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어린 시절의 데미안은 누구였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리고 성숙하지 못했고, 선한 것과 악한 것을 잘 구분하지 못했을 어린시절이 떠올랐다.
과거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교회를 다니고 집에서 성경 말씀을 듣고 배우고 자란 나는 싱클레어의
환경과 비슷하다. 그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한것에 대해 이유를 달지 못했고, 그저 받아들이는
것만이 쉬웠고 그 뿐이었다.
이 소설에서의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인도자로 삼아 그의 말에 귀 기울이며 그 안에서 갈등하고
번뇌하며 자아를 찾아간다. 나에게 있어서도 나름대로의 데미안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내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보면 현재에도 내 안의 데미안이 죽지않고 살아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 소설에서 싱클레어가 데미안과 함께 어덯게 자아를 형성해 가는지에 대해 중점적으로
읽게 되었다. 대략적인 줄거리를 통해 소설 [데미안]의 틀을 잡아보고자 한다.
이 책의 주인공인 에밀 싱클레어는 자기 자신에 이르는 길에 있으며 낡은 규범들의 속박에
괴로워하면서도 그것들을 점검한다. 그 속박들은 유년의 맑고 밝은 세계와 그를 나누며, 진정한
인간이 되는 길에서 투쟁하여 벗어나야 할 것들이다. 이 돌파구 없는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그는 더 나이들고 더 경험이 많은 데미안을 만난다. 저지르지도 않은 도둑질을 떠벌림으로써 혹독하게
시달리던 싱클레어를 데미안이 도와준다. 독심술과 혜안의 신비로운 힘으로 악마같이 괴롭히는 친구
크로머를 쫓아주는 것이다. 크로머라는 첫 시련에 이어 나중에는 사춘기의 문제를 극복하게끔
도와주고,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새롭게, 다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며, 운명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운명을 받아들이라고 가르쳐 준다. 낯선 도시에서 홀로 지내던 학창 시절, 정신적 지주에 대한
동경이 극도로 고조되었을 무렵, 싱클레어는 책갈피에서 쪽지 하나를 발견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 싱클레어는 이 아프락사스를 찾아간다.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가 신성과 마성, 남성과 여성, 인성과 수성, 선과 악을 다 갖추고 있는
신비로운 신에 대하여 이야기해 준다. 싱클레어가 그려내는 굼의 영상, 문장에 그려진 그림, <먼>연인
베아트리체, 구름의 모습 등이 아프락사스의 모습을 가진다. 마침내 그는 데미안과 그 어머니 에바
부인 속에서 그 모습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어머니이자 애인인 영원한 여성, 에바부인은 끌면서도
동시에 물리친다. 싱클레어의 눈에 그녀는 이따금씩 더 깊이 자기 자신 속에 이르려는 <자신의 내면의
상징>처럼 비친다. 점차 에바부인 가운데서 현실과 상징이 결합된다. 끝은 거의 불현화음적이다.
뜨겁게 갈구하는 에바 부인이 아니라 드거운 총상이 싱클레어를 맞추어 그는 치명적 부상을 당한다.
그러나 전쟁은 또한 새로운 창조의 위업을 완수한다. 야전병원에서 싱클레어는 다시 한번 데미안과
마주친다. 데미안의 입맞춤은 에바 부인의 입맞춤이기도 하다. 그리고 구도자들, 개혁자들의 동맹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의 입맞춤이다.
처음에는 이 책에서 나오는 싱클레어가 참 신기했다. 어린나이에 자신안의 세계라든지 그 밖의
세계 등등 내면적인 고민을 하면서 자신의 자아를 형성해 나가는 그런 모습이
참 뭐랄까, 어린것이 벌써부터.. ㅎ; 이런 생각까지 들게했다.
아무튼, 아직까지는 완벽하게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한번이고 두번이고 열번이고 더 읽어서라도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