빡 오는 잠
종달새 지지배배 잠이 깨어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그녀는 무식한 시인일까? 물론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무지한 시인(관찰력과 의지로 스스로 새롭게 세상을 배워나간다는 의미의 무지)일 수 있지 않을까? 그녀는 어떤 시인일까? 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잠시만 뒤로 미루고 싶었다. 또 다른 할머니를 따라갔다. 또 다른 문맹자였던 이 명재 할머니는 참나무 숲이 있는 마을.수박으로 유명한 마을,그래서 마을 입구 다방 이름도 수박 다방인 맹동 마을에 산다. 이명재 할머니 역시 한충자 할머니처럼 복지관에서 한글을 배우고 시 창작 반에 올라왔다. 수박 농사를 짓고 사는 그녀는 지난 여름 죽을 고비를 넘겼다. 병문안을 온 사람들은 어째 사람이 살아 나갈 것 같지 않아 라고 말했다. 그걸 마지막 기억으로 꼬박 사흘을 정신 차리지 못하다가 깨어났다. 그 때 이명자 할머니는 그녀가 쓴 시를 꼭 부둥켜 안고 울었다. 그 시의 제목은 ‘연필끝이 무디다’였다. 그 시는 내 인생 눈뜬 장님인데 /세상에 태어나 글을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로 시작된다. 그 시는 이렇게 이어진다.그녀는 이 시를 큰 소리로 하지만 더듬더듬 내게 읽어주었다.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할말들이 철철 넘치는데
눈뜬 장님인 나는
어진 것들의 몸부림을 글로 표현할 수 없다
오늘도 살펴보며
어제의 흔적들을 글로 써보려하나
그러기에 아직도 아는게 없다
내 연필끝이 무디다는 것 밖에는
연필끝이 무디다 -이명재
그 무딘 연필 끝을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인 손자가 매일 깎아준다. 내가 이명재 할머니를 두 번째로 만난 날 그녀의 아들과 며느리는 수박 비닐 하우스의 비닐을 걷고 있었다. 수박을 수정시켜주는 고마운 꿀벌은 모처럼 따뜻한 볕을 쬐러 날아 다니고 그 옆에선 냇물이 흐르고 바람이 불고 있었다. 이명재 할머니의 시에서처럼 어진 것들이 몸부림치고 있었다. 이명재 할머니는 이제 그 모든 몸부림과 자신의 노동을 사랑 가득한 시로 표현하고 있었다.
비가 보슬 보슬 내리는 날이나
날씨가 좋은 날이나
수박 하우스에 가서 산다
땀을 뻘뻘 흘리고
숨이 헉헉 차도
물을 마시며 일을 한다
수박 손질을 한다
수정을 할때는 날씨가 좋아야 한다
비가 오면 벌이 통에서 나오지 않는다
날씨가 좋아야
수정도 잘되고
열매도 잘맺고
수박은 벌을 사랑한다
수박 키우기 -이 명재
대략 삼십분이 지나면 지난해 많은 일들이 과거의 안개 속으로 사라져갈 그 시간, 나는 이 할머니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시간의 입구,2011년의 입구에서 한 충자 할머니와 이 명재 할머니가 큰 소리로 책을 읽고 시를 쓰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시를 쓰고 난 뒤 한충자 할머니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할머니는 일하다가 들국화 냄새도 맡아보고 돌멩이도 들춰보게 되었다고 말한다.이명재 할머니는 예전에는 ‘그것이 그것여!’라고 말할 줄 밖에 몰랐는데 이젠은 수박과 벌이 사랑한다고 표현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 충자 할머니는 내가 뭐 시인이 되겠단 생각도 없었고 그저 어디 가서 읽고 쓰고 남의 시도 좀 읽어볼 시간이 있었으면 참 좋겠다고만 말한다.이 명재 할머니는 오직 배우는 것만이 부럽다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부럽지 않다고,잠 안 오면 책 읽어야지 뭐 하냐고 말한다.나는 한 해가 끝나는 곳에서 할머니 시인들에게 삶의 지혜를 배운다.
나는 끝없이 많은 질문을 갖게 되었다. 무식하다는 것은 뭘까? 배운다는 것은 뭘까? 아무런 댓가도 바라지 않고 노력한다는 것은 뭘까? 농사꾼이 밤에 시를 지으면 그 시는 농사꾼의 낮도 바꿔 놓을 수 있을까? 일하고 돌아온 사람들에게 밤의 시간은 무엇일까? 먹고 자고 쉬는 것 말고 우리도 밤의 시간에 뭔가를 한다면 그것이 또 우리를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가? 아무것도 당연시하거나 무심코 보아넘기지 않는다면 그런 탐구와 관심이 우리를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가? 할머니들이 글자에 눈이 멀어 있었다면 우리들은 지금 무엇에 눈멀어 있는 걸까? 이제 우리가 눈멀었던 그 무엇에 눈을 뜬다면 우리 역시 얼마나 기쁠 것인가?
