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나무를 보면 근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알맞은 간격으로 팔을 벌리고 예쁜 잎들을 팔랑거리기라도 하면 믿음직스럽기도 하고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수필도 그런 아름다운 나무와 같지 않을까.
아름다운 나무는 우선 둥치가 굵고 키가 어느 정도 커야 한다. 둥치가 굵직해야 가지와 잎으로 자양분을 골고루 보낼 수 있다. 또 키가 커야 많은 가지와 잎들을 달아 새들도 날아들고, 바람을 막고, 시원한 그늘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수필도 마찬가지다. 수필에서의 둥치와 키는 소재와 주제가 아닐까한다. 수필에서의 소재와 주제도 크고 굵직한 것이 좋다. 소재가 크고 굵어야 펼쳐놓을 이야기도 그럴 듯하고 흥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필은 우리의 일상을 쓰는 것이어서 크고 굵직한 소재가 그리 많지 않은 게 문제다. 그렇더라도 보다 크고 굵은 소재를 잡는 것이 좋다. 부득이 작고 소소한 소재로 쓸 때엔 상상이나 확대 해석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야 독자에게 감동과 깨달음과 재미를 줄 수가 있다.
다음은 나무의 가지이다. 나무의 가지가 뒤죽박죽이거나 제멋대로여서는 아름다울 수가 없다. 가지가 들쑥날쑥 제멋대로 튀어나온 나무를 상상해 보라. 얼마나 보기 싫겠는가. 정원사를 불러 왜 공들여 나무를 다듬겠는가.
수필도 마찬가지다. 나무의 가지는 수필에서는 문단과 문장이 된다. 문단과 문장의 나열이 뒤죽박죽이어서는 결코 좋은 수필이 될 수 없다. 엉뚱한 말이 갑자기 튀어나오거나 중언부언을 하거나 알 수 없는 말들을 한다면 쉽게 읽혀지지 않는다. 설사 읽혀진다 하더라도 전하고자 하는 말이 전달되지도 않고 좋은 느낌을 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발맞추어 행군하는 군인들의 모습이나 일사분란한 학생들의 마스게임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정렬이 잘 된 때문이다. 문단과 문장도 정렬이 잘 되어야만 아름답다.
다음은 나무의 잎이다. 아름다운 나무는 둥치와 가지에 알맞은 잎을 달고 있다. 자그마한 나무에 커다란 잎이 무성하다면 당연히 보기에 좋지 않을 것이다. 둥치가 굵고 키가 큰데 잎이 빈약하다면 그 또한 아름다운 나무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수필도 마찬가지다. 나무의 잎은 수필에서는 단어에 해당된다. 간혹 그런 작품들이 있다. 생소한 단어나 난해한 어휘를 남발한 작품들이 있다. 문학은 맛깔스런 어휘나 낱말을 구사하여 멋스러움을 주기도 해야 하지만 가장 먼저 할 것은 내용을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다. 낱말에 치중한 미문은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여 주제의 전달만 어렵게 한다. 미문은 문학성의 경계에 있기에 작가들은 곧잘 그 유혹에 빠져든다.
다음은 나무의 뿌리다. 뿌리는 땅 속의 물과 자양분을 빨아들이는 것이 주된 역할이다. 그렇다면 땅 속 깊게 튼튼하게 뻗어내려야 임무를 완수 할 수 있을 것이다. 뿌리의 또 다른 역할은 세찬 바람에도 나무가 넘어지지 않게 버티어 주기도 해야만 한다. 역시 튼실한 뿌리를 사방팔방 깊게 내려야한다.
수필도 마찬가지다. 수필이 자신의 체험을 쓰는 문학이므로 많은 체험을 가져야 할 것이다. 체험은 직접체험도 있고 간접체험도 있으니 독서나 연극, 영화를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되도록이면 많은 체험을 가져야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
그리고 체험들이 진실해야 한다. 허구가 허용된 시나 소설과 달리 수필은 그 진실성 때문에 독자가 쉽게 감동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땅 속 깊이 내린 나무의 뿌리처럼 진실에 뿌리를 내려야한다. 그러려면 맑고 바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겠다. 이렇게 나무를 생각하며 수필을 쓴다면 정이품송과 같은 기품이 있는 아름다운 수필을 쓰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