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심하지 않아도 될 충분한 이유
성도들의 기도가 천사의 손에서 하느님께로 올라갑니다.
"그리하여 천사의 손에서 향 연기가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하느님 앞으로 올라갔습니다."(묵시 8,4)
기도에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무능하고 무'x해 보이는 사람의 기도라도 전심으로 드리는 기도는 세상에서 가증 유능하고 강력한 사람의 행동을 막아설 수 있습니다. 기도는 산을 뚫고, 바다를 건너는 위력이 있습니다. 게다가 하느님께서는 믿음의 기도를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사람을 차별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어린 아이의 천진난만한 기도나 할머니의 간절한 기도나 순교자의 처절한 기도를 달리 보지 않으십니다. 기도에 차별이 없음을 알고 담대히 구하십시오. '저 사람한테 기도를 부탁하면 좀 나으려나? 저 사람의 기도로 덕 좀 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써 구원 프로젝트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대규모 구출 작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문제는 인간들이 미심쩍어 한다는 것입니다. 구출하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선하심을 믿지 못하고 의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믿음으로 구조를 요청하는 부르짖음에는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모든 기도를 차별 없이 들으십니다. 담대히 구하기만 하면 하느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그렇다면 기도는 언제 응답될까요?
"어린양이 다섯째 봉인을 뜯으셨을 때, 나는 하느님의 말씀과 자기들이 한 증언 때문에 살해된 이들의 영혼이 제단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거룩하시고 참되신 주님, 저희가 흘린 피에 대하여 땅의 주민들을 심판하고 복수하시는 것을 언제까지 미루시렵니까?' 그러자 그들 각자에게 희고 긴 겉옷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처럼 죽임을 당할 동료 종들과 형제들의 수가 찰 때까지 조금 더 쉬고 있으라는 분부를 받았습니다."(묵시 6,9-11)
순교자들이 부르짖습니다. "생명을 빼앗긴 안타까운 우리 사연을 주님께서 언제 응답해 주시렵니까?" 주님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다려라. 내가 주는 두루마기를 입고 잠시 쉬어라. 때가 되면 반드시 너희 기도에 응답하리라." 하고 약속하십니다. 때가 이르면 반드시 응답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시간을 재고 계십니다. 응답의 시간은 하느님의 소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 시간은 아버지만 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순교자의 수가 찰 때를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그들을 위한 기도가 찰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때가 되면 기도의 대접이 쏟아질 것입니다. 하느님의 심판은 성도들의 기도와 상관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과 함께하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기도하다가 낙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낙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분명합니다. 때가 되면 하느님께서 반드시 약속을 성취하시고, 반드시 열매를 맺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낙심하지 마십시오. 이 땅에서 드린 기도가 내 때에 응답되지 않는다고 해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이미 오래전에 믿음의 조상들이 드린 기도가 오늘날 얼마나 많이 응답되었습니까?
우리가 기도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까닭은 우리의 기도가 금 향로에 담겨 하느님께 올라가 언젠가는 하느님께서 응답하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간에 비선실세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떠돌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권이건 비선이 없던 시절이 없고, 정부 조직 외의 실세가 없던 적도 없습니다. 다만 그것이 드러났느냐 드러나지 않았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이 땅의 권력자들은 예외 없이 비선실세를 가지고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하느님 나라에는 비선실세가 따로 없습니다. 누구든지 기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기도로 나아가는 이가 드뭅니다.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거부합니다.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백성들과 어떻게 친교를 나누고 소통하시는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성도들의 기도를 듣고, 때를 정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히즈키야를 이 땅에서 데려가기로 결정하시고,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그에게 통보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병든 히즈키야가 눈물로 호소합니다. 하느님께서 그의 기도를 듣고 어떻게 하십니까?
"그 무렵 히즈키야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는데,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 예언자가 그에게 와서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집안일을 정리하여라. 너는 회복하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그러자 그가 얼굴을 벽 쪽으로 돌리고 주님께 기도하면서 말씀드렸다. '아, 주님, 제가 당신 앞에서 성실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걸어왔고, 당신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해 온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러고 나서 히즈키야는 슬피 통곡하였다. 이사야가 가운데 뜰을 나가기 전에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내렸다.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영도자 히즈키야에게 말하여라. 너의 조상 다윗의 하느님인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 이제 내가 너를 치유해 주겠다. 사흘 안에 너는 주님의 집에 올라가게 될 것이다. 내가 너의 수명에다 열다섯 해를 더해 주겠다. 그리고 아시리아 임금의 손아귀에서 너와 이 도성을 구해 내고, 나 자신과 나의 종 다윗을 생각하여 이 도성을 보호해 주겠다.'"(2열왕 20,1-6)
하느님께서는 병들어 죽게 된 히즈키야에게 15년을 더 허락해 주십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아시리아 임금의 손에서 구원하는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시간과 환경과 지위와 재능을 허락하시는 것은 '구원 프로젝트' 때문임을 잊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구원을 위해서 일하십니다. 구원을 위해서 하느님의 자녀들과 함께 일하십니다.
우리는 때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저런 사람을 쓰시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그러나 그렇게 물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구원을 위해 서원하는 사람, 자원하는 사람을 기쁘게 받으시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살아온 길을 돌아보면, 지금껏 살아 있는 것이 신기할 때가 있습니다. 죽음의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내가 믿음을 가지고 돌아본즉 생을 마칠 때까지 하느님의 일을 하라고 살려 두셨다고 밖에는 달리 생각나는 이유가 없습니다.
왜 똑똑한 사람은 진주가 묻힌 밭을 살 수 없을까요? 땅을 파 볼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땅 위에 모든 게 있는데 뭐 하러 땅을 파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밭에 진주를 묻어 숨겨 놓으셨는데 아무도 주목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지지리도 못난 사람이 진주를 발견하고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 그 땅을 삽니다. 주님께서 진주를 빼앗아 가시겠습니까? 아닙니다. 그에게 진주를 맡기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못난 사람을 쓰시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잘난 사람은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 전부를 팔아서 진주를 사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부르신 목적을 잊어버리면 우리는 계속해서 자기 것만을 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시작하신 구원 프로젝트를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구원에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진주가 묻힌 땅을 발견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발견하거든 가진 모든 것은 팔아서 그 땅을 사길 바랍니다. 미루지 마십시오. 천국은 매달리는 이의 것입니다. 머뭇거리지 마십시오. 언제 우리를 데려가실지 모릅니다. 데려가시겠다는 통보가 오면, 기쁘게 가든지 아니면 시간을 더 달라고 청하십시오. 명분은 한 가지뿐입니다. 하느님의 구원 프로젝트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말씀 외에는 다른 명분이 없습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