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염소 할머니 /김기수
허연 머리칼로 소녀머리 한 노구의 여인이어라.
허리를 펴면 배가 아프다 하여 몸은 둥근 호박처럼 말리고 둥근 꼴망태도 매달아 달팽이 둥글게 논둑길
따라 흐른다. 굴러 기어 간 곳은 찌그러진 막사에 검은 식솔들이 흐릿한 인기척에도 난린데, 그녀의 유
일한 식구들 흑염소 열댓 마리라. 60여 년 전 군 휴가 나온 신랑과 생별하고 외동딸과 둘이 살다가 여덟
살에 죽었는데, 배 아프다 한 게 지금에 맹장인가 하고, 그 후로 지독하게 자신의 방식을 찾아내어 지금
의 노구를 굴리며 견뎌 살아온 삶이라. 눈물도 말라 둑에 기대앉은 모양이 건조한 달팽이 형상이고, 손
가락은 영락없는 대나무 마디이고 팔뚝은 명아주 대궁처럼 까칠까칠 굴곡이 크고 얼굴은 검은 노을색에
피부는 두꺼비 등딱지와 가히 견줄만한데, 굽은 노구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천하에 태평이라. 그녀의 기
울어진 방안 벽에는 어느 소녀들이 붙였을 쪽지들이 하트모양에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로 도배 되었
는데 주변인의 말에 의하면 흑염소 팔아 모은 돈 1억을 고만고만한 딸만한 애들을 위해 전액 기부하셨다
지. 그녀의 반찬은 출처 모를 고추장에 김치국물이 전부인데, 이를 보고 정부지원 받으라니까 살아 움직
일 수 있는데 뭔 놈의 최저생계비 지원이야시네. 고난이 깊을수록 생의 농도는 짙어 가는 것이 분명타.
작지만 묵직한 색깔로 세상 한 켠을 지켜내 온 힘은 기세보다 센 것을. 굽은 등 너머로 해가 머물고 산곡
의 넉넉함이 노을처럼 흐르는데,
어떠한 말로도 부족해 그저 우두커니 서있을 뿐!
*참고글
고향 경남 함양군 안의면 안의고교에 장학금으로 기부한
산골 '염소할머니’ 정갑연(79) 할머니에게서...
첫댓글 아~
그 할머니 알아요
글을 잘 표현했는데요
네. 천군만마 같은 힘을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