나는 눈이 많이 오는 날 할머니들을 생각하며 회사 앞 공원을 왔다갔다 했다. 그러다가 나는 갑자기 큰 기쁨에 사로 잡혔다. 할 수 없다. 할 수 없다. 할 수 없다. 생각하다가 마침내 할 수 있게 된 어떤 순간을 본 기분이었다. 나는 뭔가를 깨달았다. 곰곰이 생각하니 그녀들은 시를 쓰고 있는게 아니라 시를 심고 있는게 아니었던가? 그녀들이 시를 심는 땅의 이름은 삶이었다.동시에 그녀들이 뿌리는 씨앗도 쓰는 시도 삶이었다. 거기서 수박과 고추와 벼와 함께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속하는 참다운 기쁨과 즐거움이 꽃처럼 피어난다. 나 역시 글을 쓰는게 아니라 글을 내 인생에 심고 싶어졌다. 방송을 하는게 아니라 방송을 내 인생에 심고 싶어졌다. 여행을 떠나는게 아니라 여행을 심고 싶어졌다. 나는 12월 31일에 할머니들의 시속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어디론가 멀리 다녀온 기분이었다. 테리 이글턴은 how’s it going (요새 어떻게 지내세요?)같은 흔한 인사말에도 뭔가 도덕적으로 중요한 뜻이 담겨져 있다고 했다. 그것은 아마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한충자 할머니의 시 제목인 ‘무식한 시인’을 ‘최선을 다하는 시인’으로 고쳐 발음해 봤다. 12월 31일도 1월 1일도 꽉찼다. 시간을 붙들고 나서야.‘너 아름답구나 멈추어라!’한 다음에야,그런뒤에야 happy new year였다.
“할머니들에게.제 눈앞에는 지금 음성이 눈 앞에 쫙 펼쳐집니다. 지금 내 눈앞에는 이명재 할머니가 복지관 식당에서 할아버지들과 이야기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한 할아버지가 꿀벌 기르기는 아주 어렵다고 하자 할머니는 “우리 아들은 안 그래!”라고 큰 소리로 말했죠. 그리고는 꿀이 딱딱하게 굳으면 그건 설탕 때문이냐고 물었지요. 진짜 꿀은 시간이 흘러도 걸쭉한 건지 아니면 딱딱해지는건지 저와 할머니, 할아버지 두 명이 머리를 맞댈 때 그게 내 인생에서 꼭 알고 넘어가야할 가장 중요한 문제처럼 여겨졌었지요.그때 나는 아주 즐거웠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식으로 말하자면 내 욕망을 재교육 받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고나 할까요. 나는 음성을 떠나올 때 내가 따라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삶이 작은 농촌 마을에 있을 수 있는, 그리고 도처에 있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너무 오랫동안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후회했습니다. 그 점에서 깊히 감사드립니다. 나는 다시 인간 본성에 대해 생각해봅니다.알려는 본성, 배우려는 본성, 표현하려는 본성, 그런 것들은 분명히 우리 안에도 존재하고 있고 우리 곁을 스쳐가기도 합니다 .나는 진심으로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힙니다.결코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시간들이 보입니다.성공이나 성취와 상관없이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 순수함 어딘가에 새로운 세계로 가는 입구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답례로 제 여행 이야기를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저는 가을에 해지는 망해사로 여행을 갔습니다. 노을이 기막히게 아름답다고 소문이 짜한 곳입니다. 코스모스가 천리를 뒤덮고 있었고 들판은 노랗게 익었고 해는 지고 있었습니다. 평화롭고 따스하고 애틋한 풍경이었습니다. 제가 서해안의 갯벌을 바라볼 때 제 옆에서 한 농부가 친구와 통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엿들었습니다.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 지금 망해사 올라왔어. 일하다가 해지는 것 보고 내려가려고 올라왔어. 해지는 것 보고 내려갈게-
그 농부는 인근 마을에 사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 해지는 것 정도야 매일 볼 것입니다. 그런데도 전화를 끊은 그는 해지는 것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봤습니다. 그 때 나는 또 인간 본성을 본 것 같았고 아주 뭉클했습니다. 매일 보는 해. 그는 왜 또 넋을 잃고 바라보는 걸까요? 그는 어디로 여행을 가고 있었던 걸까요? 할머니들은 아시지요?”
첫댓글 눈물나는 감동입니다.
후유...너무 길어서 읽느라고 ~~ 그 연세에 저런 열망이 깃들어 있다는데 정말 놀랍습니다. 할머니의 시 ,편지 너무 좋은데요~~
할머니들의 삶이 시가 되고, 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뭉클합니다. 시를 쓰면서 순수함을 찾고 무뎌진 연필끝을 열심히 깎아야 겠습니다. 많이 배워 유식함보다 살면서 깨달아가는 소중한 지혜를 알아갑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