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벽두부터 나는 나의 성을 벗어나 갑옷도 벗고 무방비의 맨몸으로 나와 단절된 세상 속으로 들어갔다. 보름을 꼬박 떠돌았더니 몸이 먼저 지쳤다. 1월 9일 부산으로 가서 대구탕 한그릇 먹고 중국 요녕성의 심양으로 날라갔다. 도착해서 하루 걷고 16시간을 달리는 3등 침실 밤기차를 타고 장춘을 지나 흑룡강성의 하얼빈에 새벽 4시 쯤 도착해서 이토를 저격하고 눈보라의 역사를 유유히 빠져나갔다. 수심 4m 이상 꽁꽁 언다는 송화강의 강심까지 걸어갔다. 영하 28도의 살인적인 추위 속에 몸을 맡기고 노래를 불렀다. 콧털이 심하게 얼어 붙어왔다. 다음날 아침 맑게 개인 목단강가를 걸었다. 이곳에 살았더라면 이 목단강에서 심하게 연애를 했을 것이다. 강 이름을 도시이름으로 취한 낭만의 거리에서.
<Photo 1>얼어붙은 목단강

길림성에 들어가 용정과 대종교 조직의 근거지였던 화룡 등지를 걸으며 홧홧거리는 빼주에 취해 백야가 만주에서 낳았다는 딸 '산조'의 삶과 그녀를 스무살에 낳았다는 그 어미를 생각했다. 백야 보다는 백야를 섬긴 청산파(대종교 쪽)의 여덟명의 노인들 이야기가 눈물겨웠고 포수 출신 만주의 영웅 홍범도의 쓸쓸한 말년 죽음이 가슴 아팠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의 현장을 시시콜콜 둘러보고 도문에 이르러 얼어붙은 두만강과 건너의 남양마을을 보며 매서운 추위를 차곡차곡 가슴에 담았다.
<Photo 2>도문에서 본 국경, 두만강 건너 남양마을이 보인다.

용정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곳은 우리 영화 '놈,놈,놈'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15만원 탈취사건' 현장이었다. 투쟁자금을 위해 지금 돈 40억원에 해당하는 조선은행의 돈을 20세 전후의 젊은 청춘들이 성공적으로 탈취한 이야기는 이 초강력 추위를 날려보낼만한 통쾌한 이야기였다. 윤동주와 문익환과 송몽규와 나운규가 어린 시절 함께 보냈다는 명동촌을 둘러보며 인물은 인물이 내가 너를 서로가 서로를 만들어 가는 것의 중요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Photo 3>

윤동주의 묘 바로 옆에 '청년문사 송몽규'의 묘비가 있었다. " 이보오, 청년문사 송형, 저 만주벌의 구릉들을 말달리던 시절이 눈에 선하게 보이오. 혜란강에서 말에게도 목을 축이며 하나둘 돋아나는 초저녘 별을 바라보았을 사람들..나는 그대보다 30년도 더 어린 50대의 중년문사라오." 라고 말을 걸자 청년문사 송몽규의 답이 왔다. " 이보오, 중년문사 박형, 그대 사는 세상을 보니 내가 살던 세상과 하나도 다를 바 없건만 그대들 사는 삶이 사뭇 신통하오."
<Photo 4>혜란강과 당시 조선인이 일군 논밭들

에피소드 하나로 글을 맺는다. 이범석이 조국으로 돌아가기전 백야와 이별을 하기 위해서 '산시'의 백야를 찾아왔다. 백야는 목숨같은 동지와 이별주를 하려 했으나 먹을 것이 없었다. 동지에게 잠깐 기다리라 하고 추운 저수지에 앉아 낚시를 했다. 반나절이 다 지나도록 오지않아 가보니 백야는 추위에서 고기 두 마리를 잡아놓고 낚시대를 건질 수 없었다. 그날 밤 둘은 눈물의 이별주를 삼키고 며칠 후 백야는 돈이 생기자 이범석에게 5원을 보낸다. 가슴에 품은 사람들의 일이 다 그렇다.
첫댓글 코가 벌겋게 언 거요, 화주가 너무 세서 그런거요. 언제 파란만장한 만주 이야기 한 번 들어봅시다.
만주를 다녀오기 전과 다녀온 뒤의 박두규가 같은 사람일 수 없을텐데... 부럽다.
그 세상도 하늘은 푸르그만- 잘 다녀와서 참 좋으요. 무사 귀국을 축하, 축하, 축하.
선생님 혼자 다녀오셨나봐요. 그 발걸음이 사뭇 고독했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선생님과 아주 잘 어울리는 여행길이셨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보고 들으심이 어떤 시심과 만나게 될까 그 만남도 기대가 됩니다. 전 2월 17일, 12일 일정으로 합창단에서 브라질에 간답니다. 그곳에서 이루어질 선교찬양을 위해 일주일에 두 번씩 만나 연습하고 있어요. 1월이 되어서야 어렵게 결정을 했습니다. 언제나처럼 발을 내딛지도 않고 걱정을 앞서하는 제게 큰 결심을 하게하시고 소망을 갖게하심을 감사하며 다녀오려 합니다. 제가 보고 들음의 영향력이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으나 그 기대감도 자못 큽니다.
브라질? 멀리도 가는구만...잘 생각했어. 여행은 어떤 여행이라도 좋지..
겨울엔 내복을 입읍시다.
무사 귀환 안심 갈비...ㅋㅋㅋ
그곳에서 20위안 주고 만주 내복(상.하)을 하나 사 입었는데 따뜻한 것이 아주 쥑이더라...실내에서는 땀이 날 지경이여...
그저.....
인물은 인물이, 내가 너를, 서로가 서로를 만들어가는 것의 중요함을!...선생님 딱 걸렸어요. 만주 여행기를 장황하게 들려주셔야 해요. 인물을 만들어 주실라믄..만주도 못가보는 청춘을 위해 만주에 가 보는 것 처럼 실감나게 들려 줄 이야기를 기대하며 책 발송 작업에 저는 수첩만 달랑 들고 갈랍니다.
얼지 않고 살아돌아와서 다행이예요. 그나 저나 목단이라는 처녀랑 한 잔 술이라도 해야 하는데...그 이야기는 쏙 뺐는가 봐.
사진만 봐도 얼어붙을듯...나중에 자세한 만주 이야기 풀어주시와요!
지난 주말 뜻하지 않는 전화를 받고 어찌나 반가웠던지... 큰 대궐에 나랏님이 부른듯 한 기분으로 잠시 목소리를 들었는데, 이토록 차고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들리는 만주 바람을 다음에 한 번만 나 코 앞에 불어 주구려.... 고마워 두규야!! -민명식 -
여쭐게 있어서 전화 했더니 중국말이 나와서 어찌된건가 했어요 로밍인가 해놓으신가 봐요~이렇게 추운데 여행 다녀오신줄 모르고...윤동주님의 묘가 중국에 있었네요 잘 다녀오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