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몬을 눈여겨보시고 새로운 이름을 주시다
하느님은 준비된 사람을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먼저 부르신 다음 준비시키신다. 예수님은 부족함이 많은 베드로를 당신 사람으로 준비시키신다.
예수님은 시몬을 눈여겨보고 나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요한 1,42)라고 하셨다. 여기서 ‘눈여겨보다’는 그리스어로 ‘엠블레포’인데 이 말은 뚫어지게 바라본다는 뜻이다. 이 단어는 나중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때 사용된다. 예수님은 당신을 세 차례나 부인한 베드로를 바라보신다.(루카 22,61)
예수님이 시몬을 눈여겨보았다는 것은 다만 시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내면을 깊이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그의 내적 가능성, 잠재된 지도력과 능력을 깊이 헤아리며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시몬한테서 충동적이고 다혈질적이 불안한 모습만을 보았겠지만, 예수님은 그런 그의 겉모습 속에 감추어진 가능성을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케파’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시며 ‘너는 이제부터 반석으로 살아갈 것’이라며 사명을 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를 보실 때도 부정적인 면만 보시지 않는다. 우리가 소심하고 겁이 많은지, 언제나 유혹에 넘어가는지, 용기가 부족하여 옳은 일을 하지 못하는지 등을 보지 않으신다. 그보다 우리의 내적 가능성을 보시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자’, ‘하느님 나라를 세울 자’, 훌륭한 부모가 될 자‘로 부르신다. 그러니 우리도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야 한다. 부정적인 눈으로, 세상의 꼬리표로 나를 평가하는 바보짓을 곧바로 그만두어야 한다.
하느님 모상으로 창조된 나
하느님의 아들, 곧 예수 그리스도의 목숨과 맞바꾼
소중한 존재인 나
값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고귀한 존재
그 사람이 바로 나다.
*** 예수님이 ‘찾았다’는 의미
요한복음 1장 43절을 보면 예수님이 필립보를 ‘만나시자’로 되어 있다. 여기서 사용된 그리스어 동사는 ‘찾다’의 의미인 ‘헤우리스코’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필립보를 ‘찾으시자’가 더 정확한 의미다. 예수님은 길을 가다 우연히 필립보를 만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를 당신 사람으로 만들기로 작정하고 찾으신 것이다.
주님이 부르시기 전까지 우리는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2010년 현재 세계 인구는 대략 70억에 이른다. 생각해 보라. 70억 개의 동전더미 속에 동전 하나를 떨어뜨려 놓고 그 동전을 찾으라고 하면 과연 찾을 수 있을까? 주님이 부르시기 전에는 우리 모습은 눈에 띄지도 않는 존재로 그냥 그렇게 살아가던 사람이었다. 삶의 의미를 찾기보다 살기 위해 땀 흘리고 수고하며, 목적 없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주님이 부르시자 우리 인생은 달라졌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하느님의 소중한 자녀로서 섬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나 밖에는 아무도 없다는 듯 나를 사랑하신다. 이 세상에 70억 인구가 존재하지 않고 설사 나 혼자 존재한다 해도, 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만큼 나를 사랑하신다.
주님의 지극한 사랑이 진정 우리 안에 깊이 들어오면, 우리는 그분의 사람이 될 것이요, 그분이 주신 사명을 살아갈 것이다. 하벨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의 진가는 발휘되는 때는 자신이 바라는 역할을 할 때가 아니라 운명이 준 역할을 할 때다.”
미국에서 가장 귀한 보물이 무엇이냐고 미국인들에게 물어보면 링컨이 사용한 만년필을 꼽는다. 링컨은 미국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니 그가 사용한 물건은 다 귀하겠지만 특별히 만년필을 든 것은 그 만년필로 노예 해방 문서에 서명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물건 자체는 값나가지 않더라도 그 물건이 무엇에 사용되었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의 도구로 사용될 때 우리는 진정 귀한 존재가 되어 그 가치